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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씰리 Apr 30. 2022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나의 아이큐가 10만 더 높았더라면

15년차 웹소설 작가인 친구 Y가 있다. 꾸준히 중박쯤 터뜨리며 밥벌이를 하다 2-3년 전에 히트작을 낸 뒤로는 통장에 매일 많은 돈이 찍히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야이쉬 부럽다! 나도 웹소설 쓸걸! 아이고 배야!! 라고는 하지만, 그 친구는 매일매일 연재물을 업로드해야 하기 때문에 주 6회 마감이다. 키가 180이 넘는 남성인데 연재 중엔 몸무게가 60kg도 안 되어 멀리서 걸어오는 걸 보면 2D 종이인간이 팔랑거리는 것 같다.     


어느 날 Y가 글을 쓰다 어떤 지점에서 막혀 몇 시간째 괴로워하고 있다며 담배를 하도 피워 재떨이처럼 절여진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내 아이큐가 딱 10만 높았으면 좋겠다. 그럼 아이디어가 쭉쭉 떠오를 텐데.’ 

가만히 듣던 내가 말했다. ‘그럼 작가를 안했겠지.’

‘아 맞네! 멍청해서 작가 하는 거네! 에이 시발!!’


Y와 내가 가장 자주 하는 말은 ‘우리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걸 하는 걸까?’ 이다.

물론 Y는 어느 정도 금전적인 부귀영화를 누리고는 있지만 그것을 위해 일상과 체중과 피부를 갈아 바치고 있다. 다른 작가 친구들도 그 말에 물개박수를 치며 동감하거나, 그쪽이 먼저 똑같은 멘트로 넋두리를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반면 이런 고민을 가족이나 작가가 아닌 친구들에게 털어놓으면 그들은 고민하다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이렇게 위로한다. ‘그래도 넌 네가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삼았잖아.’ 진심을 담은 말이라서 그냥 웃지만 사실 마음속은 울고 있다. 이렇게 그지같이 힘들 줄은 몰랐단 말이야! 엉엉!      


어떤 자리에서 내 직업을 밝히면 ‘저도 한때는 작가가 꿈이었어요.’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그 꿈 일찍 접은 것은 정말 잘하신 결정입니다...’ 는 그냥 내 마음의 독백이고, 한편으로는 참 신기하다. 글을 쓰고 싶어 했거나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이 세상에 이렇게 많다니. 그 어릴 적의 꿈을 이야기할 때 그들이 짓는 특유의 표정이 있다. 그래, 내가 그랬던 적이 있었지. 나에게 말하면서 새삼 그때를 복기하며 짓는, 그리운 미소. 작가의 꿈을 꿨던 소녀소년의 얼굴이 잠깐 스쳐 지나간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고 온 밤에는 상상해본다. 만약 나도 작가의 꿈을 일찌감치 접고 다른 직업을 가졌더라면, 그것이 지금의 나보다 아이큐가 10 더 높은 평행우주 너머의 씰리-1이라면, 씰리-1는 작가가 되지 못한 자신을 아쉬워할까?     


... ㅇㅇ. 아쉬워할 것 같다. 돈을 많이 벌고 행복하고 있어도 아쉬울 것 같다.


원래 내 꿈은 작가였다며 지금 현실을 두고 투덜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작가도 못 되고, 대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리 살고 있담? 작가가 됐으면 진작에 대성하고도 남았을 텐데! 나의 투덜거림은 종특이니까.      


한 동료는 어떤 날 이런 말을 했다. 

‘발상의 전환을 해보자꾸나. 우리가 아직 돈 못 벌고 성공은 못했지만, 지붕 있는 안전가옥에 살며 객사는 면하고 있잖니? 이게 얼마나 큰 복이니.’ 

지금 이렇게 글로 적고 나니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싶다. 그런 말을 주고받으며 맞다맞다 위안을 얻던 그날의 두 사람이 눈물겹게 애잔하다. 어떤 상황에서든 긍정적인 요소를 찾아 남을 위로하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그녀가 찾다 찾다 찾은 긍정적 요소가, 객사 면함이라니.     

 

아직 부귀영화의 길은 요원하지만 오늘도 안전가옥 아래서 밥 잘 먹고, 커피도 마시고, 볶음밥에 계란 두 개를 까넣을 정도의 재력은 가졌으니. 오늘은 그 정도로 족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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