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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지윤 Jun 25. 2021

하이델베르그 성(成) 페스티벌을 가다_1

천지윤의 해금이야기


성(成)으로 떠날 준비      



참치 회동 이후, 그러니까 2009년 무렵. 비빙이라는 음악그룹에 합류하게 되어 꽤나 오랜 시간동안 많은 도시를 다니게 되었다. 해금하는 나와 노래하는 승희가 가장 어린 멤버였다. 피리 나원일, 가야금 고지연, 타악 최준일, 작곡가이자 음악감독인 장영규, 음향감독 오영훈, 매니저 김지명 까지 평균 10세 이상 연상의 선배이자 선생님들이었다. 나보다 연주 경력은 물론이고 활동의 범위도 넓었다. 영화와 연극, 미술, 무용계의 다양한 예술가들과 협업하며 지내는 선생님들과의 만남 자체가 신선한 자극이었다. 진짜 예술계에 발을 들였다는 생각과 함께 그들과 만나는 매일이 설레고 즐거웠다. 



비빙은 2008년 <이와 사, 불교음악프로젝트>로 창단, 초연 연주를 했다. 초연 이후 탈퇴한 멤버를 충원하기 위해 이듬해 새로운 멤버를 영입한 것이었다. 그 첫 공연이 현대무용가 안은미와 콜라보하는 작품으로 하이델베르그 성(成)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것이었다. <이와 사>는 비빙의 기본 구성인 해금, 피리, 가야금, 타악, 소리에 불교에서 범패를 부른다. 나비춤, 바라춤을 추는 예술스님인 정각스님이 결합된 형태이다. 



하이델베르그 공연에는 여기에 현대무용까지 더해진 것이다. 멤버가 모두 갖춰진 이후 비빙은 하이델베르그 공연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새로 입단하게 된 나와 승희는 팀에 적응 기간을 갖게 되고 새로운 음악을 익히며 새로운 관계 속에 새로운 나날들을 맞이하게 된다. 새로운 나날들이란 장감독님의 연남동 자택 연습실에 모여 연습 이후 맛집 순례를 하며 밤이 새도록 이야기 꽃을 피우는 것. 그렇게 8명의 멤버는 하이델베르그 성으로 떠날 준비를 차곡차곡 해나갔다.         



그즈음의 나는 매일 아침 일어나 일기를 쓰곤 했다. 페이지를 빼곡히 채운 일기장이 차곡차곡 쌓여갈 정도였으니 내게는 중요한 루틴이자 리츄얼 이었다. 책상 앞에 앉으면 세계지도가 보였다. 그때 일기를 쓰며 자주 듣던 음반은 팻 매쓰니의 <a map of the world>. 팻 매쓰니의 음악에 깃든 드넓은 풍광이 나의 상상력에 한 몫을 더했다. 세계지도를 바라보며 세계 방방곡곡을 다니며 연주활동을 하고 싶다고 발원하고는 했다. 






책장 위 칸에 독일 하이델베르그 성(成)을 담은 도록이 있었다. 언니가 독일어를 전공했기에 독일과 여러 차례 왕래가 있었고 독일 관련 서적이 많은 편이었다. 세계지도 앞에 앉아 일기를 쓰는 날들 가운데 <Heidelberger Schloss>라는 제목과 성의 전경이 담긴 표지가 눈에 띄는 날들이 종종 있었다. 갈색 돌로 지어진 성은 초록 숲에 둘러 쌓여있었고 동화에 나올 법한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막연히 ‘저곳에 가고 싶네.’ 라고 생각하곤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이델베르그 성, 비빙 그리고 안은미와의 부름이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우연이기도 하다. 



마음속에서 자신의 진실한 바람을 찾아내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누군가에게 주입된 가치가 아닌 내 존재 자체로 바라게 되는 일들이 있다. 그것이 그 존재의 고유성이거나 사명이라 할 수도 있겠다. 진실한 바람은 힘을 갖고 있다고 믿고 있다. 소중한 인연을 만나게 하는 힘.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인생의 페이지를 만들어가는 힘. 그 이야기들을 바로 이 챕터에서 해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만큼 내게는 절실하게 행복했던 순간들이다.       






하이델베르그 성(成) 축제      

하이델베르그의 일정은 한 달 정도로 짜여졌다. 8인의 비빙 멤버와 두 분의 예술 스님, 현대무용가 안은미 선생님, 설치미술가 이형주 선생님. 총 12인이 함께 떠나게 되었다. 우리는 하이델베르그 성(成) 축제 주체 측에서 제공한 아파트에서 지내게 되었다. 아파트는 몇 개의 방과 키친 공간이 있었다. 키친은 8인용 식탁이 있었고 최대 10인 정도가 앉을 수 있었다. 



키친은 늘 중요하다. 모든 구성원이 모여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이야기하며 교류하는 공간. 한 달 간 지지고 볶으며 삶의 이야기가 펼쳐질 제2의 백스테이지. 우리가 지낼 아파트 투어를 마치고 각각 2인 1실로 방이 배정되었다. 나의 룸메이트는 입사(?) 동기인 소리꾼 승희. 각자의 침대를 정하고 짐을 풀었다. 



숙소에서 나와서 축제 관계자를 만났다. 바퀴가 커다란 유럽식 자전거를 타고 자전거 바구니에는 바게트를 싣고 있었다. 경쾌한 그녀는 우리를 하이델베르그 성으로 안내했다. 성은 숙소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였다. 하이델베르그 성으로 걸어 올라가는 길이 녹록치는 않았다. 성이 높은 지대에 위치했기에 길은 경사가 급한 편이었다. 게다가 우리는 자신의 악기 뿐 아니라 악기의 종류가 유난히 많은 타악 연주자의 각종 악기도 나누어 들어야 했다. 무엇보다 가구만큼 커다란 가야금 두 대와 가야금 받침대를 옮기는 것 또한 매일의 난제였다. 그래도 하이델베르그 성으로 매일 출근하고 리허설하고 공연하는 일만큼 멋진 일이 있단 말인가! 



하이델베르그 성에 도착해 공연을 위한 답사를 시작했다. 우리가 공연할 장소는 성의 제일 꼭대기다. 성의 요새라 할 수 있는 이 곳은 지름 30m 정도의 크기다. 성곽의 둘레가 벽돌로 둘러 쌓여있고 하이델베르그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 하이델베르그는 대학 도시로 여러 대학이 자리 잡고 있으며 적갈색 지붕의 가옥들이 도시를 받치고 있는 우산처럼 도처에 깔려있다. 오랜 역사 속에 전쟁으로 여러 차례 폭격을 당해 성의 머리에 해당하는 부분이 파괴되었다고 한다. 으스러진 모습을 드러내고 있음에도 오래된 벽돌들은 세월을 품은 아름다움이 있다. 성의 요새는 공연장이 될 것이고, 중앙 원형 공간은 무대가, 무대를 중심으로 빙 둘러 원형 객석이 설치될 것이다. 



축제 관계자는 우리의 무대가 될 곳을 소개하며 이 공간은 셰익스피어가 직접 무대를 밟았고 그의 연극이 올려 진 유서 깊은 곳이라며 자랑스러워했다. 하이델베르그 성 축제는 매년 여름 열린다. (현재 코로나 상황이 극심함에도 불구하고, 2021년에도 축제가 열릴 예정으로 다양한 공연물이 기획되고 있다.) 축제에 올려 질 공연들은 이 요새 뿐 아니라 성의 구석구석을 무대로 활용한다. 그해는 현대오페라부터 실내악까지 다양한 작품이 초대되었다. 성의 꼭대기, 바로 이 요새는 한국의 전통예술과 현대무용이 만나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예정이었다. 축제 관계자와 우리는 모두 설레는 가슴으로 답사를 마치고 하산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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