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리잡담 Feb 28. 2023

파리에서 우리 집으로 가는 길 38 +5

서울에서 프랑스 파리까지 약 9000Km를 날아오는데 14시간을 걸린 반면, 파리 2구의 호텔에서 15구의 집까지 고작 5km를 가는 데는 꼬박 38일 + 5시간이 걸렸다. 파리에 오자마자 가장 큰 미션은 다시 집을 구하는 일.  지난 12월에 집을 구하려 야심 차게 파리에 왔었지만 대실패의 경험이 있기에 조금은 쉽게 구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도착한 날부터 그녀와 나는 밤에는 인터넷으로 부동산 사이트를 뒤졌고 낮에는 일일이 전화해 가며 방문 약속을 잡았다. 역시나 파리는 내가 서두른다고 되는 곳이 아니다. 당장 오늘이라도 집을 보러 갈 수 있다고 했지만 부동산은 느긋하게  3일 뒤에나  집을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두 군데의 집을 보고 좀 더 괜찮았던 15구의 집에  마음이 갔다. 무엇보다도 확 틔인 베란다가 맘에 들었다. 하지만 아파트 입구에서 현관까지가 정원 비슷한 돌길이고 좀 으슥해서 그녀는 썩 맘에 들지 않아 했다. 파리에 온 지 어영부영 일주일 지났고 더 볼 집이 없었기에 일단 계약을 하는 쪽으로 그녀도 맘을 돌렸다. 하지만 여기는 파리, 우리가 맘에 든다고 해서 그 집에 들어갈 수 있는 게 아니다. 이곳은 집을 보고 계약하고 싶어 하는 세입자들을 다 모아놓고 집주인이 재직증명서 혹은 연봉계약서 더러는 회사 대차대조표까지도 요구한다. 그리고 그중에서 맘에 드는 세입자를 집주인이 간택(?) 하는 형식으로 계약이 이루어진다. 한국처럼 계약금 먼저 날리는 선착순이 아니다 보니 앞으로의 일정을 단언할 수 없었다.

파리를 비롯해 유럽의 나라들은 전세라는 개념이 없다. 보증금 또한 몇천만 원씩 두는 한국과 달리 여기선 한두 달 치 월세를 더한 정도다. 우리나라는 계약이 선착순이기에 세입자의 재력이나 금융상태에 대해선 집주인이 알리 만무하다 그러다 보니 많은 돈으로 신용을 요구하는 것이고, 여긴 들어오기 전에 세입자의 금융상태를 꼼꼼히 체크하다 보니 그에 비례해 보증금의 금액도 낮아진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파리,베란다가 넓은 집(A)

일단 부동산에서 요구하는 서류를 보내고 두 번째 주말이 왔다. 아직 계약이 성사된 것이 아니기에 주말 동안 또 다른 집들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던 중 우리가 원하던 지하철역 근처에 적당한 가격의 매물이 나온 것이 아닌가. 월요일이 오자마자 우리는 주말사이 올라온 집을 보러 갈 약속을 잡았다. 허ㅐ나 역시나 집을 보러 오라는 시간은 무려 4일 후. 그사이 지난주에 방문한 집에서 연락이 왔다. 집주인 우리를 간택(?) 했다고 계약을 하지고 한 것이다. 아 어떻게 해야 하지? 파리에 온 지는 2주가 지났고 이 집을 본다 한들 우리가 계약을 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다. (선착순이 아니기에) 나는 언제나 안전빵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기에 그냥 지난주 방문한 집(A)을 계약하자고 주장했고 그녀는 일생에 한번 파리에서 사는데 딱 맘에 드는 집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일단 그녀가 그렇게 마음먹은 이상 설득 하기는 힘들어 보였다. 그래서 잠시 양해를 구해 계약을 미뤄 두고 일단 한번 직접 가서 보기로 했다. 그렇게 3일을 더 기다려 새로운 후보의 집(B)에 가보니 맘은 쉽게 돌아섰다. 파리에선 드문 고층아파트에 경비도 있고 일층에는 대형 마트까지 있었다. 게다가 주방 창문으로는 에펠탑 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녀와 나는 두 번 고민하지도 않고 바로 여기로 맘을 정했다.


에펠탑이 보이는 집(B)

하지만 다시 말하지만 우리가 맘에 들어한다고 당장 계약 할 수 없는 이곳 시스템. 일단 여기도 집주인이 원하는 서류를 보내고 기다리기로 했다. 그사이 지난번에 방문한 집(A)에선 더 이상 기다려 줄 수 없다고 최후통첩을 전해 왔다. 우리도 일주일 이상 미루는 건 예의가 아닌 거 같아 그 집(A)은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부디 빨리 이 계약이 성사되기를..  그리고 3일 뒤 에펠탑 뷰의 집(B)에서 연락이 왔다. 천만다행으로 집주인이 당신들과 계약을 하겠다고 전달해 왔다는 것이다. 그제야 긴장이 풀어지고 맘이 놓였다. 이때가 파리 온 지 2주가  좀 더 지나서였다. 그녀와 나는 이제 밤마다 새로 들어갈 집에 가구들을 어떻게 배치하고 어떻게 꾸밀지를 고민했다. 그러는 사이 그녀는 부동산과 메일로 집 (B)에 남아있던 몇몇 가구들(전세입자가 남겨놓고 간)을 어떻게 처분할지를 주고받았다. 1주일이 그렇게 몇 개의 메일이 오가며 지나갔다. ”계약서는 언제 쓰지?” 그녀에게 물었다 “엉 이번주말쯤?” 아무리 프랑스가 느리다고 하지만 계약서를 쓰는 게 이렇게 오래 걸릴 일인가 싶었다. 하지만 부동산에서 뭐 이번주에 만나서 열쇠를 준다고 하니 그려려니 믿었다. 열쇠를 받기로 한 전날 이제  호텔 메뚜기 생활이 끝난다는  맘에 기분이 들떠 있었다. 그동안 분당집을 떠나 옮겨 다닌 호텔만 무려 4곳. 캐리어 6개, 배낭 2개, 그리고 그녀의 첼로가방까지 들고 호텔을 옮겨 다니는 건 여간 힘든 일이었다. 심지어 호텔방이 작이서 우리의 침대 보다 짐들이 이 차지하는 공간이 더 많기도 했다. 이제 이 짐들도 마지막 한 번만 옮기면 끝. 들뜬 맘으로 약속 시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띠링‘ 문자 알림 소리.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졌고 나 또한 그 문자를 다 읽기도 전에 쌍욕이 튀어나왔다. 내용인즉 집주인인 갑자기 맘을 바꿔서 임대하기로 했던 집은 임대하지 않고 매매하려고 한다는 내용이었다. 부동산 중개인도 이렇게 될 줄 몰랐다며 우리의 잃어버린 10일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고 적시했다. 이것 때문에 계약서 쓰는 것을 미뤘나? 아님 원래 프랑스가 계약이 느린 건데 운이 안 좋았던 건가? 문제가 뭔지를 분석할 찰나 그것보다 또 호텔을 옮겨야 한다는 생각에 더 분노했다. 덕분에 그녀와 나는 한 번 더 어마어마한 우리의 가방을 들고 끌고 두 블록을 옮겨 다른 호텔로 갔다. 그렇게 프랑스에서 28일을 흘려보냈다.

하지만 지난 일은 지난 일. 더럽고 치사하다고 집을 안 구할 수는 없는 노릇. 다시 다른 집을 찾아 나섰다. 다행히 바로 이틀 뒤에 볼 수 있는 집이 있었다. 위치는 지난번 집(B) 보다 더 좋았다. 역에서 3분 거리의 역세권에 1층에 대형 마트가 있었고 경비 시스템을 갖추었으며 에펠탑은 보이지 않았지만 대신 센강이 눈에 들어오는 뷰였다.


피리 우리집 앞 센강

에펠은 안보이지만 센강이 무척 맘에 들었다. 그녀또힌 역에서 가깝고 근처에 한국마트가 있는거에 큰 점수를 줬다. 그래 여기로 하자. 앞서 집들이 그렇게 속을 썩여서 그런지 이 집은 비교적 쉽게 우리랑 인연이 맺어졌다. 물론 부동산 중개인에게 우리가 이 집을 만나기 위해 한 달을 호텔에 있었다고 읍소했고 유쾌한 중계인이 우리를 좋게 본 건지 불쌍하게 본 건지는 모르겠지만 초고속으로 계약을 진행시켜 주었다. 그렇게 한국을 떠나 온 지 38일 만에, 5곳의 호텔을 거쳐 드디어 파리의 우리 집에 왔다.  



Ps. + 5시간

호텔에서 집으로 이사하는 날 12시. 캐리어 6개, 배낭 2개, 그리고 그녀의 첼로가방까지 들고 호텔 로비로 내려왔다. 체크아웃을 하고 이 어마어마한 짐들을 실어줄 벤을 호출했다. 파리는 우버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어 쉽게 택시나 우버를 잡을 수가 있다. 10분 후에 벤이 도착한다는 알람이 왔다. 하지만 10분, 20분이 흘러도 벤은 오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취소 전화가 왔다. 다른 벤들도 불러도 갑자가 모든 차들이 취소되었다. 뭐지? 왜 그러지? 그녀가 유창하게 불어 영어 섞어 말하기 실력으로 원인을 알아냈는데 원인은 파업이라고 했다. 지금 파업 때문에 교통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답답한 맘에 거리로 나가 봤더니 입이 떡 벌어졌다.


이게 말로만 듣던 프랑스 파업이구나. 파리 오페라가 쪽 도로를 통제했을 뿐 아니라 경찰과 기동대(?)까지 도로를 점령하고 있었고 하필 우리 호텔이 그 구역 안에 위치하고 있었다. 프랑스 연금개혁에 반대하는 파업. 우리는 그 파업 시위의 한 복판에 서있었던 것이다. 그러게 시위대가 철수할 때까지 호텔 로비에서 꼬박 5시간을 더 기다렸고, 시위대가 지나가고 통제가 풀린 다음에서야 그녀와 나는 우리(?) 집으로 향할 수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파리에서 적응해야 할 두세 가지 것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