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고 어떤 일이라도 일어나도 된다는 것은 말 그대로 방관자의 입장이다. 사실, 극단적으로 아무 관계가 없는 방관자일 필요도 없다. 타국의 외교관처럼 이해관계가 명확하고 또렷한 관찰자에게도 다르지는 않기 때문이다. 일어나는 일에 대해 대응 방식은 바뀌겠지만 어떤 가능성이든 열어놓아야 한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어떤 가능성이든 열어놓는다는 말 자체가 어떤 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고 어떤 일이 일어나든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한다는 것은 내 쪽에서만은 어떤 일이라도 일어나도 되는 상태로 만들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사자들에게는 아무리 생사가 걸려 있는 일이라고 해도 관찰자와 방관자들에게는 남의 일일 수밖에 없다.
다른 나라에서 지금 아무리 우리나라에서 계엄령을 무력화시키고 며칠 만에 계엄령을 발동한 사람을 직무에서 떨어뜨려 놓는 것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한다고 해도 다른 나라는 결국 관찰자에 지나지 않는다. 관찰자가 해 주는 환호는 관심이 없던 사람이 경기장 밖에서 뉴스를 보며 어떤 선수의 플레이가 뛰어났다는 사실에 감탄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자면 스포츠와 같다는 것이다. 대리만족이 되었든 원칙과 논리에 의한 결론이 속이 시원하게 보이든 결국은 똑같다. 그 사람들의 관점은 몇십 년 전 4.19를 보면서 아시아의 민주주의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던 사람들이나 지금의 한국을 보며 계속해서 한국에 대한 관점에 편견을 덜어가는 사람들이나 똑같다는 뜻이다. 모든 단어에 'K-'를 붙이는 사람들에게는 김새는 소리일지 모르겠지만 그런 것들은 다른 나라의 이야기인 한 관심 있는 분야의 배경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 말 그대로 우리가 계엄을 좌절시키지 못했더라도(사실 나는 자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라는 단어를 쓰기에 미안한 상황이기는 하다.) 다른 나라에서는 안타까워할 뿐이었을 것이다. 여당에서 뿐 아니라 야당에서도 이탈표가 많이 나와서 탄핵이 요원한 상황이었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많이 화가 난 것 같은데 역시 어느 나라나 정치권은...' 하면서 넘어갔을 것이다.
어떤 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고 어떤 일이라도 일어나도 되는 것은 남의 입장이다. 나의 입장이 그렇게 흘러갈 수는 없다. 내가 내일 굶어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면 무엇이든 간절히 하려고 하게 될 것이다. 파트타임 일거리를 잡든 구걸을 하든 말이다. 그건 내가 굶어 죽는 일은 일어날 수는 있지만 일어나도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건이 된다면 최대한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되게 하고 싶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나 인간사에 불가능이라는 것은 없기 때문에 수많은 안전장치로 오히려 스스로 얽어매는 일은 없어야 한다. 코로나19 초기에 확진 판정이 나서 집 안에 갇혀 있게 되면 간단한 먹을거리가 포함된 박스가 집 앞으로 배달되었다. 마스크나 이런저런 건 이해가 가지만 먹을거리? 생각해 보면 델타변이 즈음까지는 몸이 매우 안 좋아졌다고 한다. 나는 훨씬 후에 오미크론 변이가 퍼지고 나서야 확진 판정을 받았지만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누워 있었다. 그런데 그보다 심한, 심지어 치사율도 높은 델타변이라면 누워서 낑낑대다가 굶어 죽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격리되어 있는 상태에서 아프면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 손 닿는 곳에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것이 있어야 했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다 보면 굶어 죽지 않기 위해 재산을 준비하는 것도 가능성을 낮추는 것에 불과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니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지만 일어나면 안 되는 일이라면 일어날 확률을 현실적으로나마 확 낮춰야 하는 것이다.
계엄을 함부로 하는 사람을 전국민적인 분노로 점쟁이에게 나라를 맡긴 사람과 똑같은 강도로 처벌하는 것은 그 확률을, 앞으로도 생각은 얼마든지 할 수 있기에 실행할 수 있는 확률을 줄이려는 노력이다. 어떤 사람이든 그 자리에 앉기 전에는 어떨지 알 수 없다. 내가 알기로 지금 직무정지된 대통령은 전과도 없다. 그러나 그 사실은 수많은 사람들 말대로 범죄를 조사하는 자리에 앉아 있어서 진실이 가려진 것인지 정말 범죄 이력으로 남을 일은 하지 않았지만 정말 그런 일만 하지 않았을 뿐 기본적인 사상 자체가 위험했거나일 것이다. 물론 전자도 가족들을 보면 그리 가능성이 낮아 보이지는 않지만 말이다. 일어나도 되는 일이 아니므로 일어날 가능성만이라도 줄이는 것. 나는 여기서 극도로 효율적이며 합리적인 체벌을 본다. 그리고 이 체벌을 정말 뼈가 사무치게 겪으면 좋겠다. 그 개인이 아니라 이후에 대통령의 자리, 총리의 자리, 정당 대표의 자리에 앉는 모든 사람들이 남의 일이라고 치부하지 않도록. 그중 남의 손에 대통령직의 권한을 마음대로 사용하게 놔두거나 함부로 군대를 시민들 사이에 옮기는 것에 대해 한 명이라도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자가 있다면 그 하나의 구멍조차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넓힐 수 있다.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지만 어떤 일은 일어나서는 안 된다. 앞으로는. 절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