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심의센터 이야기
현 상황을 조금 더 들여다보겠습니다.
원래 학교폭력예방법에서 심의위원회는 각 단위 학교별로 있었습니다. 정확한 명칭은‘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이하 자치위원회)’였습니다. 지금의 심의위원회와 마찬가지로 학교폭력 피・가해학생에 대한 조치를 결정했었습니다. 그러니까 학교폭력 접수부터 조치 결정까지의 과정이 모두 학교 내에서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학교폭력 업무만으로도 학교에 과부하가 걸릴만했을겁니다 학교의 업무 부담을 덜기 위해 2020년 3월 1일부터 자치위원회 업무를 교육지원청으로 이관하였습니다. 명칭도‘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로 변경되었죠. 학교에서는 학교폭력 사안을 심의위원회로 보낼지 여부만 결정하면 되는 것입니다. 학부모 입장에서는 심의위원회를 학교폭력의 최종 판단과 조치 결정을 하는 별도 기구 또는 상위 기관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각 학교에서 자체 해결이 안 된 학교폭력 사안이 한 곳으로 모일뿐만 아니라 모이는 곳이 심지어 교육청이니까 말이죠. 학교폭력 피・가해 학생과 보호자는 심의위원회에 참석하기 위해 해당학교 관할의 교육지원청으로 가야 합니다. 심의위원회 장소가 교육지원청 내에 있지 않고 별도의 심의센터 건물을 마련한 경우도 있습니다만, 학생과 보호자가 학교 밖의 특정 장소로 가야 하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마치 재판에 참석하러 법원에 가는 것처럼 말이죠. 가해학생의 처분이‘교육청’에서 이루어진다는 물리적 차이 자체가 이미 인식의 변화를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앞에서 말한 ‘법대로 합시다!’ 상황으로 흘러갈 조건이 갖추어진 셈이죠. 조건뿐만 아니라 속사정은 더욱 기름을 붓습니다. 자치위원회가 심의위원회로 바뀐 것은 단지 학교에서 교육청이라는 기관의 변화만 의미하지 않거든요. 그렇다면 어떤 변화의 속사정이 있는지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심의센터에 있다 보면 학부모로부터 다음과 같은 말을 듣기도 합니다. “학교에서 이런 얘기는 못 들었어요. 제대로 안내를 안 해주던데요.” 한편 다음과 같은 다소 황당한 얘기를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심의위원회에 꼭 가야 하나요? 애한테 안 좋은 경험이잖아요.” 이에 대해 “저희가 일부러 오라고 한 적은 없습니다. 본인이 요청한 심의잖아요.”라고 답할 순 없죠. 심의위원회를 마치고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이런 거면 여기 안 왔죠. 이런 걸 해야 합니까? 이런 식으로 하는 건 좀 바꿔야 할 것 같은데요.” 이에 대해 “네, 안 하면 저희는 좋죠. 이렇게 하려고 여기서 일부러 만든 건 아니에요.”라고 답할 일도 아닙니다. 이러한 학부모의 불평은 하나의 원인으로 모아집니다. 학교의 안내 또는 학교와의 소통 부족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오해하지 마십시오. 일부의 경우를 일반화하여 단정 지으려는 게 아닙니다. 학교에서는 사안 관련자와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대한 소통했을 겁니다. 일부러 안 할 이유도 없겠죠. 중요한 건 사안 관련 보호자의 심의위원회에 대한 인식이겠죠. 피‧가해학생 및 보호자가 학교폭력 처리 과정이나 심의위원회의 방식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원인은 복합적일 수 있으나, 여기에서는 심의위원회가 생기면서 일어난 학교의 정황에 주목해보려고 합니다.
학교에 학교폭력 사안이 접수되면 학교 전담기구의 심의를 거쳐 학교장 자체해결로 마무리되거나 심의위원회로 보내집니다. 이 과정에서 사안 관련 학생과 보호자는‘학교로부터 제대로 절차를 안내받지 못했다’는 불만을 드러냅니다. 더군다나 사안에 대해 면밀히 협의하거나 본인의 입장을 허심탄회하게 밝힐 기회가 없었다고 하소연합니다. 학교의 사안 처리 과정에 부족함이 있었을까요? 제 생각에는 그렇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학교가 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이토록 민감한 사안 처리에 소홀할 것 같지 않거든요. 학교에 대한 순수한 신뢰의 의미가 아니라 학교의 현실적 입장을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학교는 학부모의 민원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임할 수밖에 없습니다. 학교는 학생과 학부모의 온갖 요구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지만, 이를 반박하고 방어할 장치나 권한은 매우 취약하거든요. 학교는 제 역할을 수행했으나, 사안 관련자가 내용을 제대로 인지 못했을 수 있겠죠. 또는 학교가 관련 정보나 상담을 제공했음에도 적합하지 않거나 부족하다고 여겼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학교는 관련 업무를 했을 겁니다. 문제는 업무를 ‘했다’는 것과 그것을 ‘얼마나’ 또는 ‘어떻게’ 했는지는 다른 이야기라는 점이죠.
여기에서 ‘얼마나’와 ‘어떻게’의 상황을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업무를 ‘얼마나’ 했는가 하는 점은 시간의 문제입니다. 학교폭력 사안 처리에 기한이 있다는 것이죠.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접수 및 보고를 하고, 전담기구에서 심의를 하며, 교육지원청 심의센터로 보낸 사안의 심의위원회 일정을 잡고, 결정된 조치를 관련자에게 통지하는 일련의 과정에 법적 기간이나 자체 시한을 지켜야 합니다. 정해진 기한이 아니더라도 학교폭력 업무의 특성을 감안하면 가급적 빨리 조치를 취해야 하기에 긴 호흡으로 진행할 수 없습니다. 업무 처리 기간 동안에도 학교폭력 피해학생의 고통은 하루하루 이어지고 있을 테니까요. 이렇게 본다면 촉박한 일정의 문제는 자치위원회 때나 심의위원회로 바뀐 지금이나 다를 게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분명 시간의 차이는 발생합니다. 자치위원회 때는 어쨌거나 학교 안에서 사안 처리를 하였습니다. 기한이 있다고 해도 처리에 융통성을 가질 수밖에 없겠죠. 기한이라는 것도 사안의 기준과 시점을 언제로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대개의 사안 시점이 애매하며 처리 과정에서도 다양한 변수가 있습니다. 기한은 유동적이고 유연하게 처리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더군다나 학교 안에서 모든 처리를 하다 보니 정해진 기한이라는 것도 최소한이었으며, 크게 엄격하지 않았죠. 사안 관련자가 추후 절차상 하자를 문제 삼지 않는다면 기한으로 신경 쓸 건 별로 없는 셈이죠. 기한이 있다고 해도 어차피 조사부터 심의까지 학교 내에서 이루어지다 보니 일종의 ‘상담’ 과정에 좀 더 시간을 할애할 수 있었습니다. 담임 또는 담당교사는 학교폭력 접수 시점부터 이와 관련한 학생 및 학부모와의 상담을 진행합니다. 상담이라고 표현했지만, 살뜰하게 안내나 공지사항을 챙기는 것이라 할 수도 있고, 당사자 간의 오해나 악감정을 풀어주는 중재라고 바꿔 말해도 상관없을 겁니다. 사안 양측에서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하거나 어른 싸움으로 커지는 걸 방지하기 위한 관여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학교 입장에서는 당연한 개입이고 교육적 노력일 것입니다. 단순히 사안 처리 절차만 본다면 상담 과정은 반드시 행해야 할 법적 의무나 행정적 역할은 아닙니다. 하지만 학교 현장의 상황을 생각한다면, 그 무엇보다 필수적인 과정일 겁니다. 학교에서 학생 간 다툼이 일어나거나 학부모의 항의나 요구가 있다면 당연히 지도나 상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학교폭력 사안 처리에 있어 공식 업무와 비공식 업무가 혼재하는 셈이죠. 사실상 명확한 처리 기한이 있을 수 없겠죠. 학교폭력 업무를 담당하는 생활부장교사는 시도 때도 없이 학부모의 연락을 받는 경우들도 자주 있었습니다. 법의 체계를 갖추었다고 하나, 업무 성격은 기존의 생활교육 및 상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업무 상황이 바뀌기 시작한 게 심의위원회 때입니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2020년에 학교의 자치위원회 업무가 관할 교육지원청으로 이관된 시점이죠. 학교폭력 사안처리 과정에 ‘교육청’이라는 업무 주체가 하나 더 생긴 것이죠. 학교는 사안 처리의 단계마다 교육청에 보고해야 합니다. 자치위원회 시절에도 사안 보고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교육지원청이 심의위원회의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다른 의미를 갖게 된 것이죠. 다시 말하면, 사안 보고에 있어서 이전에는 학교와 교육지원청의 업무 ‘위계’에 가까웠다면, 지금은 업무의 ‘단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교육지원청이 사안 처리 과정 속에 명확한 역할을 하게 되면서 학교와 유기적인 업무 관련을 맺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상급 기관에 업무 보고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단계적으로 업무 처리가 이루어진다는 것이죠.
학교는 학교폭력 신고접수 48시간 이내에 교육청으로 사안 보고를 합니다. 이어서 최대 3주 이내에 전담기구 심의를 마치고 그 결과를 교육청으로 보내야 합니다. 학교는 교육청과 업무 과정을 함께하기 때문에 절차를 지키려 합니다. 업무 파트너가 교육청이라는 점에서 일단 신경 쓰일 수 있겠지만, 그보다 학교의 업무 처리 상황이 낱낱이 드러나고 기록된다는 점에서 더 부담스러울 겁니다. 절차상 학교의 책임 소재가 보다 분명해지고 행정적 과오가 상당히 투명해지는 셈입니다. 언뜻 보면 학교가 학교폭력에 보다 책임감을 갖고 숨김없이 처리하는 방향으로 바뀐 것 같습니다. 단순히 행정적으로만 보면 맞는 말이고, 업무적으로만 따지면 사실인 것 같습니다. 여기서 매우 단순한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학교폭력에 대한 학교의 책임감과 투명성 제고는 학교와 학부모, 어느 쪽에 더 득일까요? 굳이 편 가르기 하는 이분법적 질문인 것 같고, 학교폭력 업무를 이해득실로 따지는 듯하여 불편할 수 있겠으나, 이 질문의 의도는 현실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니 양해 바랍니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 보죠. 학교의 책임감과 투명성이 높아지면 학부모 쪽에서 반길 일인 것 같습니다. 물론 그런 면도 있겠습니다만, 속내는 학교에 훨씬 유리합니다. 일의 체계가 분명해지고, 보고해야 할 상위 기관이 생기면 업무를 하기가 수월해지니까요. 단순하게 따지면 업무량은 많아질 수 있지만, 업무의 깊이는 얕아집니다. 오히려 학교의 업무 부담은 덜어내는 셈이죠. 왜 그럴까요? 업무 처리 기한이 생기면 일을 하기가 촉박하고 부담스러울 것 같은데요. 사실 학교폭력 업무는 행정적으로 복잡하고 어렵다고 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단순하고 반복적이죠. 학교폭력 업무의 고충은 당사자의 입장을 이해하고 그들의 감정에 공감해야 하는 끊임없는 감정노동에 있다고 보입니다. 분쟁의 중재 또는 갈등의 조정 역할을 드러내지 않고 능숙하게 해야 할 비공식 업무도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행정보다는 관계와 감정의 문제이고, 수행 기간을 특정할 수도 없습니다. 업무 담당자의 입장에서는 밑 빠진 독일 수 있고, 공사公私 경계를 넘나드는 일일 수 있죠. 각 학교가 감당해야 했던 업무 부담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생긴 공식적 업무 기한은 촉박한 일정을 만든다기보다 일의 시작과 끝을 명확히 정해주었습니다. 특히 학교에서 교육청으로 사안을 보고해야 하는 업무 관계가 설정됨으로써 어쨌든 일을 마무리해야 하는 시점이 마련된 것입니다. 보고 체계는 학교에 부담으로 작용하기보다 처리 단계마다 매듭지을 명분을 제공해 준 셈입니다. 다시 말하면 학교는 각 당사자의 입장을 마냥 듣고 있을 필요도 없고, 원만한 해결을 위해 절차 이상의 노력을 기울이느라 진 뺄 일도 없어진 겁니다.
이러한 ‘얼마나’의 상황은 ‘어떻게’로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3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