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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제 Jul 20. 2021

가장 따뜻한 뉴먼, 파랑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고 기억하는데, 어느순간 돌아보니 빌라선샤인에서 만난 밀레니얼 친구들 말고도 많은 또래 친구들이 자신의 본명 외에 닉네임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닉네임 파티의 시작은 '부캐'라는 게 떴을 때부터 본격적이었다가 점차 '셀프 브랜딩'이라는 좀더 본새 나는 단어로 불리기 시작했으며 근래에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는 자아를 이야기 하는 데에도 많이 쓰이는 것 같다. 특히 코로나 바이러스의 대창궐 이후 많은 사람들이 오프라인보다는 온라인을 기반으로 모이기 시작하면서 닉네임을 사용하는 자아에 대한 열풍이 분 듯도 하다. 그 기원과 역사에 대해서 잘은 모르겠지만 여하튼 지금도 내가 온라인을 통해 사귄 친구들의 본명보다 닉네임이 더 익숙한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이런 식의 대화를 꽤 자주 나누게 되는데... '그그, 파랑님 있잖아요. 이름이 뭐더라?' '파랑? 아 혹시 그 전시독후감 하는 파랑님이요?' '네네 파랑님이~' 이렇게 대개 파랑의 본명까지는 잘 모른다. 이름을 안다해도 성까지 아는 경우는 더 드물고, 대개 같은 나이대 여성들의 본명이란 비슷비슷하기 때문에 닉네임이 더 확실히 인상에 남는 경우도 더 많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누군가를 닉네임으로 부르면 물리적으로 멀리 있는, 로그아웃 해버리면 금세 끊겨버릴 수 있는 관계라는 느낌이 들기도 해 나 혼자 친해지면 본명을 부르는 운동을 하고 있다...


어쨌든 나는 파랑이 스스로를 파랑이라 이름 짓기 전, 오프라인 빌라선샤인 모임에서 그를 만났다. 어떤 프로그램을 확실히 같이 한 게 아니고 나는 다시 강릉으로 돌아가기 바빠서였는지 어쩐지 늘 '어디서 몇 번 스쳐지났던 분' 정도의 인상으로 남아있지만, 파랑이 특유의 털레털레 걷고 너털너털 웃을 때의 모습이 좋아서 나는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 역시 나를 어떻게 기억할 지는 모르겠지만 '아~ OO님~' 하고 나중에 온라인으로 한 글쓰기 모임을 함께 하게 됐을 때 서로 알은 체를 막 했었다. 아 근데 파랑님이 그... OO(본명) 맞으시죠? 어디서 만난 적 있는 것 같은데... 맞... 죠? 네네, 주제님은 그.. OO...? 님? 이시죠! 어디였더라 어디서 뵀었는데~~~


그렇다. 파랑이나 나나 같은 민족이었다. 얼레벌레족이라고. 대충 어디서 만났는 진 모르겠지만 어디서 본 거는 알겠다~ 하면서 그, 근데 어디서 봤더라? 아무튼! 반가워요! 이래버리는 종족이다. 정확히 저 분이 어디서 뭘 하는 분이신지는 모르겠지만 혹시 실례가 될 지 몰라 그냥 뭐 언젠가 알게 되겠지하며 대충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교환하고, 혹시 블로그 하세요? 아 브런치? 있으세요? 아 안하세요? 그렇구나~ 하면서 새로 올라오는 게시물이 있으면 우선 하트부터 하나 눌러주는 사이.


인터넷 세상에는 익히 알려진 닉네임을 가진 분들도 많고, 어떻게 저렇게 딱부러지게 생활하실까 싶은 분들도 많이 있지만. 그러게~ 응~ 그렇지 뭐어~ 하는 태도로 이야기를 하는 파랑이나 무슨 말만 하면 에휴... 모르겠어요~ 전 잘 모르겠어요~ 하고 대충만 말하고 싶어하는 나이기에 성사되는 일들도 있다. 둘 다 꼭 정규적으로 출근해야 되는 직장이 없는 시기, 집이 막 크거나 좋진 않아도 나름대로 쓸고 닦아 놓은 방 한 칸 있고, 한 명은 강릉에 며칠 머물며 바다를 보고 싶어하고, 다른 한 명은 서울에서 시간에 쫓기지 않고 친구들을 만나고 싶어한다면... 그럼 집 한 번 바꿔 살아볼까요? 엥~ 그럴까요? 언제쯤이요? 글쎄 다음 달 쯤? 그래요, 그럼! 좋아요! 하고 결정해버리는 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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