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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풀사이로 Jun 27. 2023

여름을 두리번거리며

지난 수요일이 하지였지요, 1년 중 해가 가장 길고 밤은 짧은 때입니다.


산바람 강바람이라는 동요에 맞추어* 스물네 개의 절기를 주입식 교육으로 배운 것은 초등학생(당시 국민학생) 때의 일인데, 막상 절기를 살피며 지내게 된 것은 몇 년 되지 않습니다. 시골에 살게 되어서인지, 나이가 들어 자연이 더 궁금해져서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둘 다 일지도요. 어쨌든 저는 절기와 절기마다 벌어지는 세시풍속을 좋아합니다.


하지가 되면 모내기가 끝나고, 감자를 캡니다. 보통 햇감자를 하지감자라고 하잖아요. 저는 올해 감자를 늦게 심어서, 이 주간보고를 보내고 나서 감자를 캘 것 같습니다. 하지가 지나면 금방 장마가 시작되지만 곧 가뭄도 오기 때문에, 시골에 사는 사람들은 이때부터 바빠집니다. 농사를 생업으로 하지도 않고, 아주 작은 텃밭을 꾸리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주 만에 훌쩍 크는 작물들이 있기 때문에 부지런히 텃밭을 돌봅니다. 지난주와 오늘의 가지, 고추, 오이의 사진입니다. 줄기나 잎만 웃자라면 열매로 양분이 가지 못하기 때문에 꾸준히 순 지르기를 해야 합니다. 아깝다고 그냥 두면 모두를 잃는다는 사실을 배웠으니까요.


토마토는 비에 약한 작물이라 제 때 수확하지 않으면 썩기 쉽습니다. 그래서 비 소식이 있으면 조금 이른 수확을 하기도 합니다.


어느새 담장 높이를 넘어선 키다리 옥수수는 이제 수염이 나왔습니다.



보이지 않는 땅 밑에서 애쓰는 작물도 있습니다. 당근인데요. 통통한 주황빛 열매를 만나려면 저 또한 애를 써야 합니다. 촘촘한 녀석들은 솎아내고 무더위 속에서 열심히 잡초를 뽑습니다.



한여름의 텃밭에서 열닷새를 보내고 나면 '작은 더위'라 부르는 다음 절기, 소서가 오겠지요. 절기를 살피며 살아가는 일은, 열심히 두리번거리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을 차분히 살아내며 딱 지금만 누릴 수 있는 기쁨과 행복을 찾아내는 일이요.


요즘 저는 텃밭이 아닌 곳에서도 절기를 살피듯 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농부가 지나간 절기에 얽매이고, 다가올 절기만 바라보지 않듯- 저 또한 지금 통과하는 삶의 절기에 집중해 보려고요. 지나간 시간을 되감고, 나중을 걱정하느라 오늘을 다 써 버리진 않으려고요. 하루를 촘촘히 보내고 마칠 때, 내일 마실 차를 준비할 작은 여유가 있다면 저는 충분히 행복할 것 같거든요.



* '산바람 강바람'은 산 위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 이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노래인데요. 노래에 맞추어 가사 대신 24절기를 외곤 했습니다. 신기하게 딱 맞아떨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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