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햄 May 18. 2021

'육아'가 전부인 나의 세계

다시 '나'라는 존재가 내 세상을 지배할 때까지

'하은맘'

남편 핸드폰에 등록된 내 이름이었다.


나의 일상을 담는 인스타그램은 이미 사라지고 아이들 사진만 올리는 맘스타그램을 하게 되었다.


카톡에는 산후조리원이랑 어린이집을 통해 인연을 맺은 엄마들이 잔뜩 늘어나게 되었다.


쿠팡 검색창에는 기저귀나 젖병과 같은 육아용품으로 가득하고 내 스타일의 옷을 파는 쇼핑몰 이름은 하나도 말할 수 없지만, 유아 옷 쇼핑몰 사이트는 5초에 5개 이상 대라고 해도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머릿속에 가득 차있다.


그리고 하루에도 몇 번씩 맘 카페를 들락날락하며 내 아이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들과 공감하며 조언을 듣거나 받곤 한다.


아이를 낳고 나면, 아니 임신하는 순간부터 여자의 인생은 아이를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나 역시 여느 엄마들과 다를 바 없이 인생의 1순위를 아이들로 두고 살고 있다.


친구들보다 빨리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탓에 내 주변에는 아직도 미혼인 친구들이 많이 있다. 친구들과 만나 함께 수다 떠는 자리에 있으면 나도 모르게 초라해지고 소외되는 기분이 들곤 한다. 나에게는 전부인 '육아'라는 이 세계가 미혼인 친구들에게는 낯설거나 관심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어느 순간 그런 나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친구들이 잘못되고 무지한 것이라며 비난하기 시작했다.


임신 초기에 하는 '입덧'이라는 것에 관한 많은 가설 중 하나는 엄마의 몸이 태아를 해로운 존재로 여기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실제로 태아는 엄마와 영양분을 두고 경쟁을 한다. 엄마가 밥을 안 먹어도 애는 알아서 잘 자란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데 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요즘 드는 생각은 태아는 사실 생존을 위해서 영양분뿐만 아니라 엄마의 뇌에도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닐까? 아이를 돌보고 키우는 것이 우선순위가 될 수 있도록 그 외에 다른 욕구나 기능들을 셧다운 해버리는 것이 아닐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출산 후에 기억력 감퇴나 성욕 저하 혹은 물욕 저하를 겪곤 한다.


나 역시 아이를 둘 낳고 나니 '바보'가 된 것 같다는 기분을 종종 느끼곤 한다. 손에 핸드폰을 쥐고 있으면서 핸드폰을 찾을 때도 있고 알고 있던 단어들이 갑자기 생각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영유아 검진 시기나 예방접종 시기는 절대 빼먹지 않는다. 좋아하는 유아복 브랜드의 신상 출시일이나 물티슈 핫딜 날짜도 놓치지 않는다.


이미 나의 뇌는 '육아'라는 호르몬 또는 세포가 점령해 버린 것이 아닐까?


하지만 나의 '육아' 세계에도 반대세력은 있는 것 같다. 이따금씩 '나'라는 존재가 반란을 일으키고 있다. 아이들을 위한 것이 아닌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먹을 때가 있으며 내가 보고 싶은 TV 프로그램을 보기도 한다. 최근에는 몇 년 만에 홧김에 아이들의 옷이 아닌 내 옷 잔뜩 구매하기도 했다.


그리고 오늘 나는 남편의 핸드폰을 집어 들어 내 이름을 '하은맘'에서 '예쁜 모찌*'로 변경해 두었다.

*남편이 연애 시절 부르던 애칭


평생 불가능할지도 모르지만 다시 '나'라는 존재가 내 세상을 지배할 때까지 아마 '육아'와 '나'의 경쟁은 계속되지 않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