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보루
"땅그지래요~ 땅그지래요~" 예전에 가장 심한 욕 중의 하나가 '거지'라는 말입니다. 땅에 떨어진 것을 주워 먹는다고 '땅거지'란 말이 생겼죠. 상대방의 약한 부분을 건드리면 가장 큰 '욕'이 됩니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욕을 먹어 버립니다. 아무리 심한 말을 해도 충격을 받지 않습니다. 반면에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생각지 못한 데서 쉽게 상처받고 흥분하기 마련입니다. 아마 요즘에 누군가가 '땅그지래요~'하면서 욕을 한다면 "어쩌라고!" 하면서 무관심하게 받아칠 겁니다. 그만큼 우리가 한 세대를 거쳐가면서 물질적으로 풍족해졌고, 정신적으로도 여유가 생긴 탓이겠지요.
5살 때, 우리 집은 서울에서 구멍가게를 했습니다. 가게 안쪽으로 방이 딸려있고.... '아 맞다.' 드라마 <전원일기>에 나오는 '쌍봉댁 구멍가게' 같은 거죠.ㅎㅎ 밖에는 과일과 아이스크림(하드) 통이 있었습니다. 서울 강북의 골목길은 여전히 비포장 도로였고, 복개천으로 만들어진 도로만 콘크리트 바닥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간혹 '넝마주이'도 돌아다녔습니다. 아이들이 무서워하는 '망태 할아버지' 같은 거죠.
어느 날 가게 앞에 넝마주이보다 '급'이 좀 낮은 '거지'가 나타났습니다. 세수를 못해서인지 얼굴이 새카맣고 눈만 하얗게 보입니다. 우리 집 과일 매대에서 사과하나를 훔쳐 손에 쥐고 구석진 곳에 앉아 있습니다. 주변 어른들이 깜짝 놀라서 손에 든 사과를 빼앗으려고 합니다. 강하게 움켜쥔 손에서 사과를 빼앗을 수 없었던 어른들이 말합니다. "어휴 힘이 얼마나 센지 빼앗을 수가 없어~" 옆에서 그것을 지켜보던 저는 또 하나의 사건을 인생수첩에 적어 놓습니다. '거지는 한 번 잡은 사과를 절대 놓지 않는다' 이후로 많은 시간이 흘러 지금에 이르렀지만 여전히 '그분'이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연탄처럼 까만 얼굴에 표정 없는 얼굴, 공포에 질린 듯한 하얀 눈동자, 웅크리고 앉아있던 굽은 등, 손에 쥔 빨간 사과, 그를 바라보며 오고 가는 주변의 말소리... '
낡고 오래된 듯한 느낌을 주는 패션을 '빈티지(vintage) 패션'이라고 합니다. 중국어로 빈티지 패션을 '치까이푸(乞丐服)'라고 합니다. '치까이'는 '거지'란 뜻이니까 빈티지 패션은 '거지옷'이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외래어를 가급적 자국 언어인 한자로 변환해서 사용하는 중국인으로서는 "오늘 입고 나온 패션이 꽤 빈티지한 느낌이다"는 "오늘 입고 나온 패션이 꽤 그지 같은 느낌이다", "여기 카페는 빈티지한 곳인데 어때?"는 "여기 카페 정말 그지 같다 어때?" 이렇게 느껴지지 않을까요? ㅎㅎ
논산 육군훈련소에 입대하고 기초군사훈련이 진행되었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무서운 '화생방 훈련'이 있는 날입니다. 5명씩 한 조로 편성되어 창고로 들어갑니다. 방독면을 착용하고 안에 들어서니 중앙에 벌써부터 연기가 자욱합니다. 최루탄을 피워놓고 숙달된 조교가 명령을 합니다. 어려서부터 기관지가 좀 약한 저로서는 시작도 하기 전에 공포가 몰려옵니다. 성능도 좋지 않은 연습용 방독면에서 쾌쾌한 최루가스가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명령에 따라 구호를 외치고,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다 보니 숨은 차오고 질식할 것 같은 위기감이 몰려옵니다. 이러다 죽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반대편 철문이 1센티미터가량 열려있는 것이 보입니다. 가느다란 빛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본능적으로 문을 향해 뛰쳐나갔고 문뒤에 있는 조교도 저를 채 막지 못하고 밀려났습니다. 밖으로 나가 방독면을 젖히고 눈물 콧물을 흘려가며 숨을 몰아 쉬었습니다. ‘죽겠다’라고 판단되니까 그 무서운 조교도 눈에 안보입니다. 탈출도 잠시, 저는 다시 화생방실로 끌려들어 가서 남아있던 4명의 동기들과 더 강한 얼차려를 받은 후 지옥 같은 훈련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가게에서 사과를 움켜쥐고 놓지 않았던 '그분'에게 있어서 '사과'는 철문 사이로 들어온 '작은 빛'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철문 사이로 들어오는 작은 빛을 보는 순간, 무서운 조교도, 화생방 훈련도, 동기도, 훈련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오로지 본능적으로 뛰쳐나가야 했던 저처럼, '그분'에게 사과는 놓을 수 없는 '생명'이었을 겁니다. 창피함도, 수치스러움도, 무서움도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손아귀의 힘은 오로지 '사과'에 집중되어 야수 같은 힘을 발휘하게 된 것이겠지요. '한 번 잡은 사과를 그는 절대 놓을 수 없습니다.'
가끔 인생의 마지막을 생각해 봅니다. 피할 수 없고 거역할 수 없는 삶의 종착역에서 나는 무엇을 바라보고 있을까? 인생의 수많은 굴곡 속에 있었던 걱정, 불안, 좌절, 수치, 염려, 무엇이 문제가 될까요? 감동적인 유튜브영상 중에 수명을 다하고 움직임이 멈춘 노쇠한 애견이 현관에 들어오는 '주인'을 향해 죽을힘을 향해 걸어가 그 앞에서 마지막을 고하는 장면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듭니다. 그에게 있어 '주인'은 마지막 '작은 빛'이고, 마지막 '사과'였습니다. 내게 있어 마지막 소망과 빛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결코 놓을 수 없는 마지막 보루(堡壘)입니다. 그 소망이 있기에 오늘도 성도로 살아갈 힘을 얻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