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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사와동화 Sep 26. 2023

모로의 내일

이선주, 최영희, 최상희, 황영미, 조우리 | 사계절 | 22년 7월

164쪽


사계절문학상 20주년 기념 앤솔러지로 이선주, 최영희, 최상희, 황영미, 조우리의 글이 실려 있다.               


기획의 말

선택 _이선주

모로의 내일 _최영희

행성어 작문 시간 _최상희

안녕! 정신 나간 천사 _황영미

나와 함께 트와일라잇을 _조우리  

 

줄거리는 책 소개에서 가져왔다.

       

「선택」 청소년을 사랑해서 청소년 소설을 쓴다고요?

독자로부터 메일 한 통을 받았다. ‘김선민 작가님 메일 주소 맞나요?’ 제목에서부터 성급함과 초조함이 묻어나는 메일이었다. 모르는 독자로부터 온 메일은 일순간 작가를 십 대의 어느 날로 데려가 버린다. 작가는 독자에게 답 메일을 쓰면서 잊은 줄 알았던 어느 시절을 다시금 떠올리게 되는데…. 어느새 작가는 글쓰기 숙제를 위해 억지로 엄마의 하루를 따라다녔던 그 날에 가 있다. 과연 작가가 마주하게 된 ‘십 대의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모로의 내일」 권현재, 내가 널 돕는 이유는….

오가영이 길 가던 사람의 가방을 낚아채려 했다고? 반장 권현채가 동네 아저씨에게 달려들었다고? 소심이 홍주연이 이유 없이 행인을 밀었다고? 이게 다 무슨 일이야. 모로는 주변 친구들에게 일어나는 기이한 일의 정체를 알고 싶다! 왜냐고? 그 기이한 일이 모로에게도 일어났기 때문! 어디선가 들리는 목소리로 인해 조종당하는 아이들의 이야기. 과연 비밀스런 목소리의 정체는 무엇일까?    

 

「행성어 작문 시간」 최상희

제목은 ‘화물칸에서 살아남는 법’입니다.

구오진에서 헤카테 행성으로 이주해 온 오올리아쉐시비이이아오요킨. 사실 이 긴 이름은 작문 담당인 조우마린 선생이 나를 부를 때 발음하는 소리다. 선생은 2년째 내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했다. 구오진 단어가 어색한 선생님처럼 나 역시 헤카테어가 낯설고, 어렵지만 이곳에 살기 위해서 내게 선택지는 없다. 무조건 헤카테어를 마스터할 것! 졸업 필수 과목인 작문 시간에 이번에도 낙제하면? 으, 생각하기도 싫다. 과연 오올리아쉐시비이이아오요킨은 작문 과제를 잘 해낼 수 있을까?     


「안녕! 정신 나간 천사」 황영미

제 첫사랑은 이제 과거완료형이 되었네요.

내 인생작이자 삶의 지침서였던 〈정신 나간 천사〉가 실은 현실과는 거리가 먼 작품이었다? 이럴 수가. 〈정신 나간 천사〉로 첫사랑까지 생겼던 내게 이 깨달음은 마른하늘에 나타난 천둥 번개와도 같은 충격이다. 인생작의 주인공이었던 강재경과 닮은 첫사랑 J가 나와 같은 고등학교였다니? 다시 만난 J를 보자 묻고 싶은 게 많아진다. 과연 나는 J에게 그 시절 미뤄뒀던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다시 만난 첫사랑을 향해 강력한 일침을 날리는 이야기.     


「나와 함께 트와일라잇을」 조우리

내가 왜, 내가 누군지 증명해야 돼?

약속한 것도 아닌데, 자꾸만 마주치는 아이 이영. 같은 반이라고 하는데 왜인지 교실에서는 만날 수 없다. 그래도 이영을 만나면 지독했던 두통이 사라지고, 집에선 이룰 수 없었던 잠이 솔솔 오는데. 엄마와 나나 이모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알 수 없는 충격에 빠진 나는 아빠에게 전화를 걸지만, 아빠 역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그날도 나는 이영에게 말한다. 이렇게 살 바에야 나도 너처럼 되고 싶어. 나만 알고 있는 이영의 정체는 바로 뱀파이어. 과연 나는 뱀파이어가 되는데 성공하게 될까?


「나와 함께 트와일라잇을」의 글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여러 군데를 베껴 써봤다.


두통은 존재에 미세한 균열을 일으킨다. 처음에는 딱딱, 딱따구리가 관자놀이를 정중하게 노크하듯 두드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점차 박자와 세기의 일관성을 잃으며 집요하게, 오랜 시간 지속된다. 이 혼란스러운 통증이 반복될수록 나는 내가 금이 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내가 움직일 때마다, 걸음을 걸을 때마다 자칫 잘못하면 내 몸과 영혼이 와장창 부서져 버리지는 않을까 두렵다. 그래서 되도록 조용히 숨 쉬고 조용히 움직이고 조용히 말한다.

오랜 시간 원인 모를 두통에 시달렸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어느 날 두통은 사라졌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조용히 숨 쉬고 조용히 움직이고 조용히 말한다. 막연한 불안감을 느끼며. 나는 두통을 통해 삶을 두려워하는 법을 배웠다.     


*     

성적표가 나오자 웅성거리던 아이들에게서 소리가 뽑혀 나간 것처럼 교실은 조용해졌다. 내 성적표를 힐끗대는 짝의 눈길을 피해 손바닥으로 가리고 점수를 확인했다. 생각보다 더 많이 하락했다. 성적표를 구기다시피 가방 속에 집어넣다 담임과 눈이 마주쳤다. 담임은 입 모양으로 ‘잠깐 보자’고 말했다. 동시에 하교를 알리는 종이 울렸다.

“학교에 적응하기가 힘드니?”

고개를 죄우로 흔들자 담임은 내 어깨를 부드럽게 두드리며 말했다. 

“성적이 저번 학교에서보다 많이 떨어졌길래. 괜찮아. 기죽지 말고, 또 열심히 하면 되지. 선생님은 믿는다.”

뭘 믿는다는 건지. 나를? 내 성적이 오를 것을? 성적이 오르지 않아도 굳게 살아갈 나를? 물어보진 못했다. 복도에 아이들이 쏟아져 나오자 담임은 다시 내 어깨를 두드리곤 계단을 내려갔다.

“담임이 뭐래?”

교실로 들어오자 누군가 물었다.

“공부 열심히 하래.”

“성적 많이 안 좋아?”

“완전 망했어.”

“엄살 아니야?”

그렇게 말하면서도 왠지 그 애의 얼굴은 기뻐 보였다. 이상하게 아이들은 성적이 떨어진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들 기뻐한다. 성적이 올랐다는 말보다 훨씬 동질감을 주는가 보다. 아빠의 걱정스러운 얼굴이 떠오르자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두통이 시작된 건 세 달 정도 되었다. 전학 온 시점과 같았다. 처음엔 타이레놀로 버틸 만했는데 점차 더 심해져 부모님께 말씀드릴 수밖에 없었다. CT촬영에 이어 MRI까지 찍고 저명한 뇌의학과 교수도 만나 봤지만 원인은 찾을 수 없었다. 그냥 그 나이 때, 중고등학생 때 학업이나 교우 관계 스트레스로 두통이 오는 건 매우 흔한 일이라는 말을 들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신경정신과로 연계해 준다며 의뢰서를 써 줬다. 아빠는 집에 돌아와 그 종이를 박박 찢어 버렸다. 아빠의 마음이 이해가 가는 한편 저렇게 박박 찢어 버릴 건 또 뭔가 싶었다. 그 후로 두통 치료에 탁월하다는 한의원에 가 침도 맞아 보고 한약도 먹어 보았지만 차도가 없었다. 그 뒤로 할 수 있는 건 그저 두통이 오면 이부프로펜 계열의 진통제와 아세트아미노펜 계열의 진통제를 주의 깊게 교차 복용하며 견디는 일뿐이었다. 아빠는 여차하면 저번 학교로 재전학까지 생각하는 듯했다. 고등학교 배정을 생각해 학군이 좋은 곳으로 전학을 왔지만 두통은 예상 밖의 변수였다.

나는 자괴감에 시달렸다. 하다못해 초등학교 때부터 늘 일등이었고 중학교에 와서도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해 왔다. 엄마는 원래 내 성적이나 등수에 별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지만 아빠는 달랐다. 내 성적표와 상장들을 차곡차곡 모았고 반장이 되면 파티를 열어 줬다. 내신을 중요하게 생각해 교내외에서 열리는 크고 작은 행사에 빠짐없이 참여하길 원했고, 아무리 작은 대회에 나가더라도 회사를 빠지고 응원하러 왔다. 나는 나를 자랑스러워하는 아빠를 바라보는 게 좋았다. 얘가 내 딸이라고, 공부며 운동이며 못 하는 게 없다고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할 때면 나도 모르게 얼굴이 빨개졌지만 아빠의 손을 더욱 꼭 붙잡곤 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점수를 가방에 담고 무거운 마음으로 교문을 나섰다. 학원에 빠지고 작은 꽃다발을 사서 집으로 향했다. 오늘은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이었다. 성적표를 보여 주기에 확실히 좋은 날은 아니었다. 집에 도착하니 샤워도 하지 않은 채 엄마는 소파에 누워 있었다.

“엄마, 나갈 준비 안 해?”

“...가기 싫어.”

“그래도 아빠가 신경 써서 예약한 건데, 얼른 일어나.”

“결혼기념일이라고 스테이크 먹는 거 너무 웃기지 않니?”

엄마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옷방으로 갔다. 아빠가 골라 놓은 옷이 거울에 걸려 있었다. 앞부분에 작은 흰색 리본이 달린 네이비 색 원피스였다. 대한민국 중학생이라면 절대 입지 않을 것 같은 스타일이었지만 군말 않고 몸에 걸쳤다. 아빠는 셋이 나갈 때면 이렇게 내가 입을 옷과 엄마가 입을 옷을 골라 놓는다. 우리가 방문할 장소와 어울리는지, 세 가족이 서로 조화로운지를 염두에 두고 고른다고 한다. 자주도 아니고 가끔이니 나야 별 생각 없이 아빠가 골라 준 옷을 입었지만 엄마는 끔찍하게 싫어했다. 몸의 라인이 드러나는 옷도, 하이힐도, 함께 준비된 반짝이는 액세서리도 모두 끔찍하다고 했다. 하지만 결국 엄마는 입고 신고 착용했다. 아빠는 절대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지르는 사람이 아니었고 조곤조곤 설득하는 타입이었는데 그 끈질김에 당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그것들은 누가 보기에도 엄마에게 잘 어울렸다. 평소에 입는 낡고 늘어난 티셔츠 쪼가리들보다 훨씬 그랬다.

흰 블라우스와 무릎 아래로 부드럽게 떨어지는 스커트를 입은 엄마를 보자 아빠의 눈은 반달이 되었다. 기분이 좋을 때면 아빠 눈은 금세 반달이 되었고, 그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아빠의 신체 기관이었다. 나는 아빠에게 준비한 꽃다발을 내밀었고 아빠는 다시 그것을 엄마에게 내밀며 말했다.

“꽃에게 꽃 선물.”

엄마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나는 둘의 눈치를 살폈다. 아빠는 그냥 ‘아름답다’거나 ‘사랑한다’고 말하면 될 것을 꼭 이상한 표현으로 엄마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 ‘주머니에 넣고 다니고 싶다’거나 ‘인형처럼 예쁘다’거나, 모두 엄마가 싫어하는 표현들이다. 아빠는 나쁜 사람은 아닌데 어느 면에서 조금 센스가 없다. 문제는 최근에 엄마가 아빠의 그런 점을 더 못 견디어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빠는 더더욱, 그런 엄마를 이해하지 못한다.     

예약된 레스토랑은 서울 시내가 모두 내려다보일 만큼 높은 곳에 있었다. 약 세 시간에 걸쳐 길고 긴 저녁을 먹었다. 샴페인을 마시며 아빠가 말했다.

“이 샴페인 이름은....이런 이름을 붙인 거야. 당신은 내가 죽으면 이렇게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겠어?”

“응.”

아빠는 농담식으로 물었는데 엄마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게다가 당신이 죽지 않더라도 혼자서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어.”

이렇게 덧붙인 뒤 엄마는 우아하게 핑크빛 샴페인을 입으로 가져갔다. 레스토랑의 공기가 2도쯤 내려갔다.

“그래. 결혼기념일에 듣기 좋은 말이네.”

아빠는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아빠는 화가 나면 저런 식의 화법을 쓴다.      


*     

낮은 목소리로 긴 말들이 이어지는 밤들에 대해 알고 있다. 

주로 내 방에 누워 듣게 되는데 내용은 전혀 들리지 않고 웅얼거리는 울림만이 벽을 타고 전달된다. 아빠의 억양은 단조로웠지만, 엄마의 억양은 높아지다 낮아지다 흔들리다 깨지다 했다. 때론 모든 말들이 뭉개지는 소리와 함께 일정한 박자를 가진 낮은 흐느낌으로 들려왔다. 한번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듣기 위해 안방 문 앞까지 간 적이 있다. 엄마는 계속 같은 말을 하며 애원했고 아빠는 여러 말들을 써 가며 설득했다. 문틈에서 새어 나오는 깨진 단어들의 조각이 두려워 방으로 도망치듯 돌아왔다. 긴 말들의 긴 밤들은 최근 심해졌고 자주 되풀이됐지만 나는 모른 척했다.     


*     

가끔 아빠가 출장을 가 들어오지 않는 밤이면 엄마는 밤새 거실에서 영화를 봤다. 밤 10시에 잠들고 아침 6시에 일어나는 일은 우리 가족에게 정언 명령과도 같은 일이었기에 아빠의 부재는 엄마의 자유를 뜻했다. 언젠가 한밤중 화장실에 가려다 영화를 보며 펑펑 울고 있는 엄마를 본 적이 있었다. 다음 날 학교에서 돌아와 잠든 엄마 몰래 영화를 재생해 봤다. 영화의 제목은 <디 아워스>. 영화 속에서 아이의 엄마는 남편의 생일 케이크를 만들다 말고 아이를 버리고 집을 떠난다. 그리고 긴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그 아이는 자신의 생일날 창문 밖으로 몸을 던진다.     


*     

내가 어릴 적, 엄마는 지금처럼 자주 울지 않았다. 지금처럼 식물만 그리지도 않았다. 내가 태어났을 때 엄마는 몇 번의 전시 경력이 있는, 막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화가였다. 하루는 엄마와 거실의 흰 벽 가득 그림을 그린 적도 있었다. 온갖 미술 도구를 다 꺼내 와 하루 종일 그림을 그렸고 마침내 아빠가 올 무렵에 그것을 완성했다. 그날 아빠의 백지장 같던 얼굴을 기억한다. 다만 색채로 가득한 건 벽뿐만이 아니었고 엄마와 나, 바닥과 가구들도 마찬가지였는데 아빠는 그 그림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는 듯이 행동했다. 나는 그런 아빠가 왠지 웃겨 한참을 깔깔 웃었다. 다음 날 벽은 다시 새하얀 페인트로 칠해졌고 바닥과 가구 역시 흔적 없이 말끔해져 있었다. 그리고 나는 깔깔 웃은 전날의 내 행동을 오래 부끄러워했다.     


*     

2교시쯤 시작된 두통은 타이레놀 두 알을 먹어도 점심시간까지 사라지지 않았다. 급식을 건너뛰고 엎드려 있는데 누군가 책상을 툭툭 쳤다. 고개를 들어 보니 얼굴은 낯익은, 그러나 이름은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 애가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많이 아픈가 해서.”

“괜찮아.”

...

서늘한 손가락이 관자놀이에 닿았다. 영이는 손가락 두 개로 둥글게 원을 만들며 내 관자놀이를 부드럽게 마사지했다. 거짓말처럼 욱신거리는 통증이 서서히 멀어졌다....

’영이 손이 약손이었어.‘

어제까지 존재도 이름도 모르던 애였지만 정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다음날 답례로 초콜릿을 챙겨 갔다. 하지만 영이는 교실에 없었다.

...이렇게 작은 공간에서 많은 날들을 함께 지내면서도 서로가 서로를 전혀 모를 수 있다는 게 새삼 낯설었다.     

며칠 후 또다시 안방에서 흘러나오는 길고 낮은 목소리들에 밤새 한숨도 못 자고 학교에 갔다. 오전부터 체육 수업이 있었고, 매번 체육 시간마다 교무실로 찾아가 두통을 이유로 수업에 빠질 허락을 받는 행위도 지긋지긋하게 느껴졌다. 일단 운동장에 나가 대충 하는 시늉을 하다가 체육 선생님이 안 보는 사이 대열에서 빠져나왔다. 교실까지 가다간 걸릴 것 같아 가까운 체육 창고로 들어갔다. 

뜀틀이니 발판이니 하는 것들이 충분히 햇볕을 받아 따뜻한 온도를 품고 있었다. 구석으로 들어가려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쌓아 놓은 매트 위에 영이가 아무렇게나 누워 있었다.

“너 왜 여기 있어?”

나의 물음에 영이는 놀라지도 않고 대답도 없이 천천히 눈을 떴다.

“두통?”

“아니 잠을 못 자서...”

“잘 찾아왔네. 여기 진짜 잠 잘 와.”

나는 또 다른 매트 무더기로 가 자리를 잡았다. 아득하게 먼지 냄새와 가을볕 냄새가 났다. 시간이 멈춘 것처럼 창고 안은 고요했다.

“여긴 다른 세계 같네.”

내 말에 영이가 다른 세계 맞지, 라고 작게 중얼거렸다. 나는 다시 잠들며, 왜 얘를 만나면 항상 이렇게 잠드는 것일까 생각했다. 그래 봤자 두 번의 만남이었지만 다음은 어떨지, 벌써 다음에 대해 생각하며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날 이후 체육 시간마다 나는 체육 창고로 갔다....영이는 그곳에 있을 때도, 없을 때도 있었다. 고작 낮잠을 자거나 짧은 대화를 나누었을 뿐인데, 그 애와 아주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영이가 어디에 사는지, 전화번호는 뭔지, 왜 교실에서 보기 힘든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체육 창고에서만은 다른 시공간에 있는 것처럼 그 애를 대했다. 적어도 그 애는 학교생활의 연장선에 존재하지 않았다.     


*     

엄마는 점점 더 집을 식물들로 채웠다. 안 그래도 수많은 화분들로 어지러운 엄마의 작업실은 열대 식물을 기르느라 온도와 습도까지 높아져 온실화되었다. 엄마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곳에 들어가지 않았다. 묘하게, 무언가 썩고 있는 냄새가 났다. 아빠마저도 부쩍 예민해진 엄마를 자극하지 않으려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엄마가 작업실에서 머무는 시간은 점점 길어졌다. 그리고 갑자기 엄마는 이제 고기를 먹을 수 없다고 말했다.     

추석에는 전을, 설에는 소고기가 듬뿍 들어간 떡국을, 생일에는 불고기를 잡채를, 결혼기념일에는 스테이크를 먹어야 하는 게 아빠가 생각하는 가정의 완전성이었다면, 엄마의 한마디로 그것은 와장창 파괴되어 버렸다. 엄마는 까탈스러운 작은 초식 동물처럼 굴기 시작했고 고기를 보면 구역질을 했다. 엄마의 끼니는 곧 샐러드로만 채워졌다. 그러자 아빠는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 식사 자체를 피해 버렸다. 어둠이 내리면 집에는 긴 침묵이 찾아왔고 텅 빈 부엌엔 홀로 앉은 엄마가 내는 풀 씹는 소리만 가득했다. 엄마는 누군가에게 보란 듯이 아주 오래오래 그것들을 씹어 삼켰다. 그럴 때 엄마의 눈동자는 가장 높은 와트의 형광등을 켠 것처럼 이상하게 빛났다. 그런 눈동자를 본 기억이 있다. 로드킬을 당한 고라니의 눈동자였다. 나도 더 이상은 엄마와 함께 식사할 수 없었다.     


*     

영이가 내게 그 이상한 고백을 한 날은 비가 왔다. 체육 수업 대신 교실에서 배구 경기 영상을 틀어 줬고 아이들은 제각기 딴짓을 했다. 조용히 교실을 빠져나왔다. 영이는 체육 창고 안 작은 창문 앞에 서서 비가 내리는 걸 바라보고 있었다. 안개처럼 옅고 뿌연 비였다.

“어딘가 거대한 가습기를 틀어 놓은 것 같네.”

“넌 내가 누군지 알아?”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는 당황했다. 그런 질문은 독서 기록장 같은 데 몰래 쓰는 거 아닌가.

“누군데?”

“난...뱀파이어야.”

영이는 곧바로 킬킬 웃었다. 그 애의 의도는 모르겠지만 난 별로 웃기지 않았다.

“믿지는 않겠지만.”

“근데 왜 말하는 거야?”

“비도 오고 해서.”

그럴듯했다. 우리는 날씨 하나에도 충분히 감정 널뛰기를 할 수 있는 열여섯 살 소녀들이니까. 그래도 뱀파이어라니 좀 심했다. 염력이라거나 사이코메트리라면 좀 납득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지금쯤 낮의 태양에 불타서 사라져야 하는 거 아니야?”

“인간계만 발전한 게 아니야. 뱀파이어계도 발전하고 있어.”

영이는 뱀파이어도 백신을 통해 햇빛에 대한 방어력을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여전히 인간의 피도 먹어?”

영이는 잠시 망설이다 일종의 로켓배송 같은 방식으로 집에서 편히 받아볼 수 있다고 했다. 혈액이 든 박스가 가득한 택배 트럭을 상상하니 조금 아찔해졌다.

“그런데 왜 중학생 같은 걸 하고 있는 거야?”

“...뱀파이어가 된 지 얼마 안 됐거든. 혼자선 심심하기도 하고.”

심심한 뱀파이어인 영이는 뱀파이어 종족이 파편화되어 대부분 홀로 살아간다고 덧붙였다. 시간은 좀처럼 흐르지 않고 아무런 할 일도 없이 이 무한한 시간을 어떻게 사용해야 좋을지 아직도 모르겠다며.

“너 <트와일라잇> 봤어?”

내가 묻자 영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 보면 뱀파이어들이 무지 아름답고 능력도 엄청 나던데...”

”나도 능력 있어.“

”어떤 건데?“

영이가 손을 뻗어 내 정수리에 얹었다. 약을 먹은 후에도 둔탁하게 남아 있던 두통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설마 치유력?”

“타인의 고통, 슬픔, 아픔, 절망 같은 것들을 뽑아낼 수 있어. 그런 다음 내 에너지로 전환시키지.”

말문이 막혀 영이를 따라 영이의 정수리에 내 손을 얹어 보았다. 얘가 이렇게 엉뚱해서 친구가 없구나 싶었다.

“나한테 에너지를 뽑아 먹기 위해 접근했다 이거지.”

“고통을 가진 인간만이 나를 발견할 수 있지.”

우리는 서로의 머리에 손을 올린 채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네가 정말 뱀파이어라면, 증명을 해 봐.”

“싫어.”

“왜?”

“내가 왜, 내가 누군지 증명해야 돼?”

그때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영이와 나는 손을 내리고 조금 어색해진 상태로 서로에게서 떨어졌다. 다음 시간은 담임의 과목이라 돌아가야 했다.

“어항 속 물고기에게 초록 들판에 대해 말해 준다 한들.”

혼잣말인지 내게 하는 말인지 알 수 없는 영이의 중얼거림을 뒤로한 채 나는 체육 창고를 빠져나왔다. 나는 뱀파이어가 아니어서 담임의 수업 시간에 내 존재를 증명해야만 했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주로 영혼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였다. 영이는 죽음과 관련된 모든 것을 좋아했다. 장례식, 무덤, 관, 묘비명, 영혼의 세계...

“오직 죽음으로 인해 생의 모든 순간이 의미를 가지는 거야.”

영이는 세 번의 자살 시도를 해 봤다고 했다. 하지만 뱀파이어이기 때문에 모두 실패했다. 기쁨도 슬픔도 고통도 절망도 아픔도, 이제는 죽음과 닿을 수 없는 자신의 영생에선 아무런 가치도 없다고 말했다.

“죽기 위해 엄청 노력했었어. 하지만 매번 실패했고 그러고나서야 비로소 내가 어떤 존재인지 받아들일 수 있었어. 나는 이 삶을 견뎌야 해.”

가을이 깊어지며 짧아지는 해로 인해 길어진 황혼을 함께 바라보며, 그런 말들을 내뱉는 영이의 옆모습은 조금 쓸쓸해 보였다. 그 애가 뱀파이어든 아니든 눈을 돌리면 연기처럼 사라져 버릴 것만 같은 위태로운 존재감이 느껴졌다. 나는 그게 두려워 영이의 손이나 옷자락 같은 것을 내내 쥐고 있었다. 인간의 시간도 좀처럼 흐르지 않는 그런 계절이었다.     


*     

학교에서 돌아오니 나나 이모의 신발이 놓여 있었다. 엄마의 오랜 친구로 어릴 적부터 본 사이였지만 최근 몇 년간은 뜸했는데 웬일인가 싶었다. 점심 먹은 것이 체한 데다 두통이 점점 심해져 조퇴를 하고 나왔다. 아무래도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았다. 집은 절간같이 고요했다.

엄마의 작업실은 문을 열자 덥고 습한 기운이 얼굴에 훅 끼쳤다. 엄마의 식물들은 아무렇게나 마구 웃자라 있었고 어딘지 모르게 조금씩 지쳐 있는 것처럼 보였다. 유화 물감 냄새와 늪지 냄새 같은 것들이 엄마의 채취와 뒤섞여 있었다. 그리고 열대의 꽃향기까지. 붉고 노랗고 흰 꽃들이 여기저기서 달큰하고 강렬한 향을 내뿜고 있었는데 바깥의 회색 하늘과 대비되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몇 발자국 더 안으로 들어가자 작업실 베란다에 엄마와 나나 이모의 모습이 보였다. 엄마를 부르려는 순간, 반투명한 우윳빛 커튼 너머로 둘의 상체가 포개졌다. 나는 가만히 서서 둘의 모습을 바라봤다. 꽃향기가 독처럼 온몸에 퍼졌다.     

집을 나온 나는 갈 곳이 없었다. 두통이나 체기보다 더 강렬한 감정에 사로잡혀 그것을 어찌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몸속에 불을 붙인 것럼 뜨겁고 매케했다. 놀이터를 서성이다 집 근처 공원으로 갔다. 가만히 있을 수 없어 계속 걸었다. 해가 지며 공기가 차가워졌지만 추위를 느낄 수 없었다. 온몸이 넘실대는 열로 불타고 있었다. 그때였다. 아빠에게서 전화가 온 건.     


*     

아빠와 엄마는 대학 시절 교내 커플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첫 연인이었다. 아빠는 졸업반이었고 엄마는 새내기였다. 아빠는 자주, 자신이 어떻게 엄마를 쟁취했는지 이야기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한 마디도 보태지 않으면서 애매한 미소를 띤 채 아빠의 말을 들었다. 아빠의 기억 속에서 엄마는 아름답고 순수하면서 신비로운 알 수 없는 제3의 종족 같은 모습이었다. 엄마의 기억 속 아빠는 어떤 모습인지 들어본 적 없다. 언제나 회상을 즐기는 건 아빠였으니까. 그리고 이야기의 결론은 항상 나로 끝났다. 아빠와 엄마 사이 사랑의 결실이자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그들의 자식인 나.     


*     

밤이 되었고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나나 이모의 신발은 사라져 있었고 아무도 없었다. 텅 빈 집에 앉아 누군가 오기를 기다렸다. 나는 아빠가 돌아오는 대로 아까 통화한 내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듣기를 원했다. 우리는 함께 이 문제를 풀어 나가야 했다. 하지만 아빠는 아주 늦은 시간 돌아왔다. 술독에 빠진 것처럼 지독한 냄새를 풍기며. 아빠는 소파에 앉아 있는 나를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씻고 옷을 갈아입고 물을 가지러 나왔을 때까지도 가만히 앉아 있는 나를 보고 그제야 아빠는 입을 열었다.

“엄마가 며칠 집을 비울 거다.”

“...갑자기?”

“런던에 친구 전시회가 있어서 갑자기 가게 됐대.”

너무나 비일상적인 일이었지만 아빠의 목소리와 억양은 평소와 같았다. 아까 공원에서 아빠에게 낮에 내가 본 것을 이야기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횡설수설하는 나의 말이 끝나자 아빠는 짧게 ‘알았다’고 했다. 전화 통화를 하는 내내 뺨으로 흐르던 눈물이 어색할 지경이었다. 정말 알았다는 것일까. 아빠의 알았다는 무슨 의미일까. 엄마가 사라진 건 그 ‘알았다’와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아빠에게 묻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지만 물을 수 없었다. 이 짧은 대화를 하는 것만으로도 아빠는 긴 달리기를 하고 난 사람처럼 지쳐 보였다.     

그리고 불면의 밤들이 지속됐다. 엄마가 없는 집은 텅 비어 버린 거대한 냉장고처럼 어둡고 춥고 공허했다. 그럼에도 학교에 나간 건 담임이 집으로 연락해 부모 상담이라도 요청할까 봐 두려워서였다. 내 삶은 전례 없이 허물어지고 있었지만 누구에게도 알려져선 안 됐다. 나는 꾸역꾸역 학교에 나갔다. 진통제를 먹어 가며 들어야 할 수업을 들었고 소화제를 먹어 가며 급식을 먹었다. 아빠는 마치 뇌관이라도 되는 것처럼 나를 피했다. 아빠의 퇴근 시간은 한없이 늦어졌다. 엄마 작업실에 있는 식물들 또한 서서히 죽어 갔다. 긴 시간 공들여 키웠음에도 죽어 버리는 건 한순간이었다.     

선잠에서 깨어났을 때 아빠가 침대 옆에 서 있었다. 거실의 빛을 등지고 있어 아빠는 그림자처럼 보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아빠를 올려다봤다. 아빠의 고통과 슬픔이 밤의 밀도보다 더 무겁게 가라앉아 넘실대고 있었다. 두 팔을 뻗어 안아야 하나, 아빠의 손을 잡고 함께 울어야 할까. 남겨진 두 사람은 어떻게 서로를 위로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마침내 아빠의 왼손을 잡았다. 그런데 아빠의 손은 곧바로 내 손을 빠져나갔다. 다시 또 잡으려 해도 잡히지가 않았다. 곧이어 낮은 목소리가 동굴을 건너온 것처럼 서늘하게 귀에 울렸다.

“너는 엄마와 꼭 닮았어. 어쩌면 그 여자 혼자 낳은 자식일지도 모르지.”

엄마를 ‘여자’로 지칭하는 낯설음에 나도 모르게 몸이 떨려왔다.

“이제 여기에 ...가족은 없어.”

아빠가 방을 떠나고도 내가 꿈을 꾼 건지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밤은 깊어 갔고 좀처럼 아침이 오지 않았다.

일곱 시가 되자마자 교복을 입고 학교로 향했다. 집이 더 이상 집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머물 수 있는 장소가 이 지구상에 존재하기는 할까. 가방을 교실에 던져 두고 체육 창고로 향했다. 몸을 숨길 곳이 필요했다. 몸을 아주 작게 접어 구석 어딘가에 밀어 넣고 오랜 시간 잊혀지고 싶었다.     


*     

울고 있는 나를 발견한 건 영이었다. 눈물과 콧물이 온통 뒤범벅인 채로 엄망인 얼굴을 하고 사실은 누구라도 와 주길 간절히 기다렸다. 정말로 혼자가 되어 버렸기에 혼자이고 싶지 않았다. 영이는 말없이 내 정수리에 손을 얹었다. 한참을 울었고 얼마 후 문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음악 소리, 마이크에서 울려 퍼지는 커다란 목소리, 구령 소리, 웃음소리. 오늘은 학교 축제 날이었다. 숨어들 장소마저 완전히 잘못 찾았다. 하지만 이런 얼굴을 하고는 어디에도 끼어들 수 없었다.

눈물은 멈췄지만 작은 창고 안은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란으로 가득 찼다. 우리는 평소보다 더 가까이 앉아 평소보다 더 큰 목소리로 말해야 했다. 나는 영이에게 충동적으로 내게 일어난 일을 전부 말해 버렸다. 아빠와 엄마와의 관계, 더 이상 함께하지 않는 저녁 식사, 엄마와 나나 이모, 갑작스러운 런던 행..... 이야기 중간중간 크게 튼 댄스 음악, 호루라기 소리, 박수와 환호 소리가 끼어들었지만 영이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 내 말에 집중했다. 이야기가 끝나고도 영이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가만히 바닥만 바라보고 있었다. 어쩐지 울 것 같은 얼굴로.

그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 며칠 전부터 여러 번 왔는데 받지 않은 번호였다. 그게 누군지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언젠가는 받아야 할 전화였다. 나는 망설이다 통화 버튼을 눌렀다.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엄마는 내게 미안하다고 몇 번이고 사과를 했다. 그렇지만 엄마는 아빠와 헤어질 거라고, 엄마가 있는 곳으로 오라고 말했다. 일이 이런 식으로 되어 버렸지만 후회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그곳이 아닌 다른 곳이 너에게도 좋을 거야.”

그곳. 며칠 전까지 ‘우리 집’이었던 장소를 ‘그곳’이라고 말하는 것을 듣자 더 견딜 수 없는 기분이 되었다. 나는 전화를 끊어 버렸다. 끊고 나자 바로 전화가 왔다. 받지 않자 잠시 후 또다시 전화가 왔다. 나는 휴대폰 전원을 꺼 버렸다.

꺼진 휴대폰을 바라보며 당장 전화번호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문득 영이의 시선이 느껴졌다. 동굴처럼 어둡고 고요한 눈빛이었다. 고통스러워 보이는 동시에 모든 것에 무감해 보이는 알 수 없는 눈빛이었다.

언젠가 영이는 말했다. 뱀파이어들은 부모와 자식 같은 가족 관계 없이 모두 혼자라고.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들 또한 인간이기에 느낄 수 있는 거라고. 가능하다면 모든 것을 백지로 돌리고 싶었다. 누구와도 연관되지 않고 어떤 동요도 없이 살아갈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 수 있을 것 같았다. 영생의 고독도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의 감정들만 씻어 낼 수 있다면. 내가 내가 아닐 수 있다면.

“너처럼 뱀파이어가 될 수 있다면 좋겠어.”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엄마의 전화를 받은 직후부터 다시 흐르던 눈물은 멈추지 않고 교복과 얼굴을 적셨다.

“그건 어렵지 않아.”

“어렵지 않다고?”

“하지만 돌이킬 수 없어.”

영이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나는 돌이킬 수 없어도 괜찮다고 했다.

“나를 원망하지 않을 수 있겠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하려고 그래?”

영이는 자신의 두 손바닥으로 내 눈물을 닦은 후 내 어깨를 잡고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이제부터 넌 아무것도 느낄 수 없어. 너에게 의미 있는 건 너 자신뿐이야. 부모도 친구도 그 누구도 너를 상처 입히지 못해. 너는 특별한 영혼과 심장을 가지게 될 거야.”

말이 끝나자마자 영이의 입술이 내 입술에 닿았다. 곧이어 강하고 짧은 통증이 느껴지며 영이가 깨문 내 입술에서 피가 흘렀다. 영이는 나의 피를 마셨다.     

그리고 동시에 체육 창고의 문이 활짝 열렸다.     


*     

갑자기 왜 영이 생각이 난 걸까. 창밖으로 방콕 시내를 내려다보며 동시에 반사되어 겹쳐진 내 얼굴을 바라봤다. 20분 후면 비행기는 태국 수완나품 공항에 도착한다. 확실히 그때 영이의 송곳니는 매우 뾰족했다. 아주 오랫동안 그 이후의 일들을 떠올리지 않았다. 정확히는 떠올릴 수 없었다. 해일이 덮친 것처럼 너무 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밀어닥쳤고 모든 것이 뒤죽박죽되어 있었다.

영이와 나는 정학 처분을 받았고 이를 계기로 나는 학교를 오래 쉬었다. 엄마는 완전히 집을 떠났고 내게 여러 방법으로 몇 번이나 연락해 왔지만 나는 받지 않았다. 아빠는 자주 긴 출장을 떠나는 것으로 집에 있는 시간을 최소화했고 나는 홀로 남겨졌다. 하지만 영이의 예언대로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내 감정들은 코끼리 가죽이라도 뒤집어쓴 것처럼 무감했고 당시 사건들은 유리벽 너머의 일처럼 내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그게 무엇이었건 그것이 당시의 나를 보호했다.

그날 이후 영이를 본 적은 없었다. 소식도 듣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 내가 학교로 돌아갔을 때 찾아보려고 했지만 영이는 이미 졸업한 후였고 나는 그 애의 주소도 연락처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 서로를 알아보는 유일한 두 명의 뱀파이어로서 영이의 존재는 내게 오랜 기간 위안이 됐다. 죽지도 상처받지도 절망하지도 않으며, 어디선가 살아 있을 영이의 존재를, 나는 믿는다.     

화장실에서 겨울옷을 여름옷으로 갈아입고 공항 밖으로 빠져나왔다. 비와 안개로 가득한 2월의 런던에서 몇 시간만 날아왔을 뿐인데 습하고 무더운 여름 바람이 뺨을 스쳤다. 그리고 거리에 아무렇게나 피어난 꽃과 풀들. 태국의 거리는 몇 년 전 엄마의 실내 정원을 떠오르게 했다. 무력하게 울던 열여섯 살의 나와 함께 긴 시간 갇혀 있던 기억이었다. 백 년도 더 된 일처럼 여겨지는데 고작 사 년밖에 흐르지 않았다. 그 생각을 하자 정말 뱀파이어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저물어 가는 태양을 바라보며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걸음을 재촉했다. 열대 지방답게 피처럼 붉고 선명한 일몰이었다. 어디선가 영이도 엄마도 아빠도 이 일몰을 보고 있을 것 같다. 이제는 누구를 만나든 어떤 말이든 들어 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우리가 우리였던 시간은 끝이 있었기에 완벽할 수 있었다는 걸 긴 터널을 통과하며 이제야 간신히 깨달았다. 우리가 더 함께였다면 분명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서로를 파괴했을 것이다. 가장 가까워서 가장 쉽게.

그 시간 이후 나는 홀로 어른이 되었고 그렇기에 그 누구보다 단단한 어른이 되었다. 그 무엇도 그 누구도 이제 나를 함부로 훼손시킬 수 없다. 특별한 영혼과 심장. 그것이 영이가 내게 건 저주이자 축복이었다.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며 휴대폰을 켜자마자 벨이 울렸다.

“솔이니? 3번 주차장으로 오면 돼.”

“나를 알아볼 수 있겠어?”

나의 물음에 망설임 없이 엄마가 대답했다.

“눈을 감고도 찾을 수 있어.”

초록불이 켜졌고 나는 더욱더 빠른 속도로 여름의 한가운데로 걸어 나갔다.    

 

작가의 말

내가 만든 이야기 속에서도 특별히 마음이 가고 더 신경 쓰이는 인물이 있다. 솔이가 그러하다. 소설이 끝나고도 세상 어딘가에 살아 있을 것 같은 아이. 그렇다면 그게 런던이든 태국이든 부디 씩씩하게 살아 주기를 바라며 솔이의 과거와 스무 살 모습에 대해 썼다.

어떤 아이들은 어른의 도움 없이 스스로 자라고 단단해진다. 어떤 어른들은 어른이 되고도 한참이 지나고야 성장하기도 한다. 모든 성장은 필연적으로 고통의 시간을 동반하지만, 그 성장의 빛나는 여름이 공평하게 함께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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