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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바라기 May 23. 2022

시어머니의
그놈 때문에 칼을 들었다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듯한 두 눈으로 나를 매섭게 노려보고 있다. 놈의 눈빛이 너무 싫다. 첫인상이 저리도 더러울 수가 있단 말인가? 그렇게 서로를 응시하며 한마디 말도 건네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더 이상 놈과 대치하는 것은 의미 없다는 판단이 섰다. 짜증이 가득 묻어난 깊은 한숨을 쉬며 조용히 칼을 꺼내 들었다. 번뜩이는 칼날 앞에서도 놈은 전혀 미동하지 않았다. 커다랗고 날카로운 이빨은 흐릿한 불빛 아래에서 유독 빛이 났다.  긴장하지 말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단칼에 찔러 한 번에 끝내고 싶었다. 용기를 내어 칼을 높이 집어 들고 힘껏 내려쳤다. 

‘이런 젠장’

빗나갔다. 

다시 한번 내리쳤다. 

‘됐다’ 정확하게 놈의 머리에 꽂혔지만 잘리지 않았다. 강인한 뼈가 칼날 끝에 걸려 더 이상 들어가지 않았다. 다시 한번 내리쳤다. 머리 주변의 강인한 뼈는 계속된 칼질에도 잘리지 않았다.

‘질긴 놈, 질린다 정말’ 

삼각형 모양의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머리를 떼어내고 몸통을 절단하는 대만 10여 분의 시간을 허비했다. 

‘지친다. 지쳐’ 

다신 이놈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창문 넘어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는 초록의 싱그러움이 담겨있었다. 포근한 햇살에 살랑이는 꽃잎들이 눈부신 어느 날. 신혼집으로 시어머니가 찾아오셨다. 손에는 커다란 검은 비닐봉지가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너무 싱싱해서 샀다. 맛있게 해 먹어라"

한마디에 검은 비닐은 내 손에 건네 졌고, 종종걸음을 바삐 옮기시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정신을 차리고 검은 비닐봉지를 열었을 때, 난 소스라치게 놀랐다. 허연 빛의 이빨에, 뚝 튀어나온 회색빛 눈알은 괴물 같았다. 이놈의 정체는 아귀였다.  한 마리가 아니었다. 무려 4마리가 들어 있었다. 한 마리와의 사투 후 나머지 3마리를 손질하는데 조금 요령이 생겼다. 쉽게 절단되지 않는 뼈들은 가위로 잘라내는 것이 더 편했다. 


태어나 아귀를 이렇게 마주하긴 처음이었다. 나에게 아귀는 아귀탕이나 아귀찜을 파는 식당에서만 먹는 음식이었다. 여수에서 태어나 해산물을 더없이 사랑하시는 시어머니에게 아귀는 싱싱한 먹거리였을지 모르지만, 한강을 바다로 알고 서울에서만 자란 나에게 아귀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못생긴 생선이었다. 내 인생에서 아귀와의 첫 대면은 수없이 칼을 내리쳐야 했던 기억만을 남겼다.      

듬성듬성 난도질된 조각으로 매운탕 끓이듯 탕을 끓였다. 아귀가 냄비에서 끓는 동안에도 난 녀석의 흔적을 지우고 냄새를 없애느라 애써야 했다. 고춧가루를 냄비에 뿌리며 말했다.

‘우리 다신 만나지 말자!!, 제발!!’     

퇴근한 신랑과 함께 아귀탕을 한입 먹었다. 이건 웬일인가? 한없이 부드러움을 자랑하는 살들이 퍼져나갔다. 쫄깃한 식감은 지속해서 밥을 뜨게 했다. 

‘미안하다, 다시 만나야겠다’


“여보!, 어머니가 너무 싱싱한 놈을 사다 주셨네, 다음에도 부탁해야 할까 봐요”

처절했던 아귀와의 싸움에 지쳐있던 내 마음은 입안에서 소르르  부드러움을 전해주는 아귀 살과 함께 한순간에 녹아내렸다.    



[ 깔깔하고 시원한 아귀탕 끓이는 방법 ] 


1. 물 1리터에 국멸치, 다시마를 넣고 팔팔 끓입니다. 

2. 물이 끓을 때 썰어 놓은 무를 먼저 넣습니다. 

3. (2) 번에 까나리 액젓(국간장이나 참치액젓을 넣어도 무방합니다)

4. 다듬어 놓은 아귀를 넣고 다진 마늘, 콩나물을 넣고 다시 끓입니다. 

5. 부족한 간은 소금으로 해 줍니다. 

6. 무와 아귀살이 다 익었다 생각되면 미나리, 대파, 고추를 넣고 마무리합니다. 

(미나리 없으면 패스해도 상관없어요. 콩나물과 무 만으로도 시원해요)


*저는 시어머니가 손질되어 있지 않은 아귀를 주셔서 고생했었는데, 시장 생선가게에 가면 손질해서 팔아요. 정말 시원하고 맛있어요. 집에서도 시원한 아귀탕 한번 도전해 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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