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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bi미경 May 08. 2024

자궁적출수술을 당한 내 자궁에게

     

떠나간 자궁아 잘 지내고 있겠지. 이언닌 네가 떠나고 그 빈자리를 느끼며 살고 있단다. 11센치의 혹을 달고 살았던 네가 차지하고 있던 내 뱃속 자리가 워낙 컸었기에 이언닌 네가 떠나고 나면 허리가 모래시계처럼 날씬해질줄 알았어. 근데 그건 정말 엄청난 착각이더구나. 네가 나가자마자 이 언니 몸에 있던 지방들은 이 빈자리를 빨리 채워야한다며 어찌나 잽싸게 움직이던지 네가 있던 자리엔 순식간에 거대한 지방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대가족을 이룬채 살고 있어. 언니는 이것도 수술 부작용이려니 생각하고 시간이 지나면 지방들이 다 해체할것이라 믿었단다. 그런데 지방이 내게 외치더라. 꿈같은 소리 집어치우고 자신들의 대가족을 받아들이라고. 이 언닌 믿을수가 없어. 어떻게 11센치의 네가 있을때보다 배가 더 나올수가 있니. 누가보면 다 늙은 나이에 늦둥이라도 가진것처럼 보일 것 같아. 어쩔 수 없는 이 현실, 운동은 하기 죽어도 싫고 출산을 할 수 없는 둘째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품고 살아볼게.     


그리고 네가 준 거대한 선물이 또 하나 있더라. 이 선물 때문에 이 언니 지금 감당이 안되서 돌아버릴 지경이야. 지독하고도 지독한 이놈에 변비.. 너 어쩜 이 언니를 토끼로 만들어버릴 수가 있니. 화장실을 갈 때마다 똥꼬도 울고 내 마음도 울고 변기도 울고. 이러다간 곧 토끼로 빙의되서 깡총거리며 풀이라도 뜯어먹으러 뛰쳐나갈 것 같아. 제주엔 말도 많은데 언니가 그 말들 사이에서 깡충거리며 울부짖는 모습을 꼭 봐야 직성이 풀리겠니. 얼마전엔 비장한 얼굴로 약국에 가서 변비약을 사와서 2알을 먹고 잤는데도 아무렇지도 않았어! 그래서 다음날 죽기살기로 3알을 먹었더니! 이 언니 설사병이 나선 정말 죽다 살았다. 이언니가 변비약을 5알씩 먹으면서 변비와 설사를 왔다갔다 하며 살길 바라는건 아니겠지. 우리 한평생 함께 살았던 정도 있으니 이제 그만 이언니 변비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길 하늘나라에서라도 좀 빌어줄래. 더 이상 변기에 눌러앉아 있고 싶지 않다. 너만 믿고 기다릴께. 좋은소식 좀 꼭 날려주렴.     


그래도 이 언니 네가 떠나고 좋은 점도 생기긴 했더라. 네가 있을 땐 방광을 하도 눌러대서 이언니 요실금이 생겼었잖니. 어디를 가도 화장실만 찾게되고 찔끔찔끔 자꾸 쉬가 나와대서 너 때문에 생리대 맨날 차고 다녔잖니. 1년 365일 생리대 차고 다니는 그 기분 넌 모르겠지. 여름엔 똥꼬에 땀이 맺혀서 애기들 엉댕이에 바르는 베이비파우더라도 톡톡 바르고 싶을 정도였어. 다행히도 네가 떠나고 나니 찌그러졌던 방광이 펴졌는지 소변을 볼 때마다 시원한 폭포수를 내려보내는 기분이야. 비록 똥꼬는 막혔지만 너도 인정은 있는지 소변이라도 시원하게 뚫어줘서 그건 정말 감사하게 생각해.      


그리고 정말정말 좋아진 게 하나 있어. 생리가 없어지면서 내 속에 있던 미친년이 사라졌어! 매달 생리 때마다 내 정신을 흔들어대며 뭘해도 화를 뿜던 그 미친년님께서 네가 떠남과 동시에 같이 끌려 나간 것 같아! 내가 그 여자 때문에 평생 얼마나 힘들었는지 너도 알지. 그여자만 나타나면 남편도 울고 딸도 울고 나는 발광하고. 아주 그런 난장판이 없었잖니. 네가 떠난 지 반년동안 우리집엔 따스한 평화가 유지되고 있어. 난 요즘 입꼬리에 미소까지 올린채 살고 있단다.(소름돋니?) 꿈속에서라도 마주치고 싶지 않은 그여자를 데리고 가줘서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아마 그 여자가 조금더 머물렀다면 이언니 집에서 쫓겨난채 아마 지금 머리에 꽃 꽂고 울었다가 웃었다가 하면서 한라산에서 말타고 있었을 거야. 아마 말조차도 짜증이 나서 날 뒷발로 날려버렸을지도 몰라.     


생각해보니 네가 비록 나에게 지독한 변비와 남산만한 배를 선물해주긴 했지만 네가 떠나고 여러 가지면 에서 좋아진 게 더 많긴 한 것 같아. 너도 커다란 혹달고 뱃속에서 웅크리고 사느라 여러모로 힘들었겠지. 네덕에 사랑하는 딸도 낳을 수 있었고 여성호르몬도 쭉쭉 잘 뽑고 살수 있었던 건 정말 감사하게 생각해. 네 마지막 모습 의사선생님께서 보여주셨는데 울퉁불퉁한게 정말 외계인 머리통 같더구나. 그런 모습으로 품고 있게되서 미안하게 생각해. 지금은 어여쁜 자궁모습으로 돌아온 채 잘 살고 있길 바랄게.      


비가 오는 수요일이야. 원래 이런날은 미친년이 더 자주 나오곤 했는데 오늘은 미소를 지은 채 변비에 좋은 고구마를 삶고 있는 중이야. 이러다간 콧노래도 흥얼거릴 수 있을 것 같은데 고양이들이 소름 돋아 할수도 있으니까 자제해보도록 할게. 그동안 수고 많았고 잘 떠나줘서 고마워. 마지막 부탁이 있다면 갱년기는 빨리 오지 않도록 해줬으면 해. 이 언니 갱년기 오면 떠났던 미친년이 돌아올거라고 들었거든. 우리 서로 그건 조심해보도록 하자. 그럼 굿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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