brunch

매거진 생각상자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up L Nov 20. 2024

조용한 카페에서

오늘은 오전에 할 일이 있어 잠시 시간을 내어 종로에 다녀왔다. 지하철은 노동조합 태업 때문에 역에 진입하는 열차들의 교통정리가 잘 되지 않아서인지 열차도 잔뜩 밀리거나 조금이라도 지연되어 운행되었지하철 안의 사람들도 지친 표정이었다. 조금씩 밀려서 도착한 탓에 승객 중 일부는 문이 열리자마자 계단이나 에스컬레이터를 뛰어 올라가기도 했다. 나도 늦을 경우에 대비해서 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나왔는데, 안 되면 근처에서 카페라도 가지 뭐, 하고 단순하게 생각하고 나온 것이 적중해서 약속 장소 근처에 있는 투썸 플레이스에 갔다. 평소 같으면 한 시간은 카페에 있을 뻔했지만 오늘은 날이 날인지라 예상보다 느지막이 도착해서 삼십 분 정도만 남았기에 글이나 쓸까 하고 카페를 찾았는데, 2층에 카운터가 있는 투썸 플레이스가 눈에 띄어 창가에 자리를 잡고 내려다보면서 글을 쓰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처에는 1층에 자리가 많이 있는 스타벅스가 있었지만 나는 밖을 내다보면서도 밖에서는 나를 들여다보는 것은 별로여서 처음부터 그냥 고개를 돌렸던 것 같다. 스타벅스에서 마신다,라는 것이 평일에만 할 수 있는 일이어서 제법 매력적이었던 것도 다 지난 일이고 말이다. 어떤 지점에서 스테이크 접시가 찬 것을 보고 다시는 어느 지점의 아웃백 스테이크하우스에도 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스타벅스도 개인적인 어떤 계기가 있었을 것 같은데 기억은 나지 않는다.
투썸 플레이스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입구의 현관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그 안으로 계단이 보였다. 계단을 올라가자 2층에 카운터가 있고 3,4층에도 좌석이 있다는 푯말이 붙어 있었다. 3층에는 여자 화장실, 4층에는 남자 화장실이 있다고 하는데 나는 화장실을 가려는 게 목적이 아니고 또 커피를 주문하고 나서 다시 가지러 2층에 가야 기에 그냥 3층에 자리를 잡았다. 아무도 없었고 의자도 모두 정리되어 테이블 쪽으로 꼭꼭 밀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오늘 영업을 시작한 이래 아직 아무도 들어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창가에 4인 좌석이 있었다. 의자는 폭신폭신하지만 소파는 아니었다. 테이블도 깨끗했고 창밖으로는 버스 전용차로 정류장이 보이는 자리였다. 사람들이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이 보였다. 버스에서 내려서 뛰는 사람도 있었고 천천히 걷는 사람도 있었지만 모두 표정은 굳어 있는 것으로 보아 모두 출근길인 것 같았다. 아홉 시가 넘은 시각인데 지각을 해서 지금 보이는 사람도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하는 사이에 신호등이 빨간색으로 바뀌고 사람들은 모두 제 갈길을 가서 이제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조금만 기다리면 다시 횡단보도에는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나타날 것이다.
외투를 벗어서 건너편 의자에 놓고 가방에서 글을 쓸 도구들을 꺼냈다. 그리고 휴대폰을 꺼내 투썸 플레이스 앱을 열고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샌드위치도 살짝 끌리기는 했는데 실제로 커피를 마실 시간은 이십오 분 정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걸 시키면 글을 쓰지 못할 것 같았다. 배가 고픈 것도 아니었고.
일단 키보드로 세 줄 정도를 치자 핸드폰으로 주문한 음료가 나왔다는 알림이 왔다. 다시 내려가서 머그컵 하나만 멀 그러니 있는 카운터로 갔다.
"맛있게 드세요!"
나는 꾸벅 목례를 하고 커피를 가지고 왔다. 어떤 카페에서도 음료 한 잔만 시켰다고 해서 머그컵만 달랑 준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아니 홍대입구역 스타벅스에서는 그런 적이 있다. 대부분은 한 잔이라도 쟁반에 올려주고는 했었다. 그래서 내가 쟁반은 그냥 두고 머그컵만 들고 온 적은 많은데 아예 머그컵만 덩그러니 둔 것은 처음인 것 같았다. 더욱이 계단으로 들고 다녀야 하는 곳에서는 더더욱. , 홍대 스타벅스도 계단으로 오르내렸지.
커피를 옆에 두니 글이 더 잘 써지는 것 같다. 한 모금 삼키고 아까 썼던 앞부분을 다시 읽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 왔지?' 보통은 이렇게 생각이 들 만큼 흐름이 끊기면 그냥 다시 이야기를 새로운 곳에서 시작하고는 하는데 오늘은 기억이 나서 그대로 부드럽게 이어서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중간쯤 쓰자 여자 둘이 들어왔다. 뭔가 어수선하게 왔다갔다하더니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졌다. 어느 정도 쓰다가 생각을 환기하려고 창밖을 보다가 다시 실내로 고개를 돌리자 여자 둘이 벽 쪽에 있는 4인용 좌석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다른 여자 둘도 가장 안쪽 소파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내가 화면만 쳐다보는 사이에 명이나 들어와 있었던 것이었다.
'언제 들어왔지?'
라고 생각하는데 갑자기,
"사백육십팔 번 손님, 주문하신 음료가 나왔습니다."
라는 소리가 들렸다. 3층 입구에 키오스크가 있었는데, 나는 키오스크로 주문하면 내가 주문한 음료가 나왔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지 몰라서 그냥 앱을 사용해서 주문을 했고 앱의 푸시 알림을 보고 음료를 받아왔었다. 아마도 키오스크로 주문하면 키오스크에서 커다란 목소리로 알려주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키오스크로 주문해도 될 뻔했다.
그 말소리가 나자 가장 안쪽에 앉아 있던 여자들 중 한 명이 천천히 일어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주문한 음료를 받으러 가는 모양이었다. 나는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음료가 나왔다는 알림은 음성이 매우 컸기 때문에 다시 나왔으면 나는 아마 듣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글을 다 쓰고 시간이 되어 옷을 입는데 벽 쪽에 앉은 여자들도 케이크와 뭔가를 먹고 있는 것을 보니 그들은 키오스크가 아니라 앱으로, 혹은 직접 카운터에 가서 주문한 모양이었다.
나는 간혹 집에서 텔레비전으로 유튜브 화면을 틀어놓곤 한다. 모나코라던지 베를린, 이런 곳에서의 walking 영상이나 혹은 한강 뷰 영상 등인데 신경을 쓰지 않아도 알아서 움직이고 어느 순간 내가 눈을 돌려서 잠시 들여다보다가 다시 쓰던 글을 다시 쓸 수 있는 효과가 있다. 그렇지만 카페에서 창가에 앉으면 굳이 내가 영상을 고를 수고를 할 필요도 없이 항상 그런 효과가 있다. 카페 안에서 돌아다니는 사람도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내가 쳐다보면 상대방도 나를 쳐다보게 될 수도 있는데 카페에서 밖을 내다보는 것은 그럴 염려가 적다. 층수가 높아지면 더더욱. 비가 오는 날, 그것도 비가 갑자기 쏟아질 때 내다보면 사람들이 뛰어다니는 것을 볼 수 있을 때가 있는데, 그때는 글을 쓰지 않는다. 오로지 음료를 손에 쥔 채 사람들만 구경할 뿐이다.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더 유쾌하고 정신에 도움이 될 때도 있는 법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글을 내뱉는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