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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bi미경 Feb 23. 2024

제주이주 후 가장 좋은점은


제주로 이주하고 가장 좋은 점이 무엇이냐고 아는 분께서 물으셨다. 그 즉시의 대답은 “글을 쓸 수 있게 돼서요”라고 대답했는데 시간이 지나도 그 질문이 종종 떠오르는 걸 보니 하지 못한 대답이 있는 것 같다. ‘가장 좋은 점’ 무엇일까. 계속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보며 남편과 나를 조금 떨어진 시선으로 바라보니 우린 제주로 이주한 후 많은 부분에서 성숙한 것 같다. 성숙이라는 단어가 맞을지 모르겠는데 뭔가 한 계단 더 앞으로 올라간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든다.     


남편은 많은 부분이 변하고 있다. 육지에서 차고 있던 직급이라는 완장이 걷어지자 처음엔 좀 사람이 초라해 보이는 듯싶더니 이제는 그 초라한 어깨를 아주 가볍게 흔들며 즐기며 산다. 평생직장이란 선입견을 버린 채 언제든 상황에 따라 그만둘 수 있는 곳이 회사라고 생각을 바꾸며 다니다 보니 회사에 대한 구속감이나 부담감이 많이 없어졌다. 육지에서는 왜 그렇게 이 회사가 아니면 갈 곳이 없다고, 여기가 아니면 끝이라고 생각했던지 뭐에 홀린 채 살았던 것 같다. 물론 육지에서만큼의 보수를 받고 있진 못하지만 보수 대신 시간이라는 이득을 얻고 있으니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리느냐에 따라 좋음에 대한 기준 또한 달라진다.     


남편의 예민함이 내려가니 남편과 벌였던 소소한 언쟁도 사라졌다. 예전엔 말도 안 되는 일들로 싸우고 서로 노려보기까지 했었다. 누가 더 많이 희생하고 사는지 묻고 따지며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서로를 비난했었다. 서로를 비난할 때는 가해자는 없다. 피해자 둘이서 서로가 더 힘들다고 울고 따질 뿐이었다. 속으로만 했던 생각이지만 남편과 눈싸움을 할 때 저 두 눈을 손가락으로 찌르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순간은 한순간이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선 절제하고 참고 살아야 한다. 남편도 어쩌면 두 손가락이 간질거렸을지도 모르겠다. 남편의 인내심에 갑자기 감사함이 밀려온다. 역시 일방적인 싸움이란 없다.     


얼마 전 남편이 다른 곳에 이력서를 내보겠다고 했다. 순간 저 사람이 미쳤나란 생각이 들었지만 참고 인내하며 물어봤다.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다닌 지 1년이 넘었고 연봉을 더 올려주지 않았으니 다른 곳을 찾아보겠다는 것이다. 연봉은 네가 잘했으면 올려줬겠지란 말이 절로 나올뻔했지만 그보단 회사 옮기는 것에 너무나도 쿨해진 남편의 모습에 놀라웠다. 역시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부턴 상습범.. 아니 쿨하게 쉬워지는 것 같다. 무책임해 보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평생직장이라고 믿고 다녔던 육지 때보다 공부도 많이 하면서 혼자서 할 수 있는 여러 일들을 찾아보고 있다. 내가 글 쓰는 걸 훔쳐보더니 예비작가를 위한 기획안을 만들어주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둥 개인 컨설팅 쪽에도 스스로 소질이 있는 것 같다는 둥 무작정 회사에서 시간을 보냈던 예전보다 오히려 자기가 할 수 있는 분야를 열심히 찾고 있다. 50이 넘은 나이에 이런저런 도전이 누가 보면 한심하고 불안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난 남편의 변화가 반갑다. 우리가 돈이 없지 꿈이 없는가. 많은 꿈을 꿀수록 돈을 벌 수 있는 확률도 더 높아진다.     


살아가면서 서로에게 새로움을 기대할 수 있는 관계가 되고 싶다. 외적인 새로움은 이젠 수술을 하기 전엔 어려울 것 같고 새롭게 꿈꾸는 일들에 눈을 반짝이며 기대에 찬 대화들을 나눠가고 싶다. 남들보다 지금까진 가진 것도 이룬 것도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하루는 매일 새롭게 행복하고 싶다. 어쩌면 제주로 이주해서 가장 좋은 점은 이 모든 변화를 우리만의 방식으로 서로를 도닥이며 함께하면서 얻게 된 깊어진 공감력인 것 같다. 말로 표현하기엔 부족한 끈끈한 가족애가 우리를 감싸주고 있다. 살아가면서 수많은 변화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변화에 휩쓸려 허둥대는 대신 변화에 발맞춰 그 순간의 삶 또한 즐길 수 있는 뚝심 있는 우리가 되고 싶다. 제주로 와서 가장 좋은 점은 역시 단단해진 가족애가 아닐까 싶다. 남녀로 만나서 부부로 부모로 그리고 서로를 무조건적으로 믿어주는 동반자로서 성숙해 가는 우리가 좋다. 평안한 오늘에 감사하며 새로울 내일을 준비한다.               


5년마다 찍고 있는 가족사진. 아이가 10살되는 올해엔 제주도를 배경으로 찍을 수 있게됐다. 영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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