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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엘앤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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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p L Dec 26. 2024

텔레파시와 의사소통

둔탁하면서도 울리는 나무 계단의 소리가 왠지 귀에 쨍하게 들렸다. 쿵쿵쿵쿵도 아니고 탁탁탁도 아니다. 퉁퉁퉁이라고 하기도 곤란하다. 나무 계단이기는 한데 가장자리를 따라 쇠로 된 받침대가 있어서 특이한 소리가 나는 것이다. 온전한 나무 소리도 아니고 온전한 쇠의 울림소리도 아니다. 사실 어떤 소리라고 자세히 묘사하는 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단지 어떻게 해서 그런 소리가 나는 건지 확실히 알고 싶은 생각이 살짝 들었을 뿐이다.
유리문에 이어 '끼이익' 하는 나무 문의 경첩 소리가 들리고 곧 엠이 고개를 까딱이며 쳐다보았다. 나는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늘 하던 대로 엠의 책상을 보면서 말했다.
"책 읽고 있었나? 책 읽는 모습을 참 오랜만에 보는군."
"자네가 오랜만에 온 거지, 내가 책을 오랜만에 읽은 것은 아니네."
엠이 곧바로 맞받아쳤다.
"내가 없을 때도 책을 읽는다고? 자네는 내가 필요할 때만 이 방에 나타나는 게 아닌가?"
"그럴 수야 없지. 그래서야 대화가 되겠나? 타임머신으로 치면 자네가 나의 매 순간을 쪼개어 나타난다는 건데 그렇다면 나는 자네와 아이디어를 가지고 힘겹게 씨름한 직후에 이어서 다시 나타난 자네와 또 다른 주제로 싸워야 한다는 게 아닌가? 세상에 그런 고문이 또 어디 있나? 그럴 수 있어인간적으로 그러면 안 되지."
"그렇군."
"왜?"
엠이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뭐가?"
"응?"
"왜냐고 물었잖은가. 뭐가 왜냐는 거지."
"자네가 갑자기 수긍을 할 때는 다른 생각을 하느라 그런 거니까, 그게 무슨 생각인 건지 궁금할 뿐이네."
"그렇군."
"아니, 설명을 안 해줘서 물어본 거라고 대놓고 얘기를 하면 설명을 해줘야지 계속해서 똑같이 그렇군, 이라고 하면 어떡하나?"
엠이 껄껄 웃으며 물었다.
나는 심각한 사안인 것처럼 한숨을 푹 쉬고 엠의 기대에 찬 눈을 쳐다보며 말했다. 어차피 엠도 사실 그런 건 없다는 걸 잘 알 테니.
"요즘 텔레파시라는 것을 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을 하는데 생각보다 그럴듯해서."
"자네가 텔레파시를 하는 법을 배웠다고?"
"아니, 그냥 아이디어일 뿐이야."
엠은 의외로 고개를 살짝 숙이고 생각에 잠기는 것 같았다. 나도 엠에게서 생각이 끝났다는 조짐이 보일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기다리기로 하고 의자를 꺼내 책상 앞에 앉았다. 그러나 내가 앉기가 무섭게 엠이 입을 열었다.
"나는 사실 뭔가 알 것 같기도 해."
"텔레파시의 원리 같은 거 말인가?"

엠이 기침을 한 번 하고 나서 설명을 시작했다.
"생각을 해 봐. 자네가 머릿속으로 호빵을 먹고 싶어 하는데 글에다가 '엠은 내가 머릿속에 뭔가 먹을 것을 떠올리기만 해도 즉시 알 수 있었다. 그는 내 머릿속에 있는 것이 강렬할수록 정신적으로 쉽게 영향을 받기 때문이었다.'라고 적으면 그게 곧 텔레파시 아닌가?"
나는 어안이 벙벙해져서 잠시 무슨 말인지 생각해야 했다. 그러나 곧 그것이 주인공에 대한 작가의 특권 이야기인 것을 알고 곧 그것은 특수한 상황일 뿐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러나 엠은 그것이 특수한 경우가 아니게 되면 그게 곧 텔레파시가 실재하게 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자네가 자네의 글에 텔레파시라는 것이 있다고 써서 그 이야기 안에서는 실제로 텔레파시가 이루어진다고 해 보자고. 니까, 나는 텔레파시를 못하지만 자네가 글에다가 텔레파시라는 것이 있고 내가 그걸 쓸 수 있다고 쓰면 나도 텔레파시를 쓸 수 있는 거지. 애초에 세상에 실제로 텔레파시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텔레파시라는 개념을 떠올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거. 우주에 텔레파시라는 기능이 있었다면 있는 거고 없었다면 없는 거겠지. 하지만 없었는데 개념만 있을 수 있을까?"
"없는데 개념만 있는 것은 많지. 완벽한 원도 그렇고."
"완벽한 원의 개념 덕분에 완벽에 가까운 원들이 많은 것이네. 근사치로. 그렇다면 텔레파시는 아니지만 텔레파시에 가까운 것 있지 않을까?"
나는 잠시 뜸을 들이고는 엠의 질문에 대답을 했다.
"목소리의 톤이라던가 제스처를 보고 말의 메시지에 실린 감정 같은 다른 것들도 알 수 있지. 그런데 그걸 텔레파시에 가까운 거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자 엠이 방긋 웃었다.
"뒤집어서 생각해 보자고, 그걸."
"어떻게? 뭘 뒤집는다는 거지?"
"엘, 생각해 봐. 제스처를 쓰는 법도 배우고 여러 사람 앞에서 발표하는 법을 배워도 느낌이고 뭐고 심지어 메시지까지도 전혀 전달할 수 없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렇지."
"개념상으로 생각 즉 메시지에 에너지를 실어서 보내면 그것이 곧 텔레파시이네. 이런 게 있다고 해도 이게 온전한 텔레파시는 아니어서 생각만으로 전달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수신자가 집중하고 있을 때는 전달이 가능하다고 해 보지. 그러나 에너지를 싣지 못해서 텔레파시의 힘이 전혀 없게 되면 아무리 손짓 발짓을 하고 웃고 울어도 메시지조차 전달되지 못하는 것이네. 어떤가?"
"그럴듯한걸? 그럼 기본적인 대화도 텔레파시의 일종일 거라는 건가?"
"그렇지. 거기서 언어와 말이 삭제되어도 메시지를 계속해서 전달하는 것이 가능해진다면 그게 바로 텔레파시인 게 아닐까?"
"그럴듯해. 정말 그럴듯해. 그럼 그 수신자가 속적으로 집중하는 상태를 만들어 수 있게 되면 통신도 가능하겠군."
"엄밀히 말하면 그렇지. 그러니까 우리는 물리적인, 귀에 들리는 말이나 눈에 보이는 제스처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바람에 메시지에 에너지를 싣는 텔레파시의 기능을 과소평가한 것이라는 뜻이 되네. 원래는 그것이 기본이고 나머지가 보조인데 뒤집혀서 말이지."
"그렇지만 그렇게 원래 가능하던 것이 불가능해진 것이 되었다고 설명하려면 우리의 뇌가 래는 텔레파시처럼 통신 방식으로 의사소통하는 기능을 할 수 있 근거가 뭐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글쎄, 자네가 읽었던 책이 있는데, 나는 그런 주제에 관심이 없어서 잘 모르지만 그 내용에 따르면 뇌의 송과선인가 하는 곳이 통신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던데? 집중을 하고 제대로 대화를 하거나 할 때는 이곳을 통해 메시지를 밖으로 밀어주는 게 아닐까? 그게 아니고는 메시지는 똑같은데 어떤 사람의 말은 듣고 싶고 어떤 사람의 말은 졸린 차이를 설명할 수가 없네."
"태도도 있지 않은가?"
"만약에 이것을 이론이라고 정식으로 치고 설명을 하자면, 그 태도는 에너지의 정도를 겉으로 평가한 핑계에 불과하네. 아무리 흐느적거려도 에너지를 실으면 메시지가 강하기 때문에 그냥 그 사람이 말할 때의 특징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거야. 메시지에 실린 에너지가 약했을 때 약하게 느낀 이유를 태도에서 찾고 그것을 탓하는 게 쉬운 거지."
"정말 그럴듯하군.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인류의 의사소통은 텔레파시가 기본이고 그것을 우리가 너무 물질적이기 때문에 소리나 몸짓으로만 이루어진다고 믿어왔다는 거지?"
"그럴 수도 있다는 뜻이야. 우리가 지금 무슨 논문을 쓰려고 하는 건 아니지 않나?"
"그렇지만 너무 그럴듯하네. 어떻게 이런 생각을 다 할 수가 있나?"
"자네가 오지 않는 시간이 순간처럼 자네가 오는 시간 사이사이 틈에 끼어 있는 게 아니라 나 또한 사고의 형태로 늘 존재하고 그 틈틈이 자네가 찾아오는 거라고 생각하면 어떻겠나?"
"뭘 먹거나 하지는 않고?"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생각의 자유나 준 셈 쳐주게."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아도 자네가 이미 알아서 생각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지 않은가?"
그러자 엠이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에이, 그러지 말고 그렇게 한 줄만 써주게. 이를테면 '내가 없는 동안 내 관심사를 공유하면서 그 관심사에 대해 내가 세상에 치이는 동안 심지 곧게 고민을 하고 언어의 형태로 답안을 나름 작성하고 지우는 과정을 반복해 주는 것이 엠이었다. 그래서 나 또한 엠과의 대화가 늘 필요한 것인지도 몰랐다.', 어때? 이 정도면 앞으로 나도 도움이 더 많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왜? 이왕이면 텔레파시로 관심사를 공유한다고 써 줄까?"
"그거 좋지. 좋은 것 같네. 그래주게."
내가 없는 동안 내 관심사를 텔레파시를 통해 공유하면서 그 관심사에 대해 내가 세상에 치이는 동안에도 심지 곧게 고민을 해 나가고 언어의 형태로 답안을 나름대로 작성하고 지우는 지루한 과정을 반복해 주는 것이 엠이었다. 그래서 나 또한 엠과의 대화가 반드시 필요한 것인지도 몰랐다.
"썼어. 됐지?"
"썼는지 안 썼는지 나는 모르네. 어쨌든 써 주었다면 써 준 것이겠지. 기억하게. 나는 생각을 먹고 사네. 그렇게 생각을 많이 던져 주어서 내 역할이 남아 있어야 나 또한 오래도록 남아 있을 수 있는 것이네."
"아니야. 자네는 내 말에 맞장구만 치면서도 존재할 수 있어. 내가 터무니없어서 창피해서 다른 데 말 못 하는 것도 맞장구치고 감동하며 눈물 흘려주는 유일한 존재할 수도 있는 거야."
"아니 그건 아니지!"
엠이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확실히 텔레파시가 통한다. 저건 문맥상으로는 농담이라고 알 수 없는 게 아닌가? 어쨌거나 텔레파시라. 텔레파시가 의사소통의 기본이고 나머지가 보조 수단일 수가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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