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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i Nov 06. 2023

그는 어디까지 완료했을까?

2023년 11월 06일의 꿈

 안방 작은 화장실벽에 갑자기 낯선 선반이 생겼고, 그 선반엔 약 0.5mm 정도의 두께로 보이는 책들이 10권 남짓 꽂혀있다. 그리고 그 앞에 목이 늘어난 반팔티에 냉장고 바지를 대강 걸친 그가 서있다. 차림에 반비례하는 그의 표정과 눈빛은 그 어떤 용사보다 진지하다.


인류가 몇 년의 연구와 시행착오 끝에 드디어 그들과 대적할 최강의 무기라고 자랑하는 최신 무기를 획득하는 데 성공한 그는, 가벼운 무게에 비해 높은 정확성과 타격력을 자랑하는 최신 무기에 전기를 흘려보내는 연습을 손가락으로 규칙적으로 두어 번 시도한다. 그렇게 준비를 마친 그가 무기의 손잡이의 좌우 양쪽 끝에 있는 동그란 버튼을 엄지와 중지로 동시에 누른다. 비장하게 전기가 흐르는 기구를 장착하고 그는 첫 번째 책을 집어 들고선 조심스럽게 심호흡을 한 뒤 펼친다.


아마도 레벨 1로 짐작되는 상대방이 스멀스멀 책 속에서 나오기 시작한다. 첫 번째 책에서 나온 이 작은 생명체에게 멀리 달아날 시간도 주지 않고 그는 정확하고 빠른 속도로 그의 무기를 휘둘렀다.

'탁, 타탁!'

 첫 번째 적은 상대적으로 작았기에 소리는 짧고 경쾌했다. 결국, 이 남자보다 몇만 분의 1밖에 안 되는 작은 사이즈의 생명체는 그의 특기인 귓바퀴 괴롭히기 공격을 시도도 하지 못하고 바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30년이 넘게 이 작고 귀찮은 생명체로 인해 여러 날의 숙면을 방해받았고 끊임없는 독성이 있는 타액공격으로 괴로워했다. 그랬기에, 살생 전에도 살생 후에도 그는 그 어떤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그는 눈하나 깜빡하지 않고 다음 레벨의 책을 집어 들고, 다음 타깃을 처치하기 위해서 책을 펼친다. 두 번째 책을 펼치자 처음 레벨과는 좀 더 빠른 녀석이 재빠르게 그의 귓가를 스치며 그의 주 무기인 소음 공격을 펼치고 작은 신체를 이용하여 순식간에 숨어 버린다.


"윙~~~~"

 그는 에너지는 부족하지만 상당히 거슬리고 비실거리는 소리를 감지하자마자 신경질적으로 귓가를 손으로 털어내고 벽과 바닥 등 모든 이 작은 생명체가 네발을 딛고 숨을 수 있는 곳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한다.


그의 도전을 지켜보며 나는 좀 더 깊은 숙면의 세계로 빠져 들었다.



 마지막 가을비가 내리고 난 뒤 서늘해진 기온을 피해서 배수관을 타고 들어온 것으로 추정되는 모기들이 그날 새벽 남편의 숙면을 방해했다. 남편의 피는 모기들을 매혹시키는 맛피였고, 덕분에 난 모기의 존재도 모르고 숙면을 취했다. 하지만 연달아 앵앵 거리는 소리에 그는 여름 끝무렵에 장만한 전기가 흐르는 파리채를 들고 이곳저곳 구석구석을 다 뒤져서 세번이나 중간에 깨서 연달아 3마리를 잡고 난 뒤 안도를 하며 잠에 들었다. 그래서일까, 게슴츠레 모기와 혈투하는 남편을 보며 잠이 들은 나는 안방 화장실에서 모기 잡는 실전 퀘스타를 하는 남편을 독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입장의 꿈을 꿨다.


비록 옷차림과 장소가 집이었지만, 꿈에서 느꼈던 긴장감은 영화 못지않았기에 모든 퀘스트를 보지 못하고 완벽한 숙면 상태로 접어들어버린 그 순간이 가끔은 아쉽고 다시 연결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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