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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혜정 Nov 16. 2024

수능 후 교실

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할거야.

 수능 시험이 끝났다. 아이들은 어떤 경험을 하고 학교에 올까. 시험을 잘 치르고 웃고 있을까, 아니면 상심하고 울고 있을까. 마음이 어떨까. 학교에 나오기는 할까. 어제 시험 끝나자마자 잘 치른 아이들은 기분 좋게 연락이 왔는데 그러지 않은 아이들은 괜찮을까. 시험이 쉬웠다는데, 재수생들 틈바구니에서 그나마 다행이지만 실수하지 않았어야 하는데. 쉬워서 실수하는 경우가 더 많은데 어쩌나.


 수능 전도, 수능 후도 갖가지 가상 시나리오들로 인해 머릿속이 쉴틈이 없다. 생각보다 학교 안 분위는 여느 때와 같았고, 교무실에서 펑펑 우는 아이들도 눈에 띄었지만, (우리 반) 아이들은 교실에 덤덤하게 앉아있다.



너무 수고했다.
긴장감과 불안을 끌어안고
수능이라는 큰 시험까지 치른 경험을
온전히 통과한 사람은 분명히
이전과 이후가 다른 성장을 한 거야.
청소년은 수능 전과 수능 후로
구분될 수 있을 정도로
큰 일을 치러냈어.
인생을 살아갈 힘을 배운 거야.



 덕담을 한마디 하고 나니, 아이들은 수능 시험장에서 일어났던 일들, 수능 시험을 치고 난 소회등을 종알종알 얘기해 준다.


- 시험장이 너무 좁았다.

- 어떤 애가 계속 코 골아서 힘들었다.

- 부정행위를 해서 2교시부터 시험 못 본 아이가 있었다.

- 학교 건물이 좋았다.

- 생각보다 긴장이 안 됐다.

- 시험 잘 봤다고 생각했는데 망했다.

- 잘 보진 않았지만 망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동안의 무수한 모의고사 점수 보다 수능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찍어온 아이도 있다. 운도 좋고 실전에 강한 녀석이다. 최저를 맞췄다고 뛸 듯이 기뻐하는 아이들도 있다. 잘했다고 안아다. 이런 아이들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반대의 경우도 있다. 그래도 생각보다 담담하게 결과를 받아들인다. 그게 더 마음이 아프다. 무성한 불확실성 속에서 학생들은 이제 다음을 준비해야 한다. 기말고사, 면접, 논술 등 앞으로의 일정이 줄 줄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야. 힘내.


  1년, 아니 3년간 성실하게 학교 생활해 왔는데, 기대 이하의 성적 앞에 웃으며 마음을 덤덤하게 말하고 있는 아이에게 건넨 말이다. 수시에서 마지막 남은 희망 대학이 오늘 1차 발표가 나는데, 여기까지 떨어지면 어쩌나 안타까움을 꿀꺽 삼킨 격려였다.


 토요일, 일요일 치러지는 면접을 지도하고 집에 오니 힘들다. 수능 감독 이후 강도 높은 피로감에 쓰러져 그냥 잤다. 밤에 잠깐 깼는데, 카톡을 타고 반가운 소식이 남겨져 있다.


"선생님, 저 OO 대학 1차 붙었어요!!!"

 

 아, 얼마나 다행인가. 너무 잘됐다. 아직 최종 결과는 아니지만 아이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기대가 될까. 최선을 다했는데, 지금 당장의 성적이 성에 차지 않더라도 성실한 걸음 속에 거대한 참나무가 자라고 있음을 말해주고 싶다. 박노해 씨의 시에서 처, 지금 당장은 삐걱거리더라도 남과 다른 자기만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을 잘 걷길 바란다. 대한민국의 모든 수험생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보낸다.


                             < 어려운 순간마다>
                                                                              박노해

저 아이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지금 비록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겨울나무가 나이테를 키워가듯
긴 호흡으로 그것을 받아들이게 하소서

진정한 성공은 시험 성적에 있지 않고
앞선 승부에도 자격증에도 있지 않고
인생 전체를 두고 자신을 찾아가는
성실한 걸음 속에 있음을 알게 하소서

도토리 안에는 거대한 참나무가 들어있듯
자기 안에는 더 큰 자기가 숨어있고
자기만의 리듬으로 자신의 때가 오고 있음을
어려운 순간마다 기억하게 하소서

지금의 아픔이 오히려
남과 다른 자기만의 길을 찾아가는
하나의 이정표라는 걸 잊지 않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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