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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다다 Aug 11. 2021

식탁에 차려진 마음을 먹는 일

로컬푸드의 나날


오늘은 아점으로 라따뚜이를 먹었습니다. 점저는 골뱅이오이무침에 비빔면을 먹었구요.



프랑스 가정식요리라는 라따뚜이의 재료는 애호박, 가지, 토마토, 토마토소스, 마늘, 양파, 양송이버섯입니다. (소금과 후추, 오일은 제외하고요.) 라따뚜이를 하게 된 이유는 가지의 계절이기 때문입니다. 가지가 쌌던 것이죠. 프랑스 가정식 라따뚜이의 재료 중 애호박, 가지, 토마토, 마늘, 양파는 이 동네에서 자라난 것들입니다. 이 동네 하나로마트에는 로컬푸트 매장이 있고, 실제로 제철 농산물은 싱싱하고 제법 싼 가격에 거래됩니다. 예를 들면 애호박은 1개에 300원, 2개에 500원입니다. 이 애호박 가격에 대해 철없이 애호박이 300원이라며 좋아했다고 쿠사리를 먹기는 했으나, 어쨌든 장볼 때는 같은 상품이라면 더 경제적인 상품을(심지어 인근에서 자랐으며 수송 등의 과정이 덜했기에 더 싱싱한) 구매하게 됩니다.



가지는 5개에 1200원에, 토마토는 4-5개에 2500원에 양파는 4-5개에 2500원에 구매해 프랑스 가정식요리를 만든 것이지요. 그외 재료는 집에 있어서요.


올해의 라따뚜이, 작년의 라따뚜이, 1년에 1번 정도 가지가 쌀 때 해먹곤 합니다.


저는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고, 엄청난 실력은 못돼도 못 먹을 음식은 아닌 것을 만들어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랜 자취 생활 덕분이기도 하고, 먹는 것을 좋아해서이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말로는 꽤나 까다로운 입맛(어릴 때부터 전라도에서 자라며 맛있는 것을 먹고 자랐다는 평판으로 짐작하게 되는)의 소유자인 덕도 있는 것 같습니다. 편의점에서 사먹는 음식이나 레토르트 식품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맛이 없다기보다 뭔가가 빠져있다는 게 그 음식을 베어무는 순간 느껴져서요. 어떤 시에 나왔던 구절 같은데, 우리가 먹는 것은 식탁에 차려진 마음이라는 말이 정말 맞구나 느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제가 강릉에서 가장 좋아하는 식당인데, 식탁에 지역에서 채취한 나물이 가득합니다.


진정한 미식가는 못 되지만, 맛에 대해서는 맛있다, 맛없다를 판단하고 맛없는 집은 다시는 가지 않으려 합니다. 이런 정도의 정성과 재료로 사람에게 무언가를 먹으라고 내놓고 돈을 받고 이런 거래는 뭔가 마음에 안 든다, 이런 마음으로요. 요새 여기저기 맛집 프로그램이나 음식기행 프로그램 이런 게 유행하는 것을 보면, 결국 그 프로그램을 만든 사람들도 가서 먹어보건 sns에서의 평판을 확인했던, 결국 같은 판단이지 않을까요. 그냥 저는 제 입맛을 믿고 그에 따라 행동합니다. 알고보면 미각만큼 개인적인 게 없는데, 이것이 공유되고 이런다는 것, 심지어 이것이 상업화되고 광고로 거래되고 이런 것을 보면, 진짜 세상이, 이 모든 것을 돈으로 바꿀 수 있는 이 세계의 룰은 무섭고 그 어느 하나 남겨두지 않는구나 싶지요. (그리고 여기서 벗어나려 하는 순간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나 고난이 시작되나 그건 모험이냐 탐험이냐 잠수냐 알 수도 없지요.)


마트 로컬푸드 코너에서는 지역에서 키운 꽃과 화분도 팝니다.


동네 마트에서 가지와 애호박을 보자마자 결정한 요리는 라따뚜이였고, 저녁은 오이골뱅이비빔면이었습니다. 오이도 역시 동네에서 키웠다는 5개에 1600원하는 녀석들 중 하나였고, 양념은 이전에 이웃에서 받아온 오이를 버리지 않고 먹으려 만들어놓은 양념장이었습니다. 골뱅이는 이전에 손님이 올 때 주문진수산시장에서 샀던 생골뱅이 삶은 것 중 남은 애들을 얼려놓은 것이었습니다. 얘네를 다시 찜기에 살려내 쫄깃함을 불어넣고 섞어먹었습니다. 깻잎도 더했는데, 깻잎은 집 베란다에서 키운 애들입니다.


 


베란다에 상추, 깻잎, 쑥갓을 심었는데요. 그 중 상추는 이미 너무 웃자라 어쩌지도 못하게 됐고, 쑥갓은 노란 꽃을 피워 경관용이 되었고, 깻잎은 계속 먹을 수 있는 상태라 가끔 따먹곤 합니다. 그 전에는 베란다에서 키우던 상추, 쑥갓, 깻잎을 부모님이나 이웃들에게 나눠줬으나 이게 내가 감당할 수 없네, 매일 그 잎을 따줘야는데, 그게 잘 안 되며 제멋대로 자라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냥 놔두자, 이제 깻잎만 여전히 먹을 수 있어 가끔 이웃도 나눠주고 따먹기도 합니다. 주변에서 농장주라 부르나 실은 뭐, 나 혼자 먹고 살까 말까한, 베란다 텃밭의 이야기이지요.


베란다에서 직접 재배한 상추, 쑥갓, 깻잎으로 비빔밥을 해먹기도 했습니다.


예전에 텃밭이 있었으면 좋겠다, 씨를 뿌리고, 걔가 자라나고 그걸 따먹고, 그게 맛있고, 이런 꿈을 꾸긴 했으나, 이런 꿈을 강릉에서 처음 이뤘습니다. 다른 도시에서는 4인 가족 단위에 알맞는 텃밭을 분양하는데 그만한 크기의 텃밭을 책임질 능력이 없었고, 그래서 그냥 유야무야였습니다. 그러고 보면 평생 처음 텃밭에 작물도 키우고 평생 처음 거기 나무도 심고 하고 있는 것이지요.


거리에서 닭의장풀을 보고 너무 예쁘다 싶었는데 어느날 보니 베란다 텃밭에 피어있었습니다.


오늘 먹은 음식의 대부분은 이 동네에서 자라난 것들입니다. 물론 오일은 어디서 왔고, 소금은, 후추는, 토마토소스는, 비빔면의 면과 양념은 어디서, 하면 머리가 아파지고, 가끔 그런 생각도 하다가 아 이건 더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하며 맙니다. 그래도 그냥 이 정도도 좋습니다. 이 정도로 동네에서 자란 것을 먹는 것도 처음이거든요. 어떤 날은 이웃들이 바다에서 채취한 조개로 조개술찜이나 봉골레를 해먹기도 하고 바다에서 떠내려온 멍게를 주워 멍게비빔밥을 해먹거나 게낚시를 해 게튀김을 해먹기도 하니, 정녕 로컬푸드의 나날이지요.



회사를 다니다보면 시간의 문제로 식당밥, 식판밥, 레토르트식품의 조합 속에 살게 되는데, 저는 그게 별로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내가 또 음식을 우겨넣는구나, 배가 고프니 어쩔 수 없지, 하며 먹었습니다. 거기서 마음을 먹을 수 없어서 였을까요? 음식맛은 기분의 문제구나, 그래서 중요한 자리에서는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지만, 어느 순간 맛은 모르게 되기도 하는 것을 보면 입맛이란 참 미묘합니다. 대부분의 연애도 밥 먹다보면 정든다는 말처럼 같이 맛집을 찾아다니다 하게 되는 경우가 많고요. 사랑도 이 사람이랑 먹는 밥이  희안하게 맛있다며 깨닫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을이 되면 지역에서 나온 감을 사다 말려 곶감을 해먹고, 주문진수산시장에서 홍게도 종종 사다 먹습니다.
게낚시를 해 먹은 게튀김은 정녕 찐 맛있었습니다.


고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혼자서는 고기를 잘 사지 않고, 사람들과 먹을 때 조금씩 먹지만 확실히 보통 대한민국 1인 육류소비량만큼은 먹지 않는 것 같습니다.


10살 무렵 정육점에서 고기를 봤는데, 그게 나랑 뭐가 다른지 정말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그때부터 고기 먹기를 완강히 거부했으나, 엄마는 정말 고기맛이 안 나는 장조림을 잘게 찢어 주었고, 그것만 겨우 먹거나, 돈까스처럼 튀겨서 기름을 입은 고기나 먹다가 20살이 되고 가끔 치킨 몇 조각을 먹다가 회사를 다니며 회식 자리에서 배가 고파 죽겠는데 삼겹살 이외의 음식이 아무것도 없어 그때부터 고기를 다시 먹게 되었습니다. 이런 제 얘기를 듣더니, 누군가는 사람은 사회생활을 해약된다는 둥 이런 얘기를 해서, 그럼 채식주의자에 대해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라며 입밖으로 내뱉지는 않았으나, 언짢은 기분이 들었던 건 사실입니다.


 

겨울에는 동해바다에서 잡은 양미리를 사다 구워먹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랑 다른 것을 싫어합니다. 내가 어떤 것을 아무 생각 없이 맛있다고 먹는데, 거기 그 고기를 위한 잔인한 방식이 어떻고, 이런 말을 할 때 내가 아무 생각 없는 사람이 되는 게 싫은 건가, 아님 같이 밥 먹기 불편해서 싫은 건가,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한번도 내가 채식주의자라고 말한 적이 없는데, 실제로 봐도 내가 그렇게 깊은 사유나 의식을 가졌다기보다는 순간의 단상과 그 이후로 개인적으로 느끼기 시작한 미각에 의지해 그런 거라, 그냥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정도로 말을 하곤 하는데, 어쨌든 지금까지 내가 본 세상은 나 같은 사람을 반기지 않아서 왠만하면 다른 사람들과 밥을 먹을 때 나의 음식취향에 대해 잘 이야기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냥 혼자 사먹거나 해서 먹을 때 고기를 잘 먹지 않는다 정도로 내 인생을 살려 합니다.


 


고기를 먹는 일은 무지한 일이다, 라고 누가 말한다면 웃기지요. 마찬가지로 고기를 먹지 않는 일은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거다, 이것도 웃기다, 이 정도를 사람들이 생각했으면 좋겠다, 각자 다름이 있고 그게 뭐가 맞다 틀리다 하기에는 우리는 너무 미약하다, 이 식생활이나 생활습관이 어떤 결과를 미칠지 아직 모른 채 살고 있고, 미각은 개인적이니까, 당신이 먹는 게 그렇다면 그런가 보다, 했으면 좋겠습니다.  실제로 이 동네 마트는 고기가 맛있기로 유명해 종종 이웃들과 삼겹살 파티를 하기도 합니다. 고기맛도 다른 데보다 더 괜찮다고 느껴지는데, 이게 그 고기를 먹을 때 내 마음이 편해서인지, 진짜 고기가 더 맛있어서인지는 알기 어렵습니다. 로컬푸드로 판매 중인 표고버섯, 떡 같은 것을 함께 구워먹을 수 있어 더 맛있는 것도 같고요.



육식의 생활화는 어느 정도 자본주의의 산물이고, 이 자본주의의 장단을 지금 내 수준에서 다 판단할 수 없지만, 저는 지난주 금요일 카카오뱅크 주식에 눈을 주고, 오늘 카뱅 주식이 또 오른 것을 보며 헐, 하고 또 다른 주식 몇 개를 팔고 이런 자본주의 속 인간입니다. 그러니까 그냥 거기 속을 헤매며 살아보려 애쓰는 사람이 맞지만, 그게 내 입맛에 안 맞으면 안 하려고 하는, 그냥 한 개미인 것이지요.


고양이 보리는 가끔 내 밥상에서 상추를 뺏어먹기도 합니다.


엄마에게 복숭아를 보냈습니다. 이 동네에는 복숭아동네가 있습니다. 복사골이라 하는 거기는 봄이 되면 복숭아꽃이 만발합니다. 저는 그런 동네를 처음 봐서 정말 깜짝 놀랐는데요. 맛있는 막국수집이 있어 자주 가는 곳인데, 큰 은행나무랑 복숭아밭이 유명한 곳이고요. 이 동네 근처에서 나왔다는 로컬푸드 복숭아를 마트에서 몇 개 사놓고 먹다보니, 엄마가 생각나, 아는 농장에 전화해 엄마에게 복숭아를 보냈더니, 엄마는 처녀적 먹어본 이후로 가장 맛있었다며 전화했습니다.


 

봄에는 복숭아꽃이 엄청납니다.


효도는 잘 못하고 사는데, 그래도 복사골 마을 근처에 살아 엄마가 세상에 이렇게 단 복숭아는 처녀적 이후 처음이라니, 좋구나, 그래도 강릉에 와 가족들에게 잘한 것 하나가 더 있어 다행이다, 그런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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