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obi미경 May 20. 2024

섹스보단 포옹을

  

3학년이 된 아이는 친구와 노는 일에 빠져 일주일에 두세 번은 친구를 집으로 데려와 함께 놀곤 한다. 늦게까지 노는경우엔 잠까지 자고 가는 경우도 많은데 우리부부는 친구가 놀러오는것도 잠까지 자고가는것도 두 팔 벌려 환영이다. 한시도 떨어지지않던 아이는 친구만 오면 엄마아빠에게 자유를 선물해준다. 그 자유는 진정 꿀맛이다. 아이 친구가 놀러오면 우리 부부는 서재에 갇힌다. 나는 글을 쓰고 남편은 아직도 포기 못한 주식공부를 하며 오후시간을 보내고 저녁도 서재에서 둘이 따로 먹을 수 있다. 아이 있을 땐 잘 시켜먹지 못하는 음식들을 씹고 즐기고 둘이서만 해야할 대화도 실컷 하고 피씨로 넷플렉스도 보며 마음의 평화를 즐긴다.     


남편은 아이 친구가 자고 가는 밤이면 나완 다른 꿈을 꾼다. 패밀리침대에서 언제나 구석에 밀려 자던 남편은 나와 둘이 잘 수 있는 기회가 왔다는 사실에 므흣한 기대를 하곤 한다. 하지만 난 얼마전 했던 자궁적출수술로 그나마 남아있던 호르몬마저 날려버린 여자로 그의 므흣한 밤에 대한 기대에 부흥하기엔 이미 아침부터 지쳐있다. 흥겹게 한잔씩하고 잠이 들라치면 그는 희망에 찬 눈빛으로 내게 접근한다. 50이 넘은 나이로 아직도 살아 움직이려 하는 그가 용하고 기특스럽지만 나는 일렁거리는 남편의 눈을 꼬옥 감긴채 굳센 포옹으로 화답해준다 

“어서 자자. 팔 베게만으로도 우린 충분히 행복할 수 있어”

일렁거리는 눈빛은 금세 꼬리내린 강아지 눈빛으로 바뀌지만 난 어느새 남편의 가녀린 팔뚝위에 머리를 눕히고 잠에 빠져든다. 가끔이지만 아이 없이 그와 잠드는 밤이 좋다. 팔베게와 껴안은 포옹만으로도 마음은 따뜻해지고 사랑이 느껴진다.     


어릴 땐 어차피 ‘죽으면 썩을 몸’이라며 열망에 불타올라 서로의 몸을 탐했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는 점차 섹스라는 행위가 번거로워졌고 집중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내말을 귀담아 들어주는 남편의 행동이나 따뜻하게 건네주는 말 한마디가 더 섹시하게 느껴졌다. 한때는 섹시함 이꼬로 섹스였지만 이젠 그에게서 느껴지는 섹시함은 나에게 평안한 만족감을 준다. 순간의 떨림과 긴장감은 여전히 느끼지만 그 감정을 굳이 섹스로 풀고 싶지 않다. 우리가 더 나이가 들어서 섹스리스 부부가 된다면 이미 사랑의 감정은 끝난 사이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건 결혼생활을 정말 잘 모를 때였다. 부부란 섹스의 유무에 빗대기엔 너무나도 다양하고 복잡한 감정이 엮인 관계다. 서로의 감정을 존중하고 이해해주는 마음이 중요하다. 섹스를 자주 한다고 사이가 더 좋은것도, 섹스를 하지 않는다고 문제가 있는 사이도 아니라 는걸 세월의 흐름을 함께 겪으며 자연스럽게 알아가고 있다.     


남자란 숟가락 들 힘만 남아있어도 섹스를 생각한다고 한다. 난 내 남편이 숟가락 들 힘이 남아있다면 밥은 내가 떠먹여 줄 테니 그 힘을 모두 모아 나를 힘껏 안아줬으면 좋겠다. 사람은 늙지만 포옹할 때 들리는 심장소리는 늙지 않는다. 여전히 쿵쾅거리며 나를 안정시켜주는 그의 심장소리를 오래 자주 듣고 싶다. 그의 심장소리가 언제나 나를 향해 뛰어주었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아빠, 당신을 이해해 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