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윤의 해금이야기
木
복판
울림통의 왼쪽은 뻥 뚫려 있고 오른쪽은 나무로 막는다. 이 나무를 복판이라 한다. 복판 위에 원산을 얹고, 원산 위에 현을 얹는다. 복판 나무의 두께에 따라 볼륨에 차이가 난다. 활에 힘을 키워야 할 때, 악기에 길을 들일 때 복판을 두껍게 갈아 소리를 틔운다. 새 악기를 사서 마음먹고 길들여야 할 때 일부러 두꺼운 복판을 선택하는 연주가도 있다. 두꺼운 복판에 소리를 틔우는 행위는 해금연주가들의 내밀한 수련 과정이다. 활에 힘이 붙어야 두꺼운 복판을 뚫고 나올 볼륨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과 정성을 들여 꾸준히 연습을 하다보면 활에 힘이 붙고 얇은 복판과는 다른 차원의 소리를 생성하게 된다. 핵심 있고 옹골진 소리다. 강력한 염원을 담은 활질을 무수히 하며 시간을 통과해야 복판이 말을 들어주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연주가들은 돌파하는 힘을 키운다.
콩쿨이나 입시에서 악기의 볼륨은 중요하다. 근본적으로 콩쿨과 입시는 비교를 통해 순위를 매기고 1등을 가려내는 일이다. 1번부터 끝번까지 같은 과제곡을 연달아 연주하게 되니 잔인할 정도로 비교가 된다. 올림픽에 출전한 체조선수나 피겨스케이터와 비교할 수 있겠다. 신체 조건이 우월하게 받쳐줘야 어떤 기술을 하더라도 제대로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이 신체 조건에 해당하는 것이 악기의 볼륨이라 할 수 있겠다. 섬세한 기술력과 감정표현 등의 예술적 영역을 극대화 할 수 있는 최적의 피지컬! 작은 볼륨은 연주 전달이 제대로 안 될 수 있고, 자신감이 떨어져 보인다. 크고 풍성한 볼륨은 무대를 순식간에 장악하고 섬세한 연주와 감정 표현을 심사석까지 전달할 수 있다.
그러니 콩쿨이나 입시와 같은 경쟁의 무대에 서기 전 연주가들이 볼륨에 목숨을 거는 것일 테다. 연주 전 풍성한 볼륨을 위해 비장한 마음으로 악기사에 간다. ‘복판을 얇게 갈아주세요.’ 라고 사장님께 주문을 한다. 간 큰 연주가들은 ‘깨지기 직전 까지 얇게 갈아주세요!’ 라고 위험한 도전(?)을 하기도 한다. 모 아니면 도. 연주 도중 복판이 깨져서 연주를 망치거나, 아주 큰 볼륨으로 승부를 내거나.
연주를 앞둔 며칠 전 복판이 깨지는 경우는 종종 보았다. 그때는 모도 아니고 도도 아니다. 길들여지지 않은, 낯설고 변변치 않은 음색으로 중요한 연주를 치러야 하는 것이다. 울림통과 붙어 있기에 복판의 두께는 감으로 알 수밖에 없다. ‘와지끈’ 깨진 복판을 연주 전 마주하지 않으려면 소리에 대한 촉과 감, 기도하는 마음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