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행에 대해서는 어쨌거나 <뉴먼>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고 넘어갈 수가 없다. 그리고 내가 mbti 검사가 유행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10년간 무조건 INFP만 나오는 내향적이고도 즉흥적인 사람이라는 것도. 강릉에서 5년 반 회사를 다니다 돌연 휴직 중이라는 것도, 그렇지만 머리가 크고 나서 서울에서만 7년간 살았다는 것도. 내가 그걸 왜 알아야 돼... 하겠지만 그래도 시작 지점에서 알아두어야 이 여행이 어떻게 가능했고 현대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까지 고찰해보실 수 있을 것이다. 농담이다. 아무 의미도 없다. 모든 건 대충 이루어졌다.
태초에 '빌라선샤인'이 있었다. 한마디로 '일하는 밀레니얼 여성들 사이의 연결망을 만들기 위한 커뮤니티'인데, 코로나 대위기와 함께 지금은 사라졌다. 대신 사라짐을 못내 아쉬워하던 일하는 여성들(a.k.a.뉴먼)들이 여전히 남아 계속해서 서로에게 이어지려 하고 있다. 아무래도 뭐든 다 잘하는 밀레니얼 여성들의 유일한 약점이 '네트워킹'이기 때문인지 대다수의 뉴먼들은 콘텐츠 제작/홍보마케팅 직군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나는 그냥... 그냥 강릉에서 회사다니는 사람이었다. 그냥 뭐... 네트워킹이라는 말 자체가 거의 쓰이지 않는 직군의...
서로가 서로의 기꺼운 레퍼런스가 되는 여성들 사이에 있고 싶어서 내 귀여운 월급에서 상당한 돈을 투자해 몇 개의 빌라선샤인 시즌에 참여했다. 하지만 또 강릉에 사는 뉴먼은 나뿐이었고...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까지 토요일마다 아침 첫 ktx를 타고 서울에 올라가 각종 오프라인 모임에 참석하고 또 저녁도 못 먹고(죄송해요 제가 강릉에서 와서...) 하면서 지하철역으로 후다닥 뛰어가는 '아 그 강릉 뉴먼분'이었다. 빌라선샤인 측에서도 신기했겠지만, 이런 나를 직장 동료들은 더 신기하게 생각했다. 그들은 월요일이면 내 얼굴을 보자마자 지겹지도 않은 지 매번 같은 질문을 건넸다. (또 그 빌라 뭐시긴가 갔다왔어?) (거기서 뭘 얻어? 왜 그렇게까지 해?)
매주 그 빌라 뭐시기를 다니면서 도대체 뭘 얻느냐면 사실 그때 당시에 딱히 이렇다 말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매주 주말 서울을 오가며 체력과 돈을 옴싹옴싹 쓰고 있었는데 문제는 내가 너무 멀리 살아서 당일치기를 해야되는데다 심하게 내향적인 바람에 네트워킹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시즌이 거듭될 수록 친한 사람들끼리는 더욱 친해져 가는 듯했고 서울에 사는 뉴먼들은 모여서 번개모임으로 참 이것저것을 많이 하는 것 같아 지켜보는 내내 복장이 터졌다. 게다가 일단 지역의 말단 직장인이기 때문에 뭔가 같이 도모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아보였고 내가 알려줄 수 있는 것은 오직 강릉시 현지인 맛집 정보뿐이 아닌가... 싶어 이래저래 식은땀이 흘렀다.
그렇게 서울을 오갈 무렵 빌라선샤인 안에서 몇 번인가 파랑을 마주쳤었다. 한 1년쯤 뒤에 서로 집을 바꿔 여행하며 서로의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게 될 거라고는 꿈에도 모른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