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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혁기 Dec 30. 2022

서원書院 교육에 주목해야하는 까닭

  아름드리 기둥과 넉넉한 공간이 선현들의 숨결을 느끼게 하는 고을마다의 서원이 겨울철 역사관광 코스로 각광을 받고 있다. 서원은 풍광이 수려한 곳에 자리한 것이 대부분으로 조용한 분위기에서 자신을 가다듬으며 역사를 되새기거나 정신적 수양을 겸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1990년 12월 21일자 경향신문에 실린 기사 내용 중 일부이다. 예전부터 서원은 힐링 여행지로 주목을 받았던 모양이다. 실제로 유명한 서원을 살펴보면, 풍수지리학적으로 좋은 위치에 있는 경우가 많아서 주변 자연환경이 빼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족여행은 물론 학교 현장체험학습 장소로도 추천할만하다.


  사실 서원을 단순히 경치 좋은 곳에 있는 전통 건축물 정도로만 생각할 일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서원은 그 역사적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대표적인 서원 9곳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물론 유네스코의 지정이 절대적 가치일 수는 없으나, 공신력 있는 기관의 인정을 받았다는 점에서 서원의 역사성을 눈여겨볼 의미는 충분해 보인다.




  서원이라고 하면 한국사 수업 시간에 배웠던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가 먼저 떠오른다. 그마저도 서원 철폐의 자초지종까지 학습하진 않았었다. 흥선대원군의 개혁 정책을 개조식으로 암기한 것 중 하나였다. 아무튼 철폐의 대상이었으니 제거해야 할 적폐였을 것이라 막연히 생각했다. 아마도 이 정도의 지식을 갖고 있었던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들에게 서원은 부정적으로 인식되었을 수 있다. 서원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소식을 접했을 때도 우리의 서원이 세계적으로 내세울 만한 의미를 가진 게 맞는지 의아해했던 기억이 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서원은 역사적으로 탁월한 가치를 지닌 문화유산이다. 그래서 서원은 그 자체에 대한 학습뿐만 아니라 서원을 통해 다양한 교과(영역)의 학습을 하기에도 유용한 주제이다. 다시 말하면, 역사융합교육의 학습 주제로 적합하다는 의미이다. 




  서원은 조선시대의 학교이다. 역사 속 ‘학교’라는 주제는 지금의 학생들에게도  친근감과 관심을 불러일으킬만하다. 당시의 학생들은 어떤 공부를 하며, 어떻게 생활했는지 쉽게 호기심을 가질 수 있다. 물론 조선시대의 학교가 서원만 있었던 건 아니다. 지금의 초등학교 역할을 했던 서당이 있었고, 중ㆍ고등학교에 해당하는 서원과 향교가 있었다. 그리고 고등교육기관인 성균관도 있었는데, 이 중 서원을 굳이 중점적으로 다루어야 할 까닭은 무엇일까?


  먼저 초ㆍ중등학교 학생들의 학습 주제로는 유사한 학교급인 서당이나 서원ㆍ향교가 적절할 것이다. 이 중에서 서당은 시설이나 운영면에서 상대적으로 체계적이지 않았다. 마을 단위에서 교사를 모셔오거나 유학자인 양반이 본인 집에 서당을 차리는 등 특정한 학교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않았다. 지금의 학교와 비교하여 살펴보면 학생들에게 흥미로운 부분들이 있겠으나, 그 흥미가 쉽게 사그라들 수 있다는 맹점도 있다. 왜냐하면 서당이라는 교육기관 자체가 워낙 자율적으로 운영되었던 곳이어서 지금의 학교와 단순히 비교하기 어려운 점이 많기 때문이다. 과거와 현재의 대상을 비교하여 탐구하려면 그 대상 간의 차이뿐만 아니라 공통점도 있어야 매력도가 생기는 법이다. 이를테면 벤 다이어그램으로 나타낼 수 있도록 주제를 선택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서당보다는 서원과 향교로 범위를 좁힐 수 있다.




  그렇다면, 서원과 향교는 서로 어떤 차이가 있었을까? 서원과 향교는 설립 주체 및 운영 방식에서 명확하게 구분된다. 향교가 당시의 공립학교라면 서원은 조선시대 사립학교였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언뜻 생각하기에 서원보다는 국가에서 운영한 향교에 대해 살펴보는 게 의미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현재의 관점에서 바라본 것에 불과하다. 당시 학교 설립의 연유를 따져보면 공ㆍ사립에 대해 단순히 판단할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바로 조선 역사의 큰 맥락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점이 서원 학습의 유의미한 요인이기도 하다. 그저 조선시대 학교로서 서원을 탐구하기 시작했는데, 자연스럽게 조선의 정치 세력에 대해 학습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조선이라는 나라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서원을 사립학교라 볼 수 있는 건 각 지방관청의 관할하에 있었던 향교와 달리 사림(士林)에 의해 독자적으로 세워지고 운영되었기 때문이다. 사림은 조선 건국에 협력하지 않았던 신진사대부였다. 신흥무인세력과 함께 조선을 세웠던 신진사대부의 입장에 동조하지 않았거나 협력하기를 포기했던 이들이었다. 주류가 될 기회가 없었던 것인지 신념으로 다른 길을 선택한 것인지 그 속내는 당사자만 알겠지만, 분명한 건 중앙 정치무대가 아닌 각 지방으로 흩어진 성리학자들이었다. 당장의 출세를 마다한 채 초야에 묻힌 이들이라 하여 ‘사림’이라 하였다.




  지방의 중소 지주층이었던 사림은 자신의 학식으로 후학 양성을 함으로써 향촌 사회의 역할과 지위를 획득하고 유지하였다. 이러한 기능을 실행했던 곳이 서원이었다. 사림은 이후 소위 ‘훈구파(勳舊派)’와 대립하면서 조선 중기 이후 정권을 장악하였다. 막상 권력 앞에 선 이들은 내부적인 분열과 갈등을 일으켰다. 사림은 붕당(朋黨)으로 갈라져 서로 다투게 되었는데, 이때 서원은 붕당의 근거지였다. 조금 심하게 표현하자면, 붕당의 아지트였던 셈이다. 이러한 서원 기능의 변질은  이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이어진 단초가 되었다. 조선의 정권 흐름이 서원을 통해 자연스럽게 꿰어지고 있다. 학생들이 서원을 탐구함으로써 조선 권력의 전체적 맥락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서원을 학습하는 것은 향교에 비해 조선사 이해에 훨씬 유용하다. 


  사림의 흥망성쇠를 살펴보면 당초 서원을 세울 때의 목적이 성리학에 대한 순수한 의지였는지 단정 짓기는 힘들다. 사림의 본심이 무엇이었든 간에 서원의 당초 목적은 성리학에 대한 연구와 인성교육이었다. 이는 향교와 비교되는 점이며, 서원이 학습 주제로써 유의미한 또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가 학교 교육의 중요성을 말하고, 인성교육적 기능을 강조하더라도 결국 ‘대학입시’라는 현실 앞에서 무력해지고 자유로울 수 없듯이 조선의 학교도 과거시험을 통해 관료로 입신하는 게 주된 목적이었다. 그 목적에 충실했던 것이 공립학교인 향교였다. 서원도 이후에 향교와 같은 목적과 기능으로 바뀌긴 했으나, 초기에는 학문의 순수한 탐구에 몰입했던 곳이다. 나라가 바뀌는 천지개벽의 시기에 중앙 정계 진출의 기회를 마다하고 낙향한 학자들이 만든 게 서원이었으니 당장의 실리나 입신양명의 전략을 추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서원의 기조는 지금의 현실에서도 충분히 되새기고 들여다볼 가치가 있다. 교과 학습이 단순히 입시의 도구가 아니라 배움의 본질을 지향하고, 학습 본연의 즐거움을 경험하도록 학생에게 기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산업사회의 역군에 그치지 않고 미래사회의 역량있는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서는 교육의 관점을 바꾸어야 한다. 특히, 학교 교육이 학생의 바른 인성 함양에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서원은 과거의 유산이 아닌 현재 우리 학교 교육의 모델로서 활용할 수 있다.




  또한, 서원은 학습 주제로 다룰 수도 있지만, 그 공간의 배치나 교육 시스템을 현재의 학교에 적용할 수도 있다. 서원의 공간은 향교와 유사한 점이 많은데, 크게 강학과 제향 공간을 갖추고 있다. 강학 공간은 교육 장소로서 지금의 교실과 같은 곳이었다. 지금의 학교에서 볼 수 없는 곳이 제향 공간인데, 학문적으로 큰 공헌을 했던 이들을 기리는 곳이었다. 이는 선현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라 할 수 있는데, 학생 입장에서는 공인된 롤모델을 상시적으로 접할 수 있었던 셈이다. 지금의 학생들을 보면 학교에서 공부를 하면서도 왜 하는지에 대해 스스로 답할 수 없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된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앞으로 하고 싶은 것에 대해 질문해도 구체적으로 말하지 못한다. 좋은 대학과 직장에 가고 싶다는 응답이 대부분이다. 이 때, ‘좋다’는 그저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보상이 높다는 의미이다. 서원에서 하듯이 특정한 대상을 학교가 지정하여 롤모델로 제시할 필요까지는 없더라도 학생들에게 공부를 하는 목적과 각자의 지향점을 지속적이거나 주기적으로 환기하고 탐색하며 각성하도록 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이를테면 현재의 관점에서 재해석한 제향 기능을 학교에 갖추도록 하는 것이다. 이때, 서원의 제향 공간은 향교와 비교하여 눈여겨볼 만하다. 나라에서 세운 향교에서는 공자와 같이 중국의 유학자를 배향의 대상으로 삼았던 반면에, 서원은 조선의 학자나 정치가를 제향 공간에 모셨다. 특히 해당 지역의 훌륭한 학자를 내세웠던 점은 학생들에게 자부심과 애향심으로 이어지는 토대가 되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구체적이고 실체있는 롤모델이 되었을 것이다.


  살펴본 바와 같이 서원은 그 자체로 주목할 만한 교육 콘텐츠이자 오늘날 새롭게 되살릴만한 학교 교육 모델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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