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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사와동화 Mar 29. 2024

처음 만난 자유

알프레도 고메스 세르다 | 풀빛 | 2010년 1월

『처음 만난 자유』의 줄거리는 이러하다.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 소년 감화원에 맡겨진 안토니오는 감화원 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하는 왕따다. 안토니오의 소원은 투명인간이 되어 모두의 시선으로부터 지워지는 것이다. 사실 안토니오는 진정한 친구를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다. 그래도 외롭지 않고 자신의 삶에 정말 만족한다고 말은 하지만, 안토니오는 매일 밤 이미 한 달 전에 그곳을 떠난 룸메이트의 환영을 불러와 대화하며 외로움을 달랜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안토니오에게 새로운 룸메이트가 생긴다. 그는 4살 때 아프리카의 심장에서 입양된 흑인 소년으로 어느 감화원에서든 탈출에 성공한 매우 머리 좋은 아이다. 밥 먹여 주고, 공부시켜 주고, 산책하고, 잠잘 수 있으면 그게 자유라고 생각하는 안토니오에게 ‘말로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여하튼 그건 자유가 아니라고’ 흑인 소년 페드로는 말한다.

페드로가 온 뒤 안토니오는 페드로를 귀찮은 존재라고 말하지만, 자꾸만 페드로에게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페드로는 안토니오에게 함께 탈출하자고 손을 내민다. 안토니오는 선뜻 그의 손을 잡지 못한다. 페드로가 탈출하던 밤, 안토니오는 페드로의 빈자리를 깨닫게 된다. 안토니오는 자신과 다른 페드로의 욕망을 보며 처음으로 자신의 삶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원장님이 넌 탈출하기를 좋아한다고 말씀하셨어. 이유가 뭐야?”

“난 담장 건너편에서 사는 게 더 좋아.”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넌 바보 멍텅구리 같은데.”

“바보 멍텅구리라고?”

페드로는 놀라워했다.

“내게 붙여주는 새 이름이야? 그런데 어째서 내가 바보 멍텅구리야?”

“탈출하고 싶어 하니까. 여긴 그럭저럭 괜찮아. 우리한테 다 있잖아. 담장 건너편에서……, 우리가 뭘 할 수 있겠어?”

페드로는 고개를 저었다.

“넌 이해 못 할 거야.”

그리고 안토니오에게 다시 말했다.

“그럼 넌 이런 데서 평생 보내. 텔레비전에서 본 호랑이 기억나지? 너 그 호랑이 같아. 넌 겁쟁이가 되어 버렸어. 닭 한 마리에도 무서워서 벌벌 떠는 겁쟁이 호랑이.”    

   

“너 자유가 뭐라고 생각해?”

“알지만, 설명하기 쉽지 않아. 나한테 자유란 간질간질한 거야. 여기, 이 뱃속이 간질간질해지는 거야. 난 방에서 나오자마자 여기가 간질간질했어.”     

그 순간 안토니오도 뱃속이 간질간질하다고 느꼈다. 안토니오는 이제 그걸 확실히 알게 되었다. 위 아래로 간질간질한 느낌, 주체할 수 없이 간질간질한 느낌, 바로 그거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소지품이 든 가방과 옷 옆에 나란히 앉았다. 바다에서 부는 부드러운 해풍이 그들의 얼굴을 간질이고 그들의 머리칼을 살랑살랑 헝클어 뜨렸다. 저 멀리서 지중해를 횡단하는 초대형 유람선이 떠가고, 그들의 머리 위로 소형 비행기 한 대가 광고문구가 실린 플래카드를 매달고 지나갔다.

“이게 인생이야”

식상한 문구를 들먹이며 페드로가 탄성을 질렀다.

“그래.”       


“그런데 왜 안 되는데? 그게 불가능하다는 건 나도 알지만, 네가 나랑 형제면 좋겠어. 네가 흑인이고 내가 백인인 게 무슨 상관이야? 네가 아프리카의 심장에서 태어났고 내가 바르셀로나 어딘가에서 태어난들 무슨 상관이야. 간혹 서로 자기 형제를 선택하기도 하잖아. 만일 그렇게 되면 난 널 선택하겠어. 하지만 난 우리가 친구여도 좋아. 그것으로도 충분해. 지금 생각해 보니까 내겐 진정한 친구들이 전혀 없었고 돌아이 페르민도 진정한 친구는 아니었던 것 같아. 하지만 난 지금 외롭지 않아. 아무도 보이지 않는 이 해변에 있어도 난 지금 외롭지 않아.”     


작가 인터뷰를 보면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 싶어했는지 더 정확히 알 수 있다.

     

-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소년 감화원에 수감되어 생활하면서, 자유가 부족하다고 계속 말하는군요. 우리에게 자유가 없어야 비로소 자유를 소중히 여긴다고 생각하시나요?     


이 책의 주인공들 모두가 똑같은 태도를 보이는 건 아니에요. 다른 것이라고는 전혀 모르던 안토니오는 자신의 삶에 순응하며 만족을 느끼지요. 안토니오에게 있어 자유란 의미는 공허하고 단순한 말에 지나지 않고, 항상 안락함에 몸을 맡기죠.

페드로와 겪는 힘든 관계를 통해 안토니오는 비로소 자신의 내면을 계속해서 간질간질하게 만들어 갑니다. 자유란 것은 아주 복잡하고, 그 의미가 무수히 포장되고 쉽게 더럽혀지고, 의미가 애매모호합니다. 자유에는 작은 자유와 큰 자유가 있어요. 우리는 큰 자유만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고, 작은 자유는 그저 가볍게 생각하며, 만져보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삼지요. 그래서 가장 의미 있는 건 아마도 우리의 권리와 존엄성을 위해 싸우는 걸 거예요. 싸울 때마다 우리는 자유를 더 얻게 될 겁니다.  

   

- 이 이야기의 끝부분을 보면, 이야기가 시작됐던 장소에서 안토니오의 이야기가 똑같이 끝나지만, 안토니오의 내면은 변화가 되었습니다. 이 소설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지요?     


자기 자신이 더 이상 예전의 자신이 아니기 때문에 안토니오는 더 이상 예전과 같지 않을 거예요. 안토니오가 겪었던 예기치 않은 사건을 통해서, 체념하고, 고립되고, 호기심이 부족하고, 무관심하고, 다른 사람들을 거부하면서 살면, 결코 행복을 찾을 수 없다는 걸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안토니오의 피부 모공 하나하나에 생명수가 흘러 들어가 안토니오는 변화되었죠. 안토니오는 자유의 의미를 발견하고 이와 동시에 우정과 같은 다른 큰 걸 발견하게 됩니다. 이 책에 담긴 특정한 교훈적인 메시지는 없어요. 독자 스스로가 자신만의 결론을 내려야 할 거예요. 하지만 분명한 점은 제가 문학적이고 도덕적, 감성적인 자세로 이 이야기를 썼다는 것입니다. 


알프레도 고메스 세르다의 『처음 만난 자유』를 읽고 소년 감화원을 무대로 삼은 것도 훙미로웠고 두 소년의 심리를 그토록 섬세하게 그린 것도 놀라워 다른 책들도 찾아 읽었다. 

알프레도 고메스 세르다는 1951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태어났다. 대학 졸업 뒤 교사로 일하다가 1982년부터 본격적인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100여 권에 달하는 책을 출판했단다.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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