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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i Nov 07. 2023

갑자기 나타난 괴기하면서도 어딘가 하찮은 생명체

2023년 11월 06일 두 번째 꿈

 어디서 어떻게 나타났는지 영문도 모른다. 그냥 그것은 우리의 주 생활 무대인 거실 좌측 상단 코너 쪽에 자리를 잡고선 자신과 똑 닮은 정체불명의 작은 생명체들을 생산해 내고 있다. 이것의 크기는 기내용 캐리어정도로 위협적으로 큰 크기이다. 생김새는 거미와 유사하다. 마치 거미와 홍게를 합쳐놓은 듯한 이 생명체는 몸에는 검은색 털이 복실복실 나있고 비호감인 생김새에 걸맞게 털의 질감도 살짝 거칠어 보인다. 눈과 입은 어디에 있는 건지, 아니면 없는 건지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 별난 생명체의 가장 독특한 점은 몸과 다리가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다.


몸과 분리된 다리를 도대체 어떤 원리로 움직이는 건지 모르지만 여하튼 기존 지구상의 생명체와는 확실히 다르다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다리가 그다지 멀찌감치 떨어져서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보면 다리가 몸에서 멀리 떨어지지는 못하는 것 같다. 밝은 대낮에 갑작스럽게 출몰한 이 생명체는 똑 닮은 작은 생명체를 20여 마리정도 복제를 하더니 마치 출산이 끝난 듯 기괴한 생산 작업을 끝마쳤다.


어서 이 집에서 벗어나서 신고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찰나, 아뿔싸, 옆에 8살 딸아이가 있다. 아이가 저 생명체를 눈치채는 순간 분명 울음을 터뜨릴 것이고, 저 생명체가 소리에 반응할 수도 있기에 일단은 옆에서 열심히 한창 아이들 사이에 유행하고 있는 로블룩스를 하고 있는 딸아이에게 나가자고 제안을 하려고 하는 순간,

 아이는 어느새 이 생명체에 매료돼서 눈을 반짝이고 있다?


8살 딸아이는 작은 개미도 무서워하고, 특히 거미라면 질색 팔색을 하는 아이인데 저렇게 거미와 유사하게 생긴 거대한 생명체를 보고도 꼼짝하지 않는 모습이 상단이 신기하고 믿기지 않지만 여하튼 조용히 이 집에서 탈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빨리 도망가자고 재촉하는데 아이가 예상과 다르게 나가기를 거부한다. 더 희한한 건 나도 분명히 머리론 징그럽다고 느끼고 있으나 이상하게 생각보다 위협감이 들지 않는다. 저 생명체는 아무래도 사람의 마음도 조정을 하는 듯한 거북하고 불쾌한 기분이 든다.


아니나 다를까, 나 자신도 아이가 거부를 하든 말든 어떻게든 들치고 나가서 저것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나는 마치 이제 게임 그만하고, 책보라고 잔소리를 하는 듯이 약간의 짜증이 있는 말투로 빨리 저 징그러운 게 공격하기 전에 도망가자고 이야기한다.


설상가상으로 왜 이런 다급한 순간에도 왜 쓸데없는 상상력이 가동되는지 순간 저 생명체가 우리를 공격하는 상상을 해버렸는데, 마치 내 머릿속에 들어온 듯 갑자기 그 검정 생명체와 그의 옆에서 태어난 작은 생명체들이 점프를 하며 나와 딸아이가 있는 소파 쪽으로 돌진해 온다. 다행히 먼 거리를 점프하지 못해서 구석에서 약 30cm 간격으로 점프를 하며 이동을 해오고 있다.


아, 징그러운데 뭔가 좀 하찮다.


다가오는 그들을 바라보며 나는 좀 더 깊은 숙면의 세계로 빠져 들었다.




2년 반정도 네덜란드에서 살 때에는 그곳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작게 식물을 가꿀 수 있는 가든이 있는 집에서 생활했었다. 너무 게을렀기에 딱히 관리를 하지 않아서 꿈꾸던 정원 생활을 하진 못했지만 그 덕에 수많은 거미줄과 씨름을 했어야 했다. 특히 햇살 좋은 여름이 되면 긴 빗자루를 휙휙 휘두르지 않으면 마당을 지나가지 못할 정도로 거미줄을 길게 수놓은 욕심쟁이 거미들이 많았다.


귀국한 지 3개월이 지나가지만 아직도 종종 네덜란드가 배경인 꿈을 꾸곤 하는데 이번엔 정말 뒤숭숭한 꿈을 꾸었다. 하지만 희한한 건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무서운 느낌도 나지 않았고 여전히 내 말을 잘 안 듣던 딸내미가 더 기억에 남는 꿈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날 정도로 그다지 귀여운 생명체는 아니었기에 다시 꾸고 싶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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