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책이 나온 후 모든 사람들에게 알렸지만 단 한 군데 친정에는 알리지 못했다. 아빠가 살아 계실 때 책을 쓰고 있다고 말을 했었으나 아빠의 반응은 내 생각과 한 치의 어긋남이 없었다.
“아빠, 나 그동안 글 쓰고 있었어. 얼마 안 있으면 곧 내 이름으로 된 책으로 나올 거야.”
“뭐? 글? 너는 어릴 때도 무슨 빌어먹는 디자인 한다면서 돈도 안 되는 짓 하면서 돌아다니더니 이번엔 글이냐? 글 쓴다고 누가 니책 사서 읽어주기라도 한 대? 무슨 작가라도 될 수 있을 것 같아? 그딴 거 하지 말고 애나 잘 키우고 돈 되는 일이나 할 생각을 해! 네가 무슨 놈의 글을 쓴다고 되지도 않는 짓을... 중얼중얼 또 중얼중얼 계속 중얼중얼”
투병 중이었던 아빠는 몸이 그렇게 아프다면서 입만은 여전히 최고의 컨디션을 자랑하듯 입에 걸레를 앙! 하고 무신채 응원은커녕 끝없이 욕을 하기 시작했다. 혹여나 하고 기대를 한 내가 멍충이였다. 무슨 좋은 소리를 듣겠다고 말을 꺼내선 가만히 옆에 있던 엄마까지 들들 볶아대며 내가 책을 내지 못할 백만 가지 이유에 대해서 읊어대는 걸 들어야 했다. 돌아가신 지금은 내가 아빠 욕을 잔뜩 쓴 책을 당당히 냈다는 걸 알게 됐을 것이다. 아마도 책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중얼거리고 있겠지. 망할 년..이라고.
아빠에겐 망할 년이었겠지만 어쨌든 나는 솔직한 얘기를 담은 책을 쓰게 됐고 예상보다 빨리 돌아가신 아빠로 인해서 엄마는 드디어 내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엄마는 요즘 내 책을 읽으면서 하루에도 몇 통씩의 전화를 하며 물어본다.
“포비야! 너 유방암이었니??”
“엄마, 책을 끝까지 좀 읽어봐바. 유방암인 줄 알았다가 거대한 뽀드락지였다니까.”
“아 그래? 엄마 깜짝 놀랐잖아. 알았어~”
“포비야! 너 매일 술을 쳐 마시니??”
“엄마, 술이라니. 그저 시원한 맥주일 뿐이야. 그냥 목 열고 조금 마시는 거라니까”
“아 그래? 주정뱅이로 사는 줄 알고 놀랬잖아. 알았어~”
엄마는 요즘 책에서 나오는 모든 꼭지들에 화들짝 놀래며 전화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내 생활과 마음을 그대로 담은 책이라 엄마가 읽는다는 게 조금은 부담이 되기도 했고 내심 걱정도 됐다. 나를 모르는 타인이 내 얘기를 읽는 것과 가족이 내 모든 것들을 속속들이 안다는 건 느낌이 좀 달랐다. 엄마가 책을 끝까지 보지 않고 중간에 덮어줬으면 싶었다.
한동안 책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던 엄마가 어제는 갑자기 위로의 전화를 했다.
“포비야, 아빠가 전화로 그렇게 괴롭혔는데 그 와중에 책 쓰는 거 힘들지 않았어?”
“아니야 그래도 틈틈이 잘 썼어. 글 쓰면서 오히려 마음이 더 안정됐었어”
“네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빠가 지금이라도 빨리 간 게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어..”
엄마는 투병 중 갑자기 가게 된 아빠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매일 눈물을 짓곤 했는데 어젠 갑자기 아빠가 지금이라도 가게 된 게 다행이라며 눈시울을 붉히셨다. 그리곤 얘기를 꺼내셨다.
“포비야, 너 어렸을 때 엄마가 너 두고 집 나가려고 했던 거.. 다 기억하고 있었더라..”
“아.. 그 부분 읽었구나. 그럼 나도 다 기억하고 있었지..”
“엄마가 그런 상처를 남겨줘서 미안해.. 엄마는 네가 다 잊었을 줄 알았네..”
“아니야 엄마, 그때 아빠가 얼마나 지독하게 못되게 굴었는지 내가 다 알고 있으면서도 엄마가 없으면 내가 견디지 못할까 봐 내 이기심에 엄마를 붙잡았었잖아. 평생 그게 미안했어..”
“미안하긴.. 엄마 그때 갈 데도 없었어. 네가 잡아줘서 그래서 다시 살아갈 힘을 낼 수 있었어. 이제 그날 일은 다 잊고 편히 살아야 해..”
“엄마부터 이제 아빠는 다 잊고 편히 살아. 엄마가 편해야 내가 편하지..”
엄마도 기억하고 나도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엄마가 잊었을 꺼라 엄마는 내가 당연히 잊었을 꺼라 생각하며 서로 모른 채 살아왔다. 엄마는 아빠를 보낸 후 아빠가 잘못했던 일들보다 투병을 하며 아파했던 시간 동안 본인이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는 사실 때문에 많이 힘들어하고 있었다. 난 매번 지금이라도 편히 돌아가신 게 잘된 거라며 엄마를 위로하지만 엄마는 그런 말들조차 너무 냉정하다며 내게 서운한 감정을 표하곤 했다. 그런 엄마에게 지금 읽고 있는 내 책은 엄마의 과거와 우리 가족의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 주며 지금이라도 아빠가 돌아가신 게 얼마나 다행인지 깨닫게 해주고 있다.
엄마는 조금씩 변하고 있다. 나와 얘기를 나눈 후 엄마는 안방에 있던 장롱과 침대를 단박에 버려버렸다. 아빠의 옷가지가 가득했던 장롱과 크고 차가웠던 돌침대는 아빠의 상징과도 같은 물건이었다. 슬픔으로 눈물짓던 엄마는 집에서 아빠 생각이 나는 모든 가구와 물건들을 매일 아주 열심히 버리고 있다. 버리고 났더니 속이 시원하다며 내가 올라가는 날 엄마 취향에 딱 맞는 예쁜 침대를 보러 가기로 했다. 엄마의 변화가 너무나도 반갑다. 글을 쓰면서 내가 쓴 글들이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길 바라곤 했는데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인 엄마에게 가장 큰 도움을 줄 수 있게 되었다. 이것도 어쩌면 아빠의 바람이었을까. 아니, 이건 내가 만든 노력이고 선물이다.
엄마가 온전히 자신을 찾게 될 때까지 아빠라는 그림자를 계속해서 벗겨낼 때까지 엄마의 모든 변화를 응원해주고 싶다. 변화하는 모든 과정 속에 행복이 깃들길 기원한다. 우리 가족에게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