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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잡담 Feb 22. 2023

파리에서 적응해야 할 두세 가지 것들


그녀와 나의 파리 생활의 시작은 2구에 있는 호텔부터였다. 다시 집을 구해야 하기에 당분간 얼마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호텔에서 지내기로 했다. 얼마나 편한 말인가 호텔 생활. 아침마다 조식을 대령해 주고 외출했다 돌아오면 깔끔하게 룸 정리가 되어있고 따뜻한 실내 온도를 유지하며 잠들 수 있는… 그러나 그런 편한 생활에도 불구하고 그녀와 나를 괴롭히는 무엇이 있었으니 그것은 시차였다.

-8시간의 시차. 파리가 아침 9시면 한국은 오후 5시. 정오 12시면 한국은 오후 8시. 오후 7시면 한국은 새벽 4시다. 그러하기에 파리에서 해가 지면 졸음이 쏟아졌다. 그녀와 나는 저녁을 먹고 나면 시체처럼 바로 잠들어 버렸다. 바로 먹고 자니 당연히 속도 항상 더부룩했다. 그래서인지 한국에서 안 먹던 탄산수를 끼고 살았다. 혹은 저녁을 건너뛰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힘든 건 아침이다. 새벽 4시면 약속이나 한 듯 그녀와 나는 동시에 일어났다. 8시쯤 잠들었으니 7시간쯤 잔 거다. 한국에선 아무리 자도 졸렸는데, 여기선 아무리 자고 일어나도 새벽 4시다. 며칠이 지나면 괜찮겠지라고 했는데 일주일이 지나도 이주일이 지나도 항상 눈뜨면 새벽 4시다. 아침에 일어나 뒤적뒤적 한국엔 무슨 일이 있나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만지작 거렸다. 사실 이제 한국에 무슨 일이 있던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아도 되지만 그것 말고는 새벽 4시에 아직은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런 생활이 한 달 이상 지속되었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려 자는 시간을 늦추려고 해도 자정을 넘기기는 힘들었고, 그렇게 잔다고 한들 새벽 4시 반이면 또 눈이 떠졌다.



그렇게 7시까지 버티다 7시가 되면 부리나케 조식을 먹으러 뛰쳐나갔다. 호텔 조식이 맛있어서가 아니라 그거라도 해서 본격적으로 하루를 시작 하기 위해서다. 조식에는 항상 바게트와 크루아상과 쵸코빵(빵우 쇼콜라) 그리고 식빵, 와플, 프렌치토스트, 롤케이크(?) 또 알 수 없는 바게트 등 정말 많은 빵이 대기하고 있었다. 다행인 건 빵들은 먹을 만하기에 혹은 맛있었기에 먹는 거로 그렇게 속 썩지는 않을 거로 생각했다. 문제는 전혀 생각지도 못하는 곳에서 터졌다. 음식들이 따뜻하지가 뜨겁지 않았다. 일단 호텔에서 나오는 커피가 그랬다. 프랑스 가면 아메리카노는 없고 커피 알롱제로 주문해야 한다고 한국에서부터 익히 들어왔지만, 막상 여기 오니 아메리카노라는 말을 거의 알아들었고 설사 아메리카노가 없더라도 알아서 친절하게 커피 알롱제로 안내해 주었다. 그러면 에스프에소와 물이 따로 나오는 경우도 있고, 에스프레소에 물을 아주 조금 타서 나오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커피가 미지근하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입천장이 델 정도로 뜨겁게 나오는 커피가 여기선 미지근하게 나왔고 그렇기에 몇 분이 지나면 차갑게 식었다. ( 나중에 별다방에 가니 별다방에선 뜨겁게 나왔다) 커피뿐만이 아니었다. 쌀쌀한 날씨에 국물 요리를 먹고 싶어 쌀국숫집이나 라멘집에 가서 국물 요리를 시켰지만 한참 전에 만들어 놓은 거처럼 미지근한 국물의 라면 쌀국수들이 나왔다.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돌아다니다 들어간 포장마차에 혹은 분식점에서 먹던 뜨거운 어묵 국물 혹은 후후 불어 먹어야 하는 뜨거운 라면 한 사발이 여긴 없다. 물론 여기서 한국식 어묵탕이나 신라면을 기대하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뜨끈하게 속을 녹이고 싶은데 그게 뜨뜨미지근하다. 참 별게 맘 같지 않아서 속상한데 프랑스에 오래 산 지인들의 말에 의하면 안전(?)을 위해서라고 한다. 만약 뜨겁게 음식이나 음료를 내놓았을 때 그것을 먹다 입천장이 뎄을 경우 소송감이라고. 프랑스에선 네가 뜨겁다고 주의를 주지 않았기에 혹은 이건 사람을 먹을 수 있는 온도가 아닌데 이렇게 뜨겁게 음식을 잘못 만든 거라고 소송을 건다고 한다. 그런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미지근하게 나오는 거라고. 머리론 이해하지만 속으론 답답하다.


미적지근한 일본식 라면을 먹고 계산하고 나가려고 보니 계산대에 줄이 한가득 서 있다. 엥? 뭐지? 계산하는 사람 어디 갔나? 뭐 기다리는 줄인가? 식당 밖도 아니고 식당 안에 이렇게 긴 줄이 왜 있는지 의아했다. 어떻게 된 건지 살펴보니 이 사람들은 모두 계산하는 사람들이고 모두 같은 테이블에서 앉아서 식사의 한 사람들이다. 열댓 명의 일행들이 같이 점심을 먹고 각자 자기의 식대를 계산하려고 줄을 서 있다고 한다. 일명 더치페이. 20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같이 점심을 먹었다면 우리의 상식으론 한 사람이 내고 그 사람에게 나가서 돈을 주던, 혹은 앉은자리에서 돈을 거둬서 돈을 맞춘 다음 한 사람이 가서 계산하는 게 정석인데, 여긴 각자 자기가 먹은 걸 자기 돈으로 혹은 자기 카드로 일일이 계산한다. 그러니 계산대의 점원은 그 사람들 테이블에 나간 메뉴를 체크하면서 일일이 한 명 한 명 계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그 일행들이 다 계산하는 데만 20분이 넘게 걸렸다.

(프랑스는 계산도 느리고 카드 승인 시간도 한국에 3배쯤 더 걸린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점원도 그 뒤에 계산하려고 기다리는 손님들도 아무도 불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난 보고만 있어도 답답해 죽겠는데. 이렇든 여기 사람들은 기다리는 게 일상화되어 있고 느리다. 식당에 가도 웬만한 식당은 줄이 있고, 슈퍼에서도 계산하려면 줄 서서 한참을 기다린다. 집에 와이파이를 신청했더니 설치까지 3주를 기다려야 하고, 두 달 전 그녀가 신청한 은행 계좌는 아직도 개설되지 않았다. 여긴 이렇게 느린 동네다.


느리다는 건 한국에선 뒤처지는 일이고 바보 같은 일이라고 여겨진다. 나 역시도 그랬다. 뭐든 빨리빨리. 빨리 밥을 먹고 하던 일을 해야 하고, 주어진 일을 빨리 처리해야 하고, 빨리 집에 가기 위해 운전을 하던 중 빨간불 첫 번째에 걸리면 짜증이 났다. 인터넷 다운로드 속도도 빨라야 하고, 카톡을 보내고 빨리 읽기를 바라고, 술 도 빨리 원샷을 외쳤다. 빨리 가는 게 좋은 거고, 빠름이 곧 이기는 거고, 먼저 가는 게 성공이라 여기며 살았는데… 그렇게 앞서 나가고 빨리 가가를 원했던 내가 이렇게 느린 곳에서 잘 내 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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