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이제 어른이니까
어제 부활주일이라고 교회에서 나눠준 백설기를 오늘 아침식사 대용으로 먹으려고 부엌에 챙겨두었다. 책가방을 메고 한 손엔 캐리어를 들고 떡을 한 손에 들고 모자를 쓰고 신발을 신고 차에 타서 집을 떠났는데 그 떡은 어디에 둔 걸까.
아침 6:45 출발 비행기라 새벽 4:30에 일어났더니 비행기가 이륙하고 얼마 되지 않아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다. 8시쯤 되어서 flight attendant가 음료수를 나눠주는데 보통은 오렌지주스를 부탁했겠지만 빈속에 왠지 좋지 않은 생각 같아서 커피로 정했다. 크림이랑 설탕은 주겠지? 설탕 4 봉지 달라고 하면 웃기게 생각하려나? 그러다가 또 한 번 블랙커피를 도전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피를 달라고 얘기했더니 “cream and sugar?” 이렇게 자동적으로 물어보길래 그래도 safety net으로 받아놓긴 해야 할 거 같아서 yes라고 했더니 이번엔 “one of each?” 이렇게 물어본다. “Can I have 2 of each? …. Actually 3 sugars please.”라고 하고 4개 달라고 하지 않은 나 자신이 자랑스러워졌다.
크래커를 같이 받아서 우선 크래커 하나를 커피에 찍어 먹었다. 그러고 나서 이젠 진짜 도전해야 할 순간. 옆에 아줌마가 눈을 감고 자고 있는지 눈을 뜨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누군가 보고 있다면 난 크림과 설탕을 듬뿍 넣어먹지만 블랙으로도 먹을 줄 아는 그런 사람인 것이다.
한 모금 마셨다. 쓰다. 근데 인상이 찌푸려질 정도는 아니다. 또 몇 모금 더 마셨다. 그냥 따뜻한 물을 쓰게 만들어 놓은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심지어 내가 아는 커피 향 그런 것도 맛에서 느껴지지 않는다. 1/4 정도를 마시고 나서 더 커피가 식기 전에 설탕 3팩과 크림 하나를 넣어서 마셨다. 설탕 3팩으론 사실 설탕의 맛이 제대로 와닿지 않아서 블랙과 큰 차이가 없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게 두세 모금 마시고 있는데 쓰레기를 수거한다고 앞에서부터 오길래 쓰레기를 오래 갖고 있고 싶지 않아서 벌컥벌컥 다 마셔버렸다.
3시간 반 정도의 비행이고 지금 한 시간이 조금 지났는데 오른쪽 아저씨한테서 안 좋은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이러면 곤란한데.
마지막 비행기를 탄게 4년 3개월 정도 됐는데 그때 멀미로 심하게 고생한 게 생생하게 기억나서 쓸데없이 예민해져 있다. 냄새가 나의 멀미 본능을 자극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멀미약을 먹고 탔으니 괜찮겠지.
양쪽에 둘 다 어느 정도 사이즈가 있는 사람 사이에 탔다. 내가 마른 체형이라서 이 두 사람은 참 좋겠다. 좀 더 일찍 체크인해서 끝쪽에 앉았으면 좋았을걸. 여행을 많이 안 해봐서 이런 노하우가 부족함을 느낀다.
4/18/22 8:23 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