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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은감성 Dec 03. 2021

300일의 기다림과 300만원짜리 컴퓨터

더 많은 기회를 위한 투자

올해 들어오면서 계속 생각했던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컴퓨터를 바꾸는 일이다. 집에서 보내는 여가생활의 90%는 컴퓨터로 시작되고 끝이 난다. 집에 오면 컴퓨터를 켜고, 잠을 잘 때 컴퓨터도 꺼진다. 살림살이 중에 다른 건 몰라도 컴퓨터는 꼭 최우선으로 챙겼다. 개발자를 하고자 마음먹은 후부터는 회사에서나 집에서나 잠자고 밥 먹는 시간 빼고는 계속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었던 거 같다. 


어떤 이는 컴퓨터로 도대체 무엇을 그리 하루 종일 하냐고 물었지만, 컴퓨터로 할 수 있는 것들은 너무나도 많았고 새로운 것들도 가득했다. 그야말로 별천지가 펼쳐지는 컴퓨터 세상에 접속하기 위해 지금도 앞으로도 떼려야 뗄 수 없는 컴퓨터와의 동반이 계속될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그렇게 애지중지하며 먼지 청소도 주기적으로 해주던 컴퓨터의 수명이 다해가는 것을 어느 순간부터 느끼고 있었다.


아마도, 이미 2년 정도 전부터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지속해 왔던 거 같다. 하지만, 바쁜 회사일로 집에서 컴퓨터를 쓸 시간도 그리 많지 않고, 고사양이 필요한 게임이나 작업을 하지도 않아서 실행에 옮기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중간에 메인보드가 고장 나서 10만원 정도를 들여 수리한 것을 제외하면 현역처럼 돌아가는 컴퓨터를 바꾸기가 애매했다. 


헌물건을 보며 '이제는 좀 바꿔!'라는 핀잔에 '아직 쓸만하잖아!'라고 헌물건이 쓸만한 물건임을 강조하는 윗 세대의 어른들처럼 컴퓨터가 고장 나길 기다리며 컴퓨터를 살 날을 하염없이 기다렸다. 하지만, 컴퓨터를 산지 6년째가 된 올해에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바꿔야겠다라는 결심을 했다. 지금까지는 잘 동작했다고 해도 갑자기 전원이 나가면서, 수년 동안 축적된 데이터를 날리는 불길한 상상이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박수 칠 때 떠나라는 말처럼 잘 버티고 있는 지금이 컴퓨터를 놓아주기에 적기인 거 같았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했다. 바로 컴퓨터의 가격이 너무 비싸진 것이다. 정확히는 '그래픽카드' 가격이 폭등했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의 가격이 오른 만큼 코인을 채굴하기 위해 사용되는 그래픽카드의 가격도 함께 우상향 하였다. 현재 나와있는 거의 최상급의 사양으로 컴퓨터를 맞추려던 나의 계획은 '돈의 벽'을 넘지 못하고 1보 후퇴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가상화폐 가격이 떨어질 때를 기다리기로 했다.


2018년에 비트코인이 붐을 일으켰을 때를 생각하며, 몇 달이면 다시 거품이 빠지고 그래픽카드의 가격도 정상화되리란 기대는 300일가량의 기다림 끝에 실현되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다.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인해 반도체 수급이 원활하지 않아, 그래픽카드 제조사가 최소 내년까지는 물량 공급이 원활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곧 꺼질 거품이라고 예상했던 내 생각과는 다르게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의 가격이 '언빌리버블'하게 꾸준히 상승하고 있었다. 그런 시장의 여러 상황들로 그래픽카드의 수급이 더 어려워졌고, 결단을 내려야 했다.

내년까지 기다리면 가격이 내려가긴커녕 더 올라갈 것 같았고, 부동산처럼 이미 올라간 가격이 쉽사리 내려간다라는 보장도 할 수 없었다. 만약에 부품 값이 오르기 전에 컴퓨터를 구매했다면, 70~80만원은 아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삼켰다.


그래서 더 많은 기회비용들을 낭비하기 전에 컴퓨터의 견적을 내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컴퓨터 견적을 내다보니 최신 부품들에 대해서 거의 2일 동안 유튜브로 공부하며,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스펙을 맞췄더니 300만원짜리 견적이 나와버렸다. 원래 생각했던 200만원대 견적을 초과했지만, 하루를 고심한 끝에 떨리는 마음으로 구매를 결정했다. 


솔직히, 하루를 고민했음에도 300만원이라는 금액 때문에 결제창에서도 1시간이나 더 고민을 했다. 내가 고른 부품들이 최상 조합인지 아닌지 재차 찾아보고, 견적을 도와주는 커뮤니티에 물어도 보고 신중에 신중을 기해서 결제했다. 그래서 결제한 후에는 너무나 홀가분했다. 돈에 대한 아까움도 없고 미련도 없었다.


컴퓨터를 받고, 사용해본 첫 느낌은 역시 돈이 좋다는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전자제품은 역시 돈 값을 한다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고 있다. 제품에는 만족했지만, 부동산이나 그래픽카드 같이 끝을 모르고 치솟는 물가들을 보며 세상이 정상은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컴퓨터가 비싸진 원흉인 그래픽카드 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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