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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사와동화 Mar 12. 2024

잘 헤어졌어

김양미, 문학과지성사, 2023년 2월



난 지금도 이별이 어렵다. 그런데 이렇듯 건강하고 성숙한 아이들의 이별이라니!!!

어린 날에 헤어지는 법을 몰라 상처 받았던 나에게 권해 주었다. 위로가 되었다. 


이별을 잘 맞이한 아이들은 자신은 물론 새로운 만남도 잘 받아들인다. 

아이들에게 잘 헤어지는 법만 알게 해도 인생이 훨씬 행복해질 것이다. 


‘잘’ 헤어지고 ‘잘’ 성장하는 다섯 아이들의 ‘건강한’ 이별 이야기는 5편에 조금씩 다르게 정갈하게 담겨 있다.


「내 친구의 눈」

석찬이는 색 구별을 잘 못한다. 종구가 석찬을 개눈깔이라며 놀리자 건오는 도와주러 나섰다가 오히려 둘이 크게 싸우게 된다. 친구를 도와주려다 싸움까지 하게 된 건데 고마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차근차근 말할 기회를 뺏었다며 자신을 원망하는 석찬이에게 건오는 큰 실망과 섭섭함을 느낀다. 그리고 둘은 더 크게 싸우고 만다. 다음 달에 경주로 이사를 가게 된 건오는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둘은 함께했던 놀이와 시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_성향이 다른 친구가 이별하고 화해하는 이야기(도와주는 것, 달라서 더 친해질 수 있음에 대해 생각)


"나처럼 가구 만들기를 좋아하고, 초록색하고 회색도 잘 구별 못하고, 비자나무 이파리처럼 성격 까칠한 친구가 그렇게 흔하진 않을 테니까."(40쪽)


「그럴 수도 있지, 통과」

새에 대해서도, 나무에 대해서도, 나물에 대해서도, 사람에 대해서도 잘 알고 계셨던 할머니. 하지만 할머니는 뇌를 다쳐 괴팍한 할머니가 되었다. 그동안 내가 알아 왔던 할머니와 헤어지고 지금의 할머니와 새로 만났다. 편찮으시고 나서 할머니가 자주 하는 말은 ‘통과’와 ‘그럴 수도 있지’다.- 내가 알아 왔던 할머니와 이별(이전과 달라진 사람을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 힘은 무엇일까. 잊어버리는 것과 잃어버리는 것은 다르다.)


나는 이제 1년 전에 할머니와 헤어졌다는 걸 안다. 13년 전에 내가 태어났고, 12년 전부터 혼자 걷게 되고, 올해 초에 중학생이 된 것처럼 나는 1년 전에 내가 13년 동안 알아 왔던 할머니와 헤어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할머니와 새로 만났다.(78쪽)


「누가 토요일을 훔쳐 갔다」

윤주와 진욱이네 집에 도둑이 들었다. 엄마의 결혼반지만 없어졌다. 가족들은 한방에서 자며 도둑이 든 건 싫지만 오랜만에 가족의 온기를 느낀다. 집에서 잃어버린 것이 없는지 찾다가 렌즈를 사려고 숨겨놓은 아빠의 비상금이 발견되면서 엄마 아빠의 얼음 전쟁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엄마의 배려로 다시 평화가 찾아온다.-나쁜 기억과의 이별


윤주는 마음속으로 간절히, 다시는 도둑이 들어오지 않길 바랐다. 만약 도둑이 들어온다 해도 아빠의 보물 1호인 카메라와 망원 렌즈만은 탐내지 않기를...식구 모두 건강히 잘 살라고 할머니가 물려주신 금거북도. 진욱이가 아끼는 물건들은 도둑 맞을 걱정이 없으니 따로 빌지 않아도 돼 편하다고, 윤주는 생각했다.(118쪽)


「잘 헤어졌어」

민채는 유치원 때부터 친구였던 제일 친한 친구인 아진이와 헤어졌다. 게다가 아진이는 이사를 앞두고 있다. 아진이가 자주 쓰던 ‘난 괜찮아’가 거짓말이었다는 걸 알게 된 민채. 민채에게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는 게 힘들었던 아진이. 둘은 서로가 너무 달랐다는 걸 알게 된다. -솔직하지 않았던 친구와 이별


그래서 나는 궁금해.

네가 네 생각을 그때그때 말하면 어떨지...

한번 해 보자.(싫으면 싫다고 말해도 돼.)---

이제 나도 네 마음을 먼저 물어보는 친구가 되어 보고 싶어.

(그치만 너 나 알지? 늘 그럴 수는 없을 거야.)(155쪽)


「상태 씨와 이사」

손서하는 13년 동안 살던 집을 떠나 새 아파트로 이사를 앞두고 있는데 정든 집을 떠나기가 싫다. 지금은 안 계시지만 할아버지 방을 떠나는 것도 싫고, 마당을 두고 가는 건 더 힘들다. 결국 이삿날이 다가오고 새집, 새 방에서 서하를 따뜻하게 맞이해 주는 것은 할아버지의 가방 ‘상태 씨’다. 지금은 서하의 가방이 되었다. 서하는 이제 새집과 인사를 나눌 준비가 되어 있다. ‘안녕? 벽들아. 안녕? 문들아. 우리 잘 지내 보자.’-공간과 추억과의 이별


만약 아빠가 낡은 의자를 버리지 않는다고 화를 내던 그날 ”이 의자는 할아버지가 내 방에 들어오면 앉아 계셨던 거라 그래요“라고 솔직히 말했다면 엄마와 아빠, 누나가 바로 내 마음을 이해해 주었을까?

이해받을 수 있다고 해도 그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 가족은 나이도 생김새도 성격도 각각 다르지만, 할아버지를 좋아하는 마음의 양은 얼추 비슷했으니까. 내 말을 듣는 순간, 누나는 엉엉 울고, 엄마는 눈을 끔뻑이며 천장을 보고, 아빠는 냉장고에서 뭔가를 꺼내는 척했을 테니까.(190쪽)



* 섬세함, 밀도. 캐릭터, 대사, 문장, 묘사가 모두 뛰어나다. 이별 이야기를 이렇게 잘 다루다니 감탄이 나온다! 같이 읽고 마음 나누기를 하면 너무 좋겠다.

굳이 단점을 말해야 한다면 아이들이 너무 성숙하다는 것, 어른이 더 좋아할 것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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