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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빙 Nov 20. 2021

고귀한 혈통에 대한 환상

왕족에 대한 환상과 유구한 클리셰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중에서 내가 참 좋아하는 시리즈가 있는데, 바로 크리스마스 시리즈이다.

 <로열크리스마스(원제:크리스마스 프린스)> 시리즈와 <크리스마스 스위치(원제:더 프린세스 스위치)> 시리즈가 대표적인 예시인데, 둘 다 크리스마스에 왕족과 얽히면서 엮이는 에피소드를 유쾌하게 그려내서 부담 없이 재탕하기가 좋은 작품들이다. 게다가 각각 시리즈로 세편까지나 이어져서, 나처럼 뒷 이야기에 질척 질척하게 매달리는 사람에게는 아주 좋은 작품들이다.




 하지만 역시나 이런 작품들을 보면 확실히 동서양이 다른 구석이 있다는 것이 느끼는데 바로 왕족에 대한 판타지이다. 사실 현대에 이르러서 왕정을 채택한 국가는 이제 많이 남지 않았다. 저 멀리 시위를 하며 자유를 찾는 태국이 있긴 하지만 정말 소수의 케이스이고, 대부분 왕족은 상징물에 가깝다. 아주 대표적인 이상적인 예시라고 하면 영국 윈저 왕실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왕족이 과연 도움이 되느냐는 많은 이들에 의해 논의되며 왕정 폐지론은 항상 불타는 주제이지만, 왕실이 허울뿐이라도 유지가 되어있고 국민적으로 유지하도록 합의가 된 국가들이 의외로 많이 있다는 사실을 보자면 아직까지 장점이 더 큰 듯하다.


 뭇 로맨스라는 것에 신분 차이라는 설정은 유구한 클리셰이고, 신분 차이의 가장 확실한 극단인 혈통에 대한 판타지가 나타나는 건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 같아 보인다. 그러나 이런 점을 고려한다고 하여도, 확실히 서양 콘텐츠에는 유독 왕자님, 공주님 즉 고귀한 혈통에 대한 환상이 두드러진다는 점을 여러 번 느끼게 된다. 비단 왕족이 존재하는, 입헌군주제를 택한 나라들에서만 유행한다고 하기엔 훌륭한 선례가 있지 않은가. 바로 미국이라고 하는, 자유민주주의의 선두 국가의 어마어마한 로열 혈통에 대한 관심을 보이는 예시 말이다.


전 세계에서 히트를 친 다운튼 애비는 아직도 로열 블러드에 대한 선망이 얼마나 핫 한지 보여준다


 귀족으로 대변되던 상류층을 비판한 청교도주의에서 시작된 나라에서 이 무슨 아이러니인가 싶지만, 실제로 미국의 영국에 대한 사랑, 로열 블러드에 대한 환상은 아주 유구히 진행되어왔다. 크림슨 피크나 다운튼 애비같은 드라마만 보더라도 미국 부호들이 재산을 거래로 딸들을 영국 귀족과 결혼시킨 것은 뭐 숨길 것도 없는 사실이다. 거기에 돈 없는 영국 귀족 가문들의 이해관계가 합쳐져서 나온 커플의 훌륭한 예시가 바로 다운튼 애비의 그랜썸 백작 부부가 아니던가. 


 지금도 그 관심은 유구하여,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영국 해리 왕자의 아내인 매건 마클이 결혼할 때에도 미국은 엄청나게 열광하며 관심을 보였었다. 왕실을 나온 뒤의 해리 왕자와 매건 마클이 주로 모습을 보였던 곳도 바로 미국 방송이었으니 말이다.


금잔디와 구준표는 적어도 다른 말을 쓰지는 않았다


 물론 동양의 많은 왕실들이 서양 열강의 침탈에 무너져 패배의 상징이 되고, 개혁의 물결에 휩쓸려 시대의 뒤안길로 사라졌기 때문임을 감안하고서도 서양의 왕실에 대한 판타지, 즉 왕자님에 대한 판타지는 확실히 존재하다는 것을 느낀다. 애초에 왕족이 흔히 영국식이라고 부르는 영국 상류층 식의 억양과 엑센트, 단어 사용을 하며, 신분이 구별된다는 사실은 21세기에 아직 매우 기형적이지 않은가. 금잔디와 구준표는 서로 다른 라이프를 누렸을지언정 다른 언어를 사용하지는 않았다.



 언어의 차이라고 하면 생각나는 유명한 영화가 또 있다. 바로 마이 페어 레이디다. 쓰는 말이 신분을 결정한다고 주장한 히긴스의 말처럼, 확실히 서양에는 유독 신분에 대한 경계선이 아직 뚜렷하게 남아있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그 이유는 아마 서양은 제국주의의 패권국가들로서 사회가 한 번 뒤집히는 경험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는 점도 한 가지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내 짧은 식견으로는. 물론 그 외의 문화적 요소도 분명 영향을 줬음은 분명하다. 일찍이 중앙집권이 시작된 동양과 달리 영주가 왕과 같은 권리를 행사하였던 서양의 사회 구조도 영향을 미쳤을 테고. 뭐.


 중요한 것은 나라가 뒤집어지는 경험을 하고 사회 체제가 격변하는 격동기를 겪은 후손은 이런 왕족에 대한 판타지를 볼 때마다 신기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이런 왕족 판타지와 클리셰를 잘 담아낸 영화를 조심스럽게 추천해본다. 만약 당신이 로맨스나 로맨틱 코미디에 관심이 있다면 넷플릭스의 <크리스마스 스위치>, <로열 크리스마스> 시리즈를 추천하는 바이고, 시대극을 좋아한다면 <다운튼 애비>를, 호러 공포를 즐긴다면 <크림슨 피크>를 추천하는 바이다. 물론 오드리 헵번이 연기한 <마이 페어 레이디>도 여러분의 따분한 주말을 즐겁게 채워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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