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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다다 Sep 27. 2021

아파트라는 환상이 한국 지방에서 유효한 이유

강릉살이 2


강릉에 살기 위해 이주를 앞두고, 회사에 다닐 때부터 집을 알아보러 다녔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이주를 하기로 한 건너 건너 아는 또래의 지인들이 있었고, 여차저차 금전적인 이유와 이주의 두려움이 더해져 같이 살 수 있는 집이 있다면 같이 살지 해, 여러 집들을 보러 다녔습니다. 강릉 시내 명주산책로 인근의 허름한 주택과 사천의 전원주택, 경포 뒤편의 주택, 초당동의 아파트 등 볼만하다 싶은 데는 다 보러 다녔습니다. 회사를 다니던 당시에도 주말이면 기차를 타거나 버스를 타고 강릉에 왔습니다. 매일 네이버 부동산과 교차로를 확인하며 어떤 집이 괜찮을지 단톡방에서 의논하고 주말이면 그 집을 보러 갔습니다.



우리의 첫 번째 희망은 7번 국도를 타고 강릉을 나가다 보면 가장 마지막으로 보이는 아파트였습니다. 원래 아파트를 짓다가 부도가 나며 리조트가 되었다가 또 그 리조트 중 일부가 경매로 나와 시세보다 상당히 싸게 나온 아파트였습니다. 처음 집을 알아보러 들어간 부동산에서 추천한 곳으로, 주문진 해변까지는 걸어서 15분 정도 걸리는 거리지만, 리조트와의 관계가 매끄럽게 해결되지 않아 아파트 관리 주체가 없는 실정이고 주변 부대 시설이 취약하며 그런 메리트로 그 당시 우리가 알아보던 집들 중 가격대면에서는 확실히 매력적이었습니다. 각자 30평 아파트를 1채씩 사는 건가, 위아래 층 4집을 사자, 복도에 카페트를 깔까, 이런 꿈에 부풀었으나 아파트 실사를 가본 친구들이 그 집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때 일이 있어 실사를 가지 못했으나, 뭔가 이유가 있겠지 싶어 저도 거기 혼자 사는 건 무리다 싶어 그 아파트에 대한 부푼 꿈을 내려놓았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7번 국도를 지나며 그 아파트를 볼 때마다 그때를 떠올리며 웃곤 합니다.



어디 살아야 한다고 특별히 지역을 정해놓지도 않아서, 강릉 시내부터 여기저기 가격대가 맞다 싶으면 4명이 같이 살만한 주택부터 혼자 살만한 주택과 아파트를 보러 다녔습니다. 그전까지 강릉은 여행지였고, 아름다운 바다와 솔숲이 있는 곳이었고 맛있는 두부찌개와 재밌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었다면  처음 현실 강릉돌기였습니다. 지리도 잘 모르는 채, 이곳저곳 훑고 다니다 우와 여기 좋은데를 반복하거나 강릉 현지인의 안내를 받아 우와 이런 데도 있었어 하며 돌아다니던 그때 현실 강릉의 첫 인상 같은 게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4명이 같이 1억씩 보태 산다면 4억이 나오지만, 4억 이하의 주택은 대부분 가족들을 위한 곳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부부를 위한 큰 방 (잘하면 드레스룸까지), 작은 방 2개의 구조입니다. 주택이 2층짜리라 해도 사정은 다르지 않습니다. 작은 방 하나가 더 붙어있거나 할 경우도 있지만, 누구는 작은 방에서 지내고 누구는 큰 방에서 지내는 것도 무리일 뿐더러, 각자 키우는 고양이를 더하면 최소 5마리인데, 이 아이들의 관계는 과연 잘 정리될까 이런 문제까지 더해지자 4명이 같이 사는 건 무리, 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래도 혹시 하며 중심부로부터 떨어진 곳에 펜션을 내놓은 데도 알아보았습니다. 각 채마다 복층 구조에 하늘로 천창이 나와 우와 싶었지만, 그런 시골에서는 이웃이 중요한데, 집을 보러가자마자 이웃이 이것저것 묻는 폼이 아무래도 우리의 구성에 대해 말이 많겠구나, 어쩌면 이것저것 관심인지 간섭인지 모를 선에서 힘들겠구나 싶어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며칠 전 건축 관련 수업을 듣다, 아파트라는 비합리적인 구조, 예전에는 내 머리 위에서 똥을 싸는 그런 건축물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나, 이런 시절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5년 전쯤인가는 무슨 캐슬인가 하는 지인이 사는 아파트를 방문했다가 참 봉건시대에는 성주 1명이 저런 성을 소유했다면, 지금은 그 성을 다 같이 나눠 갖는 건가, 그런 면에서 지금 시대는 민주적인 걸까, 아니면 예전 봉건시대의 환상을 적절히 보상하며 만족하는 지점을 찾아내 위안하고 사는 걸까, 생각했습니다. 거대한 성채 같은 아파트, 그 안에서 어떻게 사는지 각자 알아서 사는 사람들, 층간소음이 끼어들어 겨우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는 그런.



강릉에 정착하기 위해 집을 찾던 우리는 결국 각자 아파트를 1채씩 얻게 되었습니다. 강릉 시내로부터 꽤 떨어져 있어 집값이 비교적 괜찮았고, 집에는 화단이 있고 바다가 보였고, 소나무 숲이 보이는 아파트입니다.


예전에 회사 다닐 때, 차라리 대출금을 갚으면 조금 더 내 인생이 보람있을까, 싶어 여기 아파트를 보러 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그 집은 현관문을 열자마자 바다가 펼쳐졌고 반대편으로는 태백산맥이 뻗어있었습니다. 그렇게 몫이 좋으니 당연히 집값은 다른 저층보다 비쌌지만, 그래도 서울 집값에 비하자면 해볼 만한 가격이었습니다.



 

엄마의 반대로 당시 그 집은 사지 못했지만, 다시 그 아파트 단지에 있는 조금 작은 평수의 집을 알아보러 왔었고, 그 집을 보자마자 친구는 제가 그 집을 얻지 않는다면, 바로 그 집을 겟하겠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당일 계약이 끝났고, 곧 이사를 먼저하였습니다.


 


초조하게 집을 알아보며 네이버부동산과 교차로를 들여다보던 저는 결국 내가 원하던 태백산맥뷰를 발견하자마자 집에 곰팡이가 잔뜩 피어있는 것은 보지도 못하고, 바로 집을 계약했습니다. 그때는 회사를 그만뒀을 때라, 강릉에 왔다가 순긋부터 해변을 5시간을 걸어와 집을 봤고, (실제 그 정도 거리는 아닌데, 천천히 걷고 쉬고 했습니다) 그리고 계약에 마음을 굳혔습니다. 작은 평수임에도 집이 크게 나왔고 바로 앞이 트여 있었고 멀리 바다와 태백산맥이 보인다는 것 때문에요. 아, 앞에서도 말했지만 아파트 베란다에 작게 화단도 있습니다.



제가 집을 볼 때 조건은 딱 하나였습니다. 앞이 트여있을 것, 산이 보이면 더 좋다, 우리가 본 많은 집들 중 이런 집은 거의 없었습니다. 사천의 전원주택은 논뷰이긴 했으나 2층임에도 방이 3개라 4명은 아예 살 수 없는 구조였고, 가격은 4이 돈을 보태야 살 수 있었습니다.



이 집으로 이사한 뒤 새 아파트가 아니기에 살던 흔적이 있고, 전세로 살던 사람들이 딱히 집을 관리하지 않아 한 3달 정도는 집을 정돈하느라 애를 먹었지만, 그래도 결국 지방에 내려와서도 중심가로부터 15km 정도 떨어진 아파트에 살게 된 이유는 너무나 현실적입니다. 상하수도나 전기 등등의 전문적인 문제가 만약 그에 관해 문외한일 경우 출장비를 포함해 대단한 지출이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 이웃과의 갈등, 보안과 안전의 문제 등에서 과연 어디까지 자유로울까 이런 부분입니다. 게다가 집을 사면 땅까지 사는 건데, 그 가격이 보태진 집 1채는 가격이 꽤 나가며 대부분 4인 가족을 기준으로 지어진 평범한 가격대의 집들이기에 그와 다른 구성원들이 살기 위해서는 엄청난 리모델링을 하거나 증축을 할 수밖에 없는 거죠.

 


왜 사람들은 이렇게 아파트를 선호할까, 자본주의 고도화가 만들어낸 기형적인 건물, 내 머리 위에서 똥을 싸는 구조에 어떻게 수긍할까에 대해 제가 타협할 수밖에 어떤 지점들은 너무나 현실적이고 이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라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인 경우가 많습니다. 아파트가 아닌데, 전경도 좋고, 구조도 좋고, 뜰도 있고, 다같이 모일 공간도 있고, 각자의 생활공간이 확보되고, 짐도 좀 모아둘 수 있는 그런 집을 구하려면 서울이 아닌 강릉에서 얼마가 필요할까요? 그 가격은 아파트와 비교해보면 얼마나 차이가 날까요?



의식주 중 가장 중요하고 가장 돈 많이 드는 주를 해결해야 할 때 가장 쉬운 타협점, 멋대가리 없는 것도 같지만 결국 우리는 자본주의를 살고 상수도 문제 등등 너무 많은 문제가 주거와 함께 발생하며 그걸 해결하는 데는 계속 자본이 들 수밖에 없기에, 대거로 이를 해결할 경우 대부분 더 저렴한 비용에 가능하기에 이 아파트라는 선택지는 유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 그래서 아파트가 아닌 무엇을 고안해내기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에 대해서 아직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아파트와 주택 사이, 그 가운데 가로놓인 것은 환상일까 균형일까 종종 생각하곤 합니다. 무언가를 비판하기 위해서는 대안이 필요한데, 서울이 아닌 곳에서도 이 한국사회 아파트 공화국을 벗어날 만한 대안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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