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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잡담 Jan 13. 2023

한국에서 마지막 당근과의 전쟁


나는 물건들을 잘 버리지 못한다. 애착을 주었던 물건들은 애착이 깃들어 있어서 못 버리고 한술 더 떠 물건들이 들어 있던 상자조차도 제짝인 거처럼 구석에 보관한다. 그래서 그녀와 집을 합칠 때 크게 핀잔을 들었다.

“ 어떻게 신발들이 다 신발 상자가 있을 수 있어? “

“ 아 그 신발들은 아직 얼마 안 신은 신발 들이야. (에어 조던이란 말이야) “

“ 그러면 이렇게 부피 차지하는 카메라 박스들을 왜 안 버려? “

“ 아 혹시나 나중에 중고 거래 하려면 박스가 필요해서. 조금이라도 돈을 더 받을 수 있거든”

“ 그러면 어떻게 10년도 넘은 아이폰 박스들을 가지고 있어 팔지도 않으면서?”

“ 아 박스가 이쁘잖아”

안 버린 박스들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거나 혹은 버릴 시기를 놓친 것들이다. 신발 박스는 꼭 신발이 들어 있지 않더라도 유용하게 쓰인다. 필름들을 보관한다든지, 엽서나 팸플릿 편지 등을 보관하기에 안성맞춤인 만능 상자다. 또  더 이상 나에게 필요가 없어진 물건들을 되팔려면 상자가 있어야 물건들이 빨리 거래가 되고 10% 정도 가격을 더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아이폰, 아이패드, 맥북, 카메라 렌즈, 카메라 부속품, 스피커, 시계, 이어폰, 헤드폰 등의 상자들을 보관한다. 가끔 이어폰 헤드폰은 경우는 본체의 수명은 다해서 버렸고 박스만 남아 있는 경우도 있더랬다. (이건 비밀이다) 어쨌든 이것이 다 정리를 잘하기 위함이고 알뜰(?)하게 사는 나만의 방식이다. 물론 단점은 공간의 부재다.

이사의 좋은 점은 이런 물건들을 정리할 기회를 준다는 것. 더불어 우리는 멀리 가기 때문에 우리가 가진 것들의 부피를 확 줄일 필요가 있었다. 먼저 부피가 크거나 처분하기 어려운 순서로 정리하기로 했다. 10년을 탄 자동차, 6년 탄 오토바이, 아깝지만 이사 올 때 구입한 1년 된 세탁기와 건조기, 자전거, 식탁, 전자레인지, 커피머신, 의자, 안 입는 옷들, 책 등등 정리할 것은 쌓여 넘쳐났다. 프랑스에 가서도 쓸 수 있는 건 가져가려 했지만, 현지 사정에 맞지 않는 것들은 어쩔 수 없이 처분해야 했다. 다행히 프랑스도 전기가 230V (우리는 220V 이지만 같이 사용할 수 있는 범위 안이라고 한다 )여서 웬만한 가전은 가져가서 쓸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50Hz가 표준인데 프랑스는 60Hz가 표준이다. 이게  쉽게 설명하자면 일단 꽂아서 쓰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전압도 일치하고 돼지코도 필요 없다) 모터로 작동하거나 열을 내는 가전들은 쉽게 고장 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세탁기와 건조기, 전자레인지 등은 처분하기로 한 것이다. (참고로 전기장판 등도 한국 제품을 가져가서 쓸 수는 있지만 Hz의 문제 때문에 현지에서 사서 쓰는 걸 추천한다고 한다) 자 그럼 이제부터 당근의 힘을 믿어 보기로 했다.


@버려야 줄일 수 있다


열심히 사진을 찍고 물건들의 상태를 소상히 적었다. 전자레인지, 커피머신, 의자 등등 이사 오면서 혹은 결혼하면서 산 물건들은 거의 1~2년 정도밖에 사용을 안 했기에 장터 용어로는 민트급 S급에 가까웠다. 다른 물건들도 항상 소중히 다뤄온 물건들이기에 나름 상태는 당당히 자부한다며 당근 혹은 중고 나라에 게시글들을 올렸다. 어떤 물건들은 올리자마자  연신 ‘당근 당근’이 울렸고 또 어떤 물건들은 왜 이러지 싶을 정도로 조용했다. 안 팔리는 물건들의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문제는 역시 가격이었다. 중고 물품에 가격을 정하는 일.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산 지 얼마 안 된 물건들은 감가상각 인한 가격을 정하기 쉽다. 오래된 물건들은 낡았기에 오래되었기에 감가상각으로 인한 가격은 더 내려가지만 반대로 나와 함께한 스토리가 있기에 애착비용이 더해졌다. 대학 때 처음 사진을 배우며 니콘 FM2 필름 카메라를 중고로 샀다. 더불어 렌즈도 여러 개 가지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디지털로 바뀌고 이제 더 이상 필름 카메라는 손이 가지 않았다. 그래도 이걸 어찌 팔아 버릴 수 있겠는가. 일단 바디와 가장 애착 가는 기본 렌즈 1개만 남기고 나머지 렌즈들은 팔기로 맘먹었다. 거의 20년을 내 손안에 있던 물건들이다. 감가상각으로는 가격을 매길 수 없는, 그렇게 가지고 있자니 짐이고 팔자니 아까운 물건들. 이런 물건들이 애착비용까지 더해져 가격이 시장경제와 맞지 않았던 것이다. 나와의 추억이 있고 사연이 있는 물건들 그리고 유행 지나거나 사용기한에 비해 너무 오래된 물건들이 그러했다. 해결 방법은 간단했다. 가격을 낮추면 된다. 감가상각만 있을 뿐 가격을 매길 때 무의식 중에 들어간 애착 비용을 빼버리니 금방 팔렸다. 기다렸다는 듯 서로 당근을 외치며 먼저 사겠다며 아우성 쳤다. 오히려 지금 구하기 힘든 물건들인데 싸게 팔아주니 고맙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었다. 그렇게 아쉽지만 어쩔 수 없기에 이사 가는 날까지 짐의 부피는 점점 줄어들었다.


@ 이사가는 날



@분당에서 파리까지


그리고 2022년 12월의 마지막 수요일. 짧고 굵게 신혼생활을 하던 분당 집과도 이별을 고하고 모든 짐을 프랑스로 부쳤다. 컨테이너에 차곡히 쌓여 출발하는 짐들을 보니 이제 진짜 떠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짐들이 프랑스 파리까지 도착하는 데는 2달쯤 걸린다고 한다. 이제 그럼 2달 동안은 어떻게 지내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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