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적의 기록
인터넷을 좀 일찍 접했습니다. 우리나라 4대 PC통신업체 천리안, 나우누리, 하이텔, 유니텔이 통신 서비스를 진행할 때, HTML을 이용해서 개인 홈페이지도 만들어서 사용했으니까요.
알리바바(Alibaba, 阿里巴巴)의 창시자 마윈(馬雲)이 1999년에 처음 알리바바 홈페이지를 개설했습니다. 우연찮게 당시 노란색의 알리바바 홈페이지를 제가 방문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1886년 미국 와이오밍 주의 한 인쇄소에서 흰 종이가 부족해 노란 종이에 상업 광고를 인쇄한 것이 시작된 미국의 상업광고 전화번호부가 '옐로페이지'였습니다. 그때는 그저 미국의 옐로페이지를 카피한 것처럼 느꼈을 뿐이었지만, 나중에 그 알리바바가 이렇게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할 줄은 몰랐습니다.
그즈음부터 저도 개인홈페이지를 만들고 게시판을 장착(?)해서 나름 소통의 장소로 사용했습니다. 그러다가 싸이월드나 페이스북 등 개인 SNS계정이 활성화되고 대중화되면서, 개인 홈페이지는 시대의 흐름 속에 자연히 묻히게 됩니다. 그래도 게시판에 남겨준 지인들의 글이 소중해서 백업 후 아직도 보관하고 있습니다.
INSERT INTO zetyx_board_comment_guest VALUES 홈페이지 등록일자: 2001/05/08 12:52 제목: Re: 우리 집에 놀러 와서 고맙습니다. 반갑습니다.... 홈페이지는 꽤 오래전에 만들었는데..(98년 돈가..?) 지속적으로 많이 업데이트를 못 시켰습니다. 요즘 본의 아니게 시간이 좀 나서 몇 군데 손을 봤지만 전문가 수준은 아니고 습작이라고 해야 할까요? 뭐 그렇습니다. 좋은 교제 나눌 수 있어 너무 좋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만남이 지속될수록 주안에서 하나 된 모습으로 '함께'했으면 합니다.
게시판에 올린 날짜를 보니 98년도에 만들어 놓고, 2001년쯤 소통하기 시작한 것 같네요. 어느 월간지에서 제 홈페이지에 실린 딸아이 사진을 제 동의를 받고 게재했으니 어깨가 우쭐할만했습니다. 이제는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짤막하게 올리는 단상(斷想)이나 신변잡기(身邊雜記)보다는 '생각을 잘 가다듬은 글(精製之文)'로 지난 경험과 생각을 정리하며 한 문장씩 다듬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비 오는 토요일입니다. 어제저녁부터 12시간을 내리 잠을 잤습니다. 몇 주간 기침으로 잠을 못 이뤘습니다. 기관지염이 좀 가라앉으니 밀린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해소된 것 같습니다. 아내도 2-3주가량 몸이 안 좋더니 오늘은 지인과 놀러 간다고 오전에 일찍 나가네요. 농담 삼아 "당신은 아프지 않으면 밖으로 나가네!" 했더니 깔깔거리며 격한 '인정'을 합니다. 집에 혼자남아 이것저것 정리를 했습니다. 잘 사용하지 않고 있는 러닝머신을 발코니로 내어놓고, 너저분한 옷걸이며, 복잡한 전기 리드선을 정리했습니다. 먼지 뽀얗게 묻어난 다구(茶具)들도 물에 세척해서 말려 놓으니 한결 기분이 좋습니다.
자료를 버리지 않고 보관하는 것이 어떤 때는 내가 너무 '과거'에 집착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처음 컴퓨터를 시작하고 작성한 문서들이 지금까지 보관되어 있으니 그렇게 생각할만합니다. 70년대 오일쇼크를 외치다 2000년대 피크오일논쟁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결국 자원의 고갈보다 자원개발 기술이 앞질러 가면서, 이제는 에너지전환이라는 개념으로 발전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동안 모아 온 제 자료는 어마어마한 양일 것 같지만, 데이터 저장기술은 더욱 앞서가고 있습니다. 덕분에 그 부피는 점점 줄어들고 있지요. 자료를 모아두었다고 하기가 무색할 정도로 얼마 안 되는 양이 외장하드디스크에 작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제 '인생'도 정리될 때가 있겠죠. 하나씩 압축되어 사라질 것입니다. 내 삶은 점점 정리되겠지만, 하루하루를 가다듬으며 남은 기록들을 소중히 하고 싶습니다. 언젠가는 오늘 하루 가다듬어 쓰는 '정제된 글(精製之文)'이야말로 제 삶을 증명해 줄 마지막 기록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