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최고명당이여
‘음 오늘은 기분이가 좋은 게 글이 잘 써질 것 같군’
오늘 아침 아이를 보낸 후 뭔가 느낌이 온다. 지금 이 순간 글을 쓰기 시작하면 글발이 술술술 풀리고 막힌 머리도 술술술 풀리고 하루 일과도 술술술 풀려버릴 것만 같은 이 신명 나는 느낌! 서둘러 노트북을 챙겨서 별다방으로 달려간다. 사랑하는 라테를 주문 후 별다방 2층으로 올라가 내 벅차오르는 글발들을 쏟아낼 명당 같은 자리를 스캔한다. 콘센트가 있는 벽 쪽 자리는 경쟁률이 치열하기 때문에 빈자리가 있으면 달리는 듯 달리는 게 아닌 듯 잽싼 경보걸음으로 빈자리를 선점한다. 만족스러운 기분을 가득 만끽하며 호기롭게 노트북을 연다. 첫 줄을 써 내려간다. 오- 좋아 좋아. 이내용이야. 이제 쭉쭉 얘기만 풀어나가면 돼! 그런데 뭐라고? 누가 뭘 어쨌다고? 그 아파트에 사는 그 여자가?? 세상에 별일이네 별일이야. 나도 모르게 내 몸과 내 귀는 옆자리에 앉은 엄마들의 얘기에 온몸이 쏠려버린다. 어머 그 여자 나도 건너 건너 아는 여잔데. 그렇게 안 봤는데 아주 사생활이 호사스러운 여자였네~ 쓰던 글은 제자리에 멈춘 채 내 몸은 어느새 옆테이블에 발라져 있는 꿀이라도 핥을 자세로 들러붙은 채 귀를 기울이고 있다. 잠시잠깐 귀를 기울인 채 정신을 놨을 뿐인데 시간은 어느새 정오가 다되어 있고 모니터 속 내가 쓰던 글은 한 줄을 채 넘기지 못한 채 깜빡이는 커서만 ‘너 뭐 하니’ 라며 나를 쳐다보고 있다.
도시에 살 땐 글을 무조건 별다방에서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별다방에서 노트북을 펼친 채 무언가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뭔가 유식해 보이고 있어 보이고 바빠 보였다. 노트북을 펼친 채 책 한 권을 옆에 두고 커피와 샌드위치를 시켜 먹으며 무언가에 몰두한 모습! 이 얼마나 뉴요커같이 멋스러운가. 그래서 나도 별다방으로 제집 드나들 듯 출근도장을 찍어댔다. 결과는 매번 처참했다. 아침부터 먹어댄 샌드위치는 뱃살만 두둑하게 올라오게 만들었고 다닥다닥 붙어 있는 별다방의 자리배치는 옆자리에서 나누는 대화소리에 나도 어느새 한마디 거들고 싶게끔 만들곤 했다. 음악소리는 또 어찌나 쩌렁쩌렁한지. 운 좋게 옆자리에 사람이 있지 않은 날에도 귀에서 울리는 매장 음악소리 때문에 정신이 산만해져서 머리가 멍해지는 건 마찬가지였다. 나는 왜 저 뉴요커들처럼 내 일에 집중할 수가 없는지 매번 처참히 실패하면서도 매번 별다방을 들락거렸다.
마음먹고 집에서 글을 써볼 때도 있었다. 집에선 주로 부엌식탁에 앉아서 글을 썼다. 자리에 앉으면 집안에 있는 온갖 것들이 내게 말을 걸어온다. 쌓여있는 설거지가 나를 부른다. ‘저녁을 먹으려면 나를 먼저 씻어야 할걸~’ 쌓여있는 빨랫감이 나를 부른다. ‘썩은 내를 풍기기 전에 당장 나를 빨지 못해~’ 부엌에 숨겨져 있는 초코파이가 나를 부른다. ‘당충전을 하고 나면 글이 술술 써질걸~’ 집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나를 부른다. 이것부터~ 요것부터~ 지금 글쓰기 싫지? 구멍만 뚫려 있는 내 얇은 귀는 또다시 들썩인다. 설거지만 하고 쓸까? 빨래는 간단하니까 빨래만 하고 쓸까? 아냐. 당부터 충천하면 기분이 좋아질 거야 초코파이부터 한입 콱... 안된다. 안 돼. 유혹에 넘어가면 안 돼. 우직하게 앉아서 글부터 써야 해! 그러나 내 손은 벌써 초코파이를 뜯고 있고 초코파이는 이미 나와 한 몸이 되어가고 있다. 집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내 글쓰기를 방해한다. 아- 도대체 내 집중력은 태생부터 갖춰지지 못한 것일까.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에선 말한다. 여성이 글 쓰는 법을 안다면, 자기만의 방이 있다면, 연간 500파운드의 돈이 있다면 대단히 중요한 어떤 일이 발생했을 것이라고. 나는 글 쓰는 법을 알고 있고, 돈은 생겼다가도 없어지는 게 돈일 것이고, 그렇다면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자기만의 방’이었다. 뉴요커를 따라 샌드위치만 씹고 돌아오게 되는 별다방도 아니었고, 부엌 식탁에 앉아 설거지와 빨래 간식들의 부름에 쓸려 다니게 되는 가족 공용의 공간도 아니었다.
제주로 이주하면서 별다방 출입을 스스로 금해버렸다. 내게 별다방은 어쩌면 자기 과시와 같은 공간이었을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하고 있다고,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수다를 떠는 당신들과는 다르게 무척이나 바쁜 사람이라며 혼자만의 과시를 하는 공간이었다. 나는 그 공간에서 정작 아무것도 한계 없었다. 비싼 커피나 홀짝 거리면서 뭔가를 하는 사람을 따라 하느라 바빴을 뿐이었다. 환경을 바꾸면서 내게 어떤 공간이 필요한지 깊이 고민했다. 나는 혼자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아무도 의식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쩍벌다리를 하든 코를 파든 떡진 머리를 풀어헤쳐놓든 그저 글에만 집중할 수 있는 나 혼자만의 공간이어야 했다. 거실을 내 공간으로 만들어야 했다. 티비와 소파를 없애버렸고 수많은 책들이 꽂혀있는 책장으로 거실벽을 도배했다. 글동무들이 함께 앉을 수 있는 긴 식탁을 놓았고 주방을 등진 위치에 노트북을 놓았다. 거실 벽에 크게 난 창에선 제주 돌담벼락과 한라산풍경이 펼쳐져 있고 산만한 음악소리 대신 밖에서 들리는 새소리와 바람소리가 거실을 가득 채우고 있다. 우리 집 거실은 나만의 ‘자기만의 방’으로 자리 잡았다.
이곳에서 첫 번째 책인 「그렇게 남들 기준에 맞추며 살지 않아도 돼」를 썼고 지금 두 번째 책을 집필 중이다. 이젠 별다방의 값비싼 커피보다 집에서 내려먹는 캡슐커피가 세상 달콤하고 4계절에 따라 달리 들려오는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언제나 같은 컨디션과 같은 환경에서 내 글을 쓰고 있다. 무언가 되지 않을 때 나를 탓하거나 환경을 탓하는 대신 내가 가장 원하는 게 무엇인지 고민하고 적극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것을 찾아 바꿔나가야 한다. 환경을 바꾸면 변화할 수 있다. 변화된 곳에 길이 있고 그 길을 잘 쫓다 보면 어느새 나만의 길을 걷게 될 수 있다.
오늘도 난 나만의 공간에서 글을 쓰고 있다. 버지니아 울프가 부럽지 않다. 이곳은 나만의 ‘자기만의 방’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