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윤의 해금이야기
3. 해금, 그리고 극단 <우투리>
학교에는 연극원이 있었다. 여기는 <우투리>라는 실험극단이 있었고 나는 극단 <우투리>에서 악사로 활동했다. 2003년부터 2009년까지 <우투리>에서 작곡을 하기도 했고, 해금을 연주하고, 무대 위로 나아가 노래를 하고 움직임도 했다.
극단 <우투리>는 전통설화 “우투리”를 첫 작품으로 창단하게 된다. 한국의 장단과 춤, 연희적 요소를 연극 형식에 녹이려는 시도를 했다. 보통 연극하면 그리스비극을 떠올리거나, 셰익스피어 햄릿의 한 대목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를 떠올릴테다. 또 보통의 극장에 지어진 프로시니움 무대를 생각하는게 일반적. 지배적이었던 서양연극의 전통에서 벗어나 한국 전통 예술의 요소를 형식의 기준으로 삼자는 것이 이 극단의 핵심이었다.
우리나라는 ‘마당’이라는 무대가 있다. 무대를 높이 세우는 것이 아닌 막을 기준으로 무대와 무대 뒤라는 구분도 짓지 않는다. 마당 중앙으로 걸어 나가면 배우나 광대가 되는 것이고, 네모 선 밖으로 나가면 무대 밖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 공간은 막으로 가려지지 않고 활짝 열려 있다. 그리스비극의 코러스의 역할처럼 추임새를 넣어주는 역할도 할 수 있고, 무대로 나갈 채비를 하는 배우의 모습을 볼 수도 있다. 네모 선은 무대와 무대 밖을 가르기도 하지만 마치 천국과 지옥 사이, 연옥의 공간이라 할 수 있겠다. 이 공간은 배우를 그 어디에도 포함될 수 있는 열린 존재로 만들어준다.
극단 <우투리>의 실험은 한국 전통 연희에서 여러 가능성을 가져온 것이다. <우투리>의 연극인들은 방학이면 ‘양주별산대놀이’를 배웠다. 산대놀이에 나오는 춤을 배우고 진양, 중모리, 중중모리, 굿거리, 자진모리 같은 장단도 배웠다. 극의 진행이 급박해지면 단모리 장단이 흐르고, 진행이 느슨하면 굿거리 장단이 흐르는. 여기에 운율을 넣은 대사를 만드는 식이다. 극의 진행에 따라 장단이 정해지는 부분은 판소리의 전통과 맞닿아 있다.
이 연극 안에는 전통악기의 연주도 필요했어요. 이런 이유로 해금연주가로서 이 연극판에 끼게 된 것. 극단 <우투리>와 함께 우리나라 방방곡곡, 러시아 에카테린부르그, 프랑스 빠리등 여러 연극제를 순례하게 된다. 연극인들과 몰려다니던 시절, 참 즐거웠다. 극단 <우투리>를 창단한 주축은 당시 연극원의 김광림 교수님, 김만석 교수님, 최준호 교수님 등은 연극 예술가들이었다. 푸릇푸릇한 연극원 학생들이 조연출과 배우로 섰다. 이들은 연습 쉬는 시간에 소위 맞담배를 피기도 하고, 연습 후에는 막걸리 집에서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이목구비가 서구적으로 또렷또렷하여 외모가 출중한 사람도 여럿 있었고, 온 몸에서 뿜어내는 강력한 에너지에 곁에 있는 나에게도 생동감이 전염되는 듯 했다. 어른의 말을 그저 잘 듣고 모범생으로만 살았고 그래서 어리숙했던 내 스물한 살과는 달리 자기 색깔을 이미 찾은 예술가처럼 성숙해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연습은 보통 학교 체육관에서 했다. 야생의 힘으로 번뜩이고 그 에너지를 무대 위에서 대사로 춤으로 눈빛으로 노래로 발산했다. 추레하게 연습복을 입어도 그들은 멋졌다.
‘아, 이곳은 내가 있던 곳과는 많이 다르다. 신기하다. 재미있다’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속해있던 중, 고등학교는 “엄하고, 귀하게!”라며 90도로 인사하는 예절 문화가 있었다. “우리는 전통음악, 특히 아악(雅樂)의 의례와 격식을 전하는”과 같은 무거운 미션이 교육의 내용에 스며 있기도 했다. 학칙이 엄했고, 모범생 집단 이었다 공자시절의 음악 이념을 주로 배웠던 학교생활. 철저하게 입시 위주의 연습을 하며 규격화된 나의 의식이 깨어나는 순간이 바로 이때다. 무대는 온 몸으로 구르며 노는 곳일까? 나도 예술가다워질 수 있을까? 예술가가 되고 싶다! 예술은 자유롭고 멋진 것이구나, 라고 나를 흔들어 깨운 경험을 이 연극판에서 많이 했다.
그 현장에는 늘 뜨거운 무언가가 넘실댔다. 그 현장의 맛이 나를 여기까지 이끌고 온 것 같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무언가를 향해 우직하게 갈 수 있는 것은 ‘열망’을 연료로 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게 예술에 대한 ‘뜨거운 희망’을 준 곳이 바로 <우투리>의 현장. 살다보니 귀한 것이 진정 하고 싶은 마음, 앞도 뒤도 잴 필요 없이 달려갈 수 있는 마음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