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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헌 Nov 14. 2023

100살쯤엔 아이클라우드 1000TB 구독하고 있겠다

미래 자식들아 미안하지만 돈 좀 내줘라!

아이클라우드도, 나중에  동영상도. 그리고  감정을 담은 대발도 모두  차버렸다. 대발이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땅을 붙어 기는 개미라 찻잔도 대발로 보이는지 누가  노릇인가.

아이클라우드야 높은 용량으로 확장하면 될 노릇이고 나중에 볼 동영상도 게으름을 탓하며 별안간 지우면 될 테지만 개미가 어찌 찻잔을 밀어 엎으리.


글을 쓴 이후로 늘 생일에는 글을 썼다. 글은 언제나 쓰고 있지만 생일의 글이 갖는 의미가 있었다.

생일은 남들과 같은 선에 1년의 마무리가 다가오기  지칠 대로 지친 내가 거의 만조에 이른  해를 갈무리하고 체에 걸러보는 기점이었다.

나의 가을엔  미움이 있었기에 적어도 기온이  낮은, 반면 사람들의 마음이 두둥실  연말의 분위기에 튀지 않고 눈치껏 맞추려면 서둘러 걸러진 미움을 처리해야 했다. 수거도 안 해가는 너절한 것들. 늘 직접 부숴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뿌려댔다.


그간 정말 열심히 배를 지었다. 나무도 해오고 미흡하지만 설계와 제작까지 내 손이 안 닿은 곳이 없었다. 얼기설기 형태를 갖추어가는 무언가는 끝내 배라고 부를 수 있는 모양새를 보였다.

 배가 물에 뜰지 알 수 없고, 설령 뜬다고 해도 내가 가야 하는 곳을 향해서 나아가고 온전히 데려다줄  있는지는 더욱이   없었다. 목적은 배를 만드는 것이었고 나는  목적의 완수를 목적으로  사람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기능의 부재에 대한 귀책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내 배는 산기슭에 지어지고 있었다. 그 배가 뜰 수 있는 물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저 주변 이들의 목을 축이는 냇가가 있었을 뿐. 속절없이 흐르는 가냘픈 물줄기가 터무니없는 배의 크기를 보며 비웃는 듯했다.


노아의 배는 홍수로서 존재가치를 증명했다. 그러나 홍수가 나지 않는 나날에 지은 거대한 배는 어떤 사건으로 본인의 존재를 인정받아야 하는가.

띄울 물이 없는 곳에 배를 지은  사람에게 배란 대체 무엇을 의미할까. 그저 도달, 그것이 목적이나 합리보다 훨씬 중요한 사람이 아닌가. 이런 허탈함이 없기를 바랐으나 간절히 바라는 것의 반대는 내가 보는 앞에서  너무나도 쉽게 배를 띄운다.


나무에 하던 톱질을 멈추니 손이 떨렸다. 드르륵, 드르륵. 꽉 쥔 손에 부쩍 쥐가 많이 난다.

처음으로 손이 붓고 쥐가 많이 났던 때가 생각난다. 일주일간 팔에 주사를 꽂고 있어야 했던 그때의 불편함은 잊혔으나 퉁퉁 부은 손과 약간 부자연스러운 손가락들의 움직임은 이어져 지금까지 쥐를 나게 했다.

이제는 흙을  , 바벨을   종종 손가락들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경직된다. 마치 여기가 산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도구를 놓아버린 혹자처럼.


그는 하던 일과 장소를 일개 세트장처럼 고스란히 남겨두고 반대방향으로 달렸다.

어디라도 좋았다.  배가 보이지 않는 곳이라면. 나는 소라게가  것이다. 스스로에게 도피처를 마련할 것이다. 나는 더더욱 소라집 안으로 들어갔다. 햇빛이 강하면 강할수록, 파도가 철썩이면 철썩일수록 더.

햇빛은 내가 있는 곳에 들지 않았고 파도가 밀려온다면 바다를 등지고 파고들어 갈 방향을 향할 뿐이었다.


내가 하고 있는 것은 삶이나 인생, 청춘 따위의 낭만을 버린 연명과 닿아있다. 혹은 꿔다 놓은 보리자루 같은 모양새와 닮아있다. 작년, 그리고 재작년. 올해의 여름이 오기 전 내가 상상한 가을의 모습은 유지장치를 모조리 떼버리고 당당한, 그런 것일 줄로만 알았는데 숨을 헐떡이며 놓칠 일이 아닌 것도 전부 놓치고 서둘러 온 자리는 당당과는 거리가 멀다. 집에 돌아가는 발걸음이 찐득하게 나를 붙든다.


어김없이 10월의 끝자락엔 해마다 다른 요인으로 상한 속과 피곤해 꿈뻑대는 눈이 있다.

여전히 즐겁지 않은 기념일들. 예전에도 한번 말했을 것 같은데, 차라리 부품이었으면! 제자리에서 돌다가 이가 나가면 수명을 끝내는 그런 톱니바퀴였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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