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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평범한 일상

나의 삶에 행복이란?

by 하이브라운

1년 중 가장 바쁜 달을 꼽으라면 단연 10월이다. 교사들의 대부분은 학년이 시작되어 생활지도, 상담, 계획서 작성 등이 몰려있는 3월을 꼽겠지만 내가 담당하는 업무는 10월에 집중되어 있다. 올해는 10월의 시작부터 긴 연휴가 있어 걱정도 되지만, 어쩔 수 없는 업무 미루기가 가능하여 행복한 여유를 가진다. 10일간의 휴가를 확실히 즐기고, 충전하여 남은 10월의 기간에 전력질주 하면 되니 오히려 더 긍정적인 생각이 든다.


연휴의 첫날, 평소에도 그렇지만(ㅎㅎ) 더욱 가정적인 남편이자 아빠가 되기로 결심한다. 오늘과 토요일인 내일은 더욱 그래야 한다. 일요일 오후에 부모님 댁에 가서 하룻밤을 자고, 월요일에 돌아오는 명절 일정을 보내기 위함 때문일까? 결혼생활 15년을 지나면서 내면 깊이 포인트제도가 구조화되었다. 부모님 댁은 차로 40분 거리의 경기도라는 적절한 위치, 명절 음식을 하지 않으시며, 교회 다니는 자녀와 손주를 위해 몇 해 전부터 차례도 지내지 않으신다. 아무리 며느리와 사이가 좋고, 합리적인 생각을 가진 어른일지라도 시댁은 시댁이고, 명절은 명절이니 사전 포인트 적립이 필수적이다.

아침부터 아내는 머리를 해야 한다며 서둘러 외출을 준비한다. 시간이 9시 30분이니 늦어도 10시 30분에는 들어오겠거니 하고, 늦은 아침을 함께 먹을 생각에

- 샌드위치 사놓을 테니 미용실 다녀와서 같이 먹을까?

- 아니, 난 4시간쯤 걸리니까 아들이랑 먹고 싶은 거 먼저 먹어!

4시간.. 순간 잘못들은 줄 알았다. 확인하기 위해 다시 물었다.

- 몇 시쯤 마치고 들어와?

- 응. 1시 반에서 2시 사이정도 될 것 같아.

4시간이 맞았다. 무슨 머리를 심으러 가는 것도 아닌데 4시간이 말이 되나? 남자 미용실은 30분 단위로 인터넷 예약을 받아서 20분이면 마치는데. 그래도 포인트를 위해 웃으며 맞장구를 친다.

- 머리 할 때 됐네!

- 더 좋은 곳으로 예약하지 그랬어.

- 집에 오래 있는데 자주 해서 뭐 해. 아참! 건조기 다 돌아갔으니 빨래만 좀 정리해 줘.

자주 하는 것 같은데..

건조기 돌리는 시간 계산도 참 정확하다. 1시간 50분이 걸리는 세탁물의 건조가 아내의 외출 직전에 종료된다.


그렇게 아내를 보내고, 스스로를 칭찬하며 빨리를 갠다. 올해는 직장에서 '생활서비스'라는 과목을 가르친다. 세차와 세탁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실습 또한 많이 진행되어 빨래 개는 것은 달인이 되어갈 정도다.

능력을 발휘하여 빨래를 갠다. 초딩 아들의 옷이 끝없이 나온다. 세 가족이라 이틀에 한번 세탁을 하는데 티셔츠만 8개, 반바지 6개가 나온다. 혼자 일본 3박 4일의 여행을 다녀왔나 생각이 든다. 주변에 아들만 3명을 키우는 지인 가족이 세 가정이나 있다. 이 가정들은 세탁이 엄청나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아들 하나인 것을 감사하며 세탁물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추가 포인트를 적립했다.


요즘 친구들과 배드민턴 치는 것에 푹 빠진 아들은 연휴에 친구들을 만나지 못해 아쉬운 모습이다. 고3까지 스마트폰을 갖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초등 5년을 보냈지만, 아직도 여유시간이 많이 생기는 명절이나 방학은 힘들어하는 모습이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안쓰럽고 기특하다.

오늘 특별히 하고 싶은 거 있는지 물어보니 요즘 유행하는 KBO 야구 카드를 사고 싶다고 한다. 프로야구 선수의 사진이 새겨진 카드 5장으로 구성된 상품으로 세븐일레븐 편의점에서 독점 판매하며, 야구의 열기와 전국의 초등학교에 소속된 어린 수집가들에 의해서 늘 품절인 상품이다.

편의점 어플을 설치하고 재고 조회를 하니 걸어서 왕복 1시간, 5.2km 거리의 편의점에 수량이 있다. 아들에게 말하니 52km라도 갈 모습이다. 평소 걷는 것을 좋아하니 나는 걷기, 아들은 자전거를 타고 함께 이동하여 1인당 2매씩 판매하는 카드 4개를 샀다. 편의점 사장님과의 짧은 대화를 통해 긴 거리를 도보로 이동한 점. 휴일에 자녀를 위해 함께 동행한 점을 살며시 어필했고, 음료수 2개를 함께 사며 추가 구매의 노력도 보여드리니 1매를 더 살 수 있게 해 주셨다. 살면서 이런 눈치만 늘어서 큰일이지만 옆에 있는 아이는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좋아한다. 이래서 어린이구나.


주변에 있는 스타필드 한 바퀴 구경하고, 아이가 먹을 음식을 포장하여 집에 들어오니 곧 아내도 머리를 다 하고 들어온다. 뭐가 바뀌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예쁘다고, 잘 어울린다고, 디자이너가 실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등의 15년간 내 마음속 자동화 수첩에 기록된 멘트들을 마구 쏟아낸다.


평범한 일상이지만 가족과 함께한 하루는 늘 행복이 넘친다. 자주 듣는 CCM의 가사 중에 행복을 정의한 부분이 있는데 매우 공감하며 남겨본다.

* 모든 분들 행복한 추석연휴 보내시길 바랍니다.


- 행복 -

화려하지 않아도 정결하게 사는 삶

가진 것이 적어도 감사하며 사는 삶

내게 주신 작은 힘 나눠주며 사는 삶

이것이 나의 삶의 행복이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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