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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bi미경 Feb 29. 2024

비건도 살이 찐다

비건의 적나라한 삶이란

 

비건을 시작한 지 어느새 2년이 넘어가고 있다. 난 채소류만 먹는 오리지널 비건은 절대 못하고 해산물과 야채만 먹는 페스코 베지테리언이다.(계란과 유제품도 먹지 않는다) 2년 전 우연히 ‘아무튼 비건’이라는 책을 읽게 된 후부터 고기를 먹지 않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불쌍한 동물만 보면 혼자 눙물을 줄줄 흘리는 청승을 갖고 있었던지라 살생되는 동물들의 아픈 삶을 읽어버린 후부터는 도저히 고기를 입에 댈 수가 없게 되었다. 난 정말 진정한 육식주의자였기에 이렇게 고기를 끊고 숨을 쉬고 살 수 있으리라곤 나조차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곱창을 목에 두른 채 씹어먹으며 살고 싶어 했던 여자가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사랑했던 삼겹살부터 짜장면 치킨 순대 해장국 등을 단번에 끊어버리다니. 나란 사람 결심 하나는 아주 지독히도 지킨다. 라면에도 고기가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 라면도 먹지 않게 되자 해장으로 먹을 음식이 없어졌다는 사실 말고는 이제는 비건에 습관이 들어 큰 어려움은 없는 상태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어려움은 엄청 많다.      


먹을 게 없다. 외식을 해도 횟집 말고는 도무지 갈 데가 없다. 온 세상에 소고기 돼지고기 치킨집이 넘쳐난다. 온갖 맛집이 모여 있다는 서울경기권을 떠나 제주로 내려왔더니 제주에는 제주흑돼지들이 솥뚜껑에 올라간 채 불타오르며 나를 유혹한다. 남편과 따님은 속도 모르고 외식 갈 때마다 흑돼지집을 찾아간다. 나는 초연한 미소를 지은 채 집에서 몰래 챙겨 온 참치캔을 가방에서 꺼내 상추에 싸서 흡입한다. 처음엔 고깃집 사장님들의 눈치를 보느라 참치캔을 상추 옆에 숨겨놓고 먹곤 했는데 이젠 참치캔도 빅사이즈를 챙겨가느라 상추에 가려지지도 않아 당당하게 꺼내놓고 먹는다. 그러고도 부족한 허기짐은 맥주로 채운다. 비건을 시작한 후로 술 또한 무한대로 늘어나는 것 같다. 잘 취하지도 않아 마시다 지쳐 졸려서 그만 마시고 잔다. 인간의 3대 욕구가 수면욕, 성욕, 식욕이라고 하던데 성욕은 진즉에 말라비틀어진 것 같고 식욕은 먹고 싶어도 먹을 게 없다 보니 수면욕만 남아 무한대로 자고 자고 또 잔다. 9시면 병든 닭처럼 졸기 시작하고 맥주를 입에 문채 10시도 되기 전에 장렬히 전사한다. 식욕이 없어지니 성욕도 사그라들고 그래서 남는 게 결국 수면욕인가 보다.      


비건이 되면 다이어트도 절로 될 줄 알았다. 비건을 시작한 지 3개월 차 때쯤엔 온몸에 부기가 빠지는 것 같고 1-2킬로 살도 저절로 빠졌었다. 그런데 그건 3개월의 매직일 뿐. 우리의 몸은 어떻게든 원래 몸무게를 찾아간다. 절대 길을 잃지 않는다. 비건에 금세 적응된 몸은 부족한 영양분을 기필코 다른 것으로라도 채우려 한다. 당이 떨어진다. 단 게 땅긴다. 언제나 허기짐을 품고 사는 비건에게 달달한 군것질 거리는 아주 좋은 유혹거리가 된다. 사탕 과일 고구마 감자 사탕 젤리 등 먹을 수 있는 간식은 다 먹어댄다. 공복감과 당떨어짐이 동시에 찾아오는 날엔 손을 달달 떨면서 콜라를 급히 들이킨다. 탄산음료는 맥주 말고는 입에도 안 대고 살았는데 비건이 된 이후론 마치 비상약을 챙기듯 콜라 몇 캔을 냉장고에 비치해두고 있다. 결론으론 고기를 먹을 때보다 비건이 된 현재가 2킬로 정도 더 쪄있다. 고기를 안 먹어도 살이 찔 수 있다니. 충분히 가능하다. 더 찔 수도 있다.     


아니. 비건을 하면서 이리도 단점만 나열하면서 비건을 왜 하고 있는 것일까. 슬프게도 비건이 좋다. 나하나 고기 한 점 먹지 않는다고 세상이 달라지는 것도, 살생되는 동물의 수가 주는 것도 아니겠지만 그래도 나라도 먹지 않고 싶다. 한 명 한 명이 모여서 열 명이 되고 열 명씩이 모여서 백 명이 되는 것인데 고작 한 명이라는 이유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열명이 될 일도 백 명이 될 일도 꿈조차 꿀 수 없게 된다. 음식을 먹으며 죄책감을 느끼고 싶지 않다. 처음부터 동물의 고통을 느끼지 않고 앞으로도 느낄 일이 없다면 그것만큼 마냥 행복할 일이 없을 듯싶지만 난 이미 현실을 듣고 보고 알게 되었기에 지금 외면해 버리면 나 스스로에게 너무나 부끄럽다. 세상 살면서 해왔던 부끄러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닐 테지만 나 스스로에게라도 부끄럽지 않게 먹고, 살고 싶다. 비건이 된 이후로 고기냄새에 꽤 예민해졌다. 침을 줄줄 흘리며 달려드는 예민함이 아닌 고기냄새가 비려지고 멀리하게끔 자연스럽게 변해갔다. 어떻게 삼겹살을 참을 수 있냐고 주변에서 물어보시는데 참는 게 아니고 머릿속에서 내가 먹지 않아야 되는 음식으로 분류된 후엔 먹고 싶지가 않아져 버렸다. 참는 것이라면 아무리 지독한 사람이라도 불판에 고기가 구워지는걸 코앞에 보면서 참치를 싸 먹을 수는 없을 것이다. 고기나 가공식품을 먹지 않게 되면서 입맛도 많이 변했다. 원재료의 맛을 찾게 되고 야채의 단맛에 감탄할 줄도 알게 되었고 모든 걸 먹을 수 있을 때보다 음식의 한정이 정해진 지금 음식의 소중함을 더 알게 되었다.      


비건은 쉽지 않다. 순간순간 육식이 확 당길 때도 있고 당이 떨어져 손을 발발 떨 때도 있고 포만감이 잘 들지 않아 언제나 배고픈 하이에나의 눈빛을 발사하며 부엌을 어슬렁거릴 수도 있다. 그래도 난 비건을 선택한다. 비건에 관해서 쓰인 책 중 황윤작가의 ‘사랑할까 먹을까’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 제목이 가슴팍에 확 꽂히는 것 같았다. 비건을 선택한 난 사랑을 선택했다. 사랑을 선택한 내가 자랑스럽고 무엇을 선택할지 선택의 기회는 지금도, 다음 끼니에도 언제나 열려있다는 걸 다른 누군가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오늘 점심은 김치볶음밥이다. 신 김치 잘게 잘게 썰어서 깨소금 참기름 넣고 잘 볶아먹어야지. 고기냄새보다 향긋할 김치냄새에 벌써부터 식욕이 올라온다. 


계란없어도 꿀맛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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