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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바라기 May 28. 2022

시어머니가 주신 재료로
만들 수 있는 음식은?



막막하다. 

저 아이들을 다 담아낼 커다란 지퍼백도 냄비도 스텐 볼도 없다. 어찌해야 하나?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러시아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식탁에는 검은색 비닐봉지들이 순서대로, 크기대로 일렬로 줄을 지어 서 있다. 엄청난 양에 기가 죽어 망연자실 계속 쳐다만 보았다. 머리를 계속 굴려 보지만 솥뚜껑 운전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혼 주방에는 어울리지 않는 대.용.량이다.      


“우리, 아들이 좋아한다. 가서 끓여줘라! 다 넣고 간만 맞추면 된다.” 

시어머니는 아파트 정문에서 커다란 검은 비닐봉지를 주고 빛의 속도로 사라졌다.     


검은 비닐봉지 가득 담겨 있는 숙주. 작은 비닐봉지에 소복이 담겨 있는 고기, 머리카락 뒤엉키듯 한데 뭉쳐있는 고사리, 손질되어 있지 않은  묵직한 대파,  커다란 무 한 개,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초록색 나물 같은 것.          


'이 모든 재료들로 만들 수 있는 음식은 무엇일까요?' 

시어머니가 검은 비닐봉지 안 재료들 안에 물음표를 던져 주신 것 같다. 숙제 같이 느껴진다. 학교 졸업하면 숙제할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시어머니에게 숙제를 받았다. 정답은 육개장 재료인 듯했다. 어떤 문제에 대한 정답을 맞혀도 전혀 즐겁지 않고, 우울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시어머지가 주신 식재료들 앞에서 알 수 있었다. 육개장은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해 보지 않았던 숙제다. 처음 해야 하는 숙제 앞에 스트레스 지수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내가 남편을 굶기는 것도 아닌데. 안 주셔도 되는데. 이 많은 걸 어찌 처리해야 할지 난감했다. 


우선 재료 손질부터 들어갔다. 씻고 다듬고 준비하는 데에만 30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숙제하기도 전에 지친다.  당장 끓일 재료만 남기고 모두 섞어 지퍼백에 넣어 냉동실에 넣어버렸다. 다신 꺼내고 싶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초록색 나물 같은 것은 고구마 줄기 었다. 숙제로 주어진 육개장을 끓이긴 끓여야 했다. 착실한 며느리인 나는 시어머니의 말을 따랐다.    

'그래, 모두 다 넣고 끓이다가 간만 맞추면 된다 하셨으니 그렇게 해보자'


커다란 냄비에 재료들을 종류별로 적당히 담고 물을 부었다. 그리고 끓였다. 팔팔 끓을 때 국간장으로 간을 맞추었다. 간은 맞았다. 하지만 비주얼이 영~~ 먹음직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이왕 간은 맞춘 김에 식당에서 먹던 육개장 비주얼을 만들고 싶었다.       

‘고춧가루를 넣어볼까?’      

냄비에 고춧가루를 한 숟갈 넣었다. 그래도 붉은색이 부족해 보였다. 다시 한 숟가락을 더 넣었다. 빨간색을 넣었음에도 육개장 비주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런 또 다른 빨간색.. 음.. 고추장을 넣어볼까?’    

근데 왠지 고추장은 아닐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고민 고민하다가 고춧가루를 조금 더 넣었다. 너무 매워졌다. 다시 물을 부었다. 그리고 간을 했다. 그러기를 여러 번 하다 지쳤다. 식당에서 먹던 육개장의 비주얼을 이제 결혼한 지 몇 달도 되지 않은 내가 만들어 내기엔 역부족이란 생각이 들었다. 비주얼은 과감하게 미련 없이 포기했다.      


퇴근하고 온 신랑은 별말 없이 육개장을 먹었다. 맛있다는 말도, 맛이 없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근데 육개장을 좋아했어요? 어머니가 당신이 좋아한다면서 재료를 갖다 주셨어요”     

신랑은 웃으며 말했다. 시어머니가 바쁘시거나, 친구분들과 여행을 가실 때는 늘 곰솥에 육개장을 한 냄비 끓여 놓으셨다고 말이다. 밥을 따로 하기 싫은 남편은 매일 저녁 육개장을 조금씩 꺼내 데워 먹었다는 것이다. 커다란 곰솥에 있던 육개장을 며칠 동안 다 먹었으니 좋아한다고 생각할 만했다.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시어머니께 전화했다. 그리고 웃으며 말했다.      


“어머니, 주신 재료로 어머니 아들이 좋아하는 육개장 끓여서 저녁 먹었어요. 어머니 아들이 너무 맛있게 먹더라고요”      


핸드폰 너머로 환하게 웃으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 백종원 육개장 레시피  ]       


* 준비물   

-소고기(불고기용) 2컵 = 180g 

-달걀 2개

-불린 당면 2컵

-대파 약 2대

-느타리버섯 80g

-표고버섯 60g

-숙주 1봉 (300g)


* 양념

-참기름 6스푼

-식용유 2스푼

-간 생강 약간

-간 마늘 1/2 스푼

-굵은 고춧가루 3큰술

-국간장 1/3컵 (국간장 양은 조절해주세요)

-꽃소금 1/3 큰술

-후추 가루 약간     


1. 식용유, 참기름을 넣고 썰어놓은 대파를 넣고 볶는다.

2. 파 기름을 낸 후, 고기를 넣고 같이 볶아 줍니다. 

3. 고기가 어느 정도 익으면 고춧가루를 넣고 볶아 줍니다.

4. 3에서 고추기름이 나오면 물 6컵을 부어줍니다.  

5. 물이 끓을 때, 마늘, 생강, 국간장, 느타리버섯, 표고버섯을 넣습니다.

6. 팔팔 끓기 시작하면 숙주를 넣고 끓여준 후 불을 끕니다. 

7. 부족한 간은 소금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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