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토르에서 조식을
이름도 Old Town인 곳에서
조식이 있는 숙소는 아침 식사 고민이 사라져서 편하기도 하지만 주변의 공기를 맛볼 수 있어서 좋다. 조식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면 느지막이 일어나 밖으로 나가 헤매듯 걸어 다녔겠지만 조식이 포함되어 있으면 왠지 모르게 조식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이 되기 전에 일어나 식사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 무섭게 칼같이 식당으로 향하게 되기 때문이다.
창가 자리에 앉아 너무 일러서 아직은 관광객이 돌아다니지 않는 바깥을 내다본다. 일찍 일어났다고 해도 관광객들이라면 그곳의 조식을 먹기 위해서였겠지. 조식을 먹고 나면 그제야 천천히 주변을 한 바퀴 산책할 준비를 한다. 어제는 월요일이어서인지 조식 시간에 딱 맞추어 일곱 시에 식당에 갔음에도 그 시간에 각종 야채나 절인 고기 등이 식당 주방으로 쉬지 않고 일고여덟 번은 드나든 것 같았다. 오늘은 식당 내부는 그렇게 부산하지 않아서 여유롭게 턱을 괴고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는데, 이제 해도 떴고 해서 야행성이라 이제 다들 자기 자리에 엎드려 잘 준비를 하리라 생각했던 것이 무색하게 신나게 거리를 가로질러 뛰어다니는 고양이들이 보였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곳 사람들이 일을 하러 걸어가는 모습도. 이곳 사람들은 조금만 천천히 보면 눈에 확 띈다. 최저기온이래 봤자 3도 정도임에도 코트에 모자까지 꾹 눌러쓰거나 모자가 없으면 옷의 깃도 한껏 세우고 몸을 움츠리고 지나가는 사람은 대부분 현지 사람이다. 우리나라 여름이 아무리 덥다고 해도 그때 아프리카에서 온 사람들은 바람막이 점퍼를 입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는데 비슷한 경우가 아닐까? 어쨌거나 그렇게 입고 종종걸음으로 일터를 향하는 모습은 옷차림과 외모만 다를 뿐, 그 걸음이 우리나라 출근길과 그다지 다르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이렇게 조식을 먹기 위해 앉은 테이블에서 여유로운 것은 내가 관광객이기 때문이다. 변태 같긴 하지만 일부러 휴가를 내고 평일 아침 일찍 역삼이나 선릉 지하철 역 출구 옆 커피숍에 앉아도 비슷한 느낌이지 않을까?
호텔 맞은편에는 카페 겸 식당이 있다. 출근하는 사람들과 고양이밖에 없는데 청바지에 흰 티, 그리고 얇은 카디건 한 벌만 걸친 종업원이 야외 테이블 사이사이를 빗자루로 쓸고 있다. 출근하는 사람들과 달리 그녀는 그다지 추워 보이지 않는다. 머리를 뒤로 질끈 묶고, 추워서 빗질을 빨리 끝내고 안으로 들어가야겠다는 몸짓 없이 여유롭게 쓰레받기에 먼지를 쓸어 담는다. 흰머리의 부부 관광객이 그녀와 우리 사이를 가로질러 걸어간다. 어떤 식당 하나를 목적지로 두고 찾아가는 길인지 주변의 식당에는 관심이 없다.
해가 떠서 공기도 살짝 부드러워지고 있는 느낌인데 건물마다 붙어 있는 가로등은 아직 꺼지지 않는다. 고양이와 함께 남아 있는 밤의 흔적이다.
식사가 나오기 전에 본 것들은 식사를 하면서 모두 사라진 지 오래였다. 클래식 오믈렛(야채 오믈렛은 어제 먹었다)과 치킨 또르띠야, 초코 팬케이크와 커피 두 잔을 끝내는 동안 몇 분이 흘렀는지 모른다. 삼십 분도 걸리지 않고 다 먹어 치운 것 같지만 정확한 시간은 보지 않았다(물론 나 혼자 그렇게 먹지는 않는다. 아내와 함께 먹은 것이다.). 그렇지만 그 시간 동안 공기는 완전히 새벽이 아닌 아침의 공기가 되었고, 푸르스름한 빛이 도는 어두운 하늘도 우리가 아는 파란 하늘이 되었으며 고양이들은 이제 뛰어다니지 않고 앉아 있거나 짧은 거리만 걸어 다닌다. 이제는 출근하는 사람은 물론 있지만 관광객들도 조금 더 자주 눈에 띄고 카페의 야외 좌석에도 한두 명씩 자리를 잡고 커피를 시키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곳은 담배를 무척 자연스럽게 피우고 식당에는 야외 좌석마다 재떨이가 있다. 실내에는 재떨이가 없지만 실내에서 전자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없지 않다. 야외 테이블은 무조건 재떨이가 있고 길가에 서서 피우는 사람도 제법 있다. 단 우리나라처럼 침을 뱉거나 하면서 더럽게 피우지도 않고 꽁초도 따로 모아서 버리니 담배를 파우지 않는 사람들도 반감이 덜한 모양이다. 야외 테이블에 앉은 여섯 명 중 다섯 명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지금 밖에 나가면 아직 완전히 따뜻해지지는 않은 공기에 매콤한 담배 연기 냄새가 실려올 것이 뻔하다.
아침 식사를 하기 전과 하고 난 후의 차이는 마치 호텔방에 있다가 새벽에 씻지도 않고 문을 빼꼼 열고 호텔 밖으로 나와서 맡는 새벽의 공기만큼이나 극적이다. 올드타운이라는 조그마한 공간 안에 식당도 기념품 가게도 제법 많다. 게다가 이 유적지에 실제로 살고 있는 사람도 많으니 시계 속 톱니바퀴처럼 완전히 멈추는 순간이 없는, 말 그대로 스스로 생명력을 가진 숨 쉬는 공간이 되어 버린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올라와서 창문을 열고 바깥공기를 맛보면서 글을 쓴다. 새로 구입한 수첩에 새 볼펜으로 테이블 한쪽에 기대어 쓰던 글을 마저 쓰는 것이다. 식당에서는 창문은 열지 못했다. 객실에서는 물론 창문을 열 수 있다. 이곳은 3층이고, 아직은 밖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이 방향에는 없기 때문에 담배 냄새기 섞이지 않은, 순수한 새벽에서 아침으로 넘어가는 공기의 냄새만 맡을 수 있다. 멀리서 경적 소리가 들린다. 다시 또 하루가 시작된다. 여행이니 생각보다 빨리 끝날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