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다 해변을 바라보며 사는 대가로 그들이 치른 고초를 보며...
위에 보이는 사진은 지금으로부터 딱 2년 전, 이 즈음 미국에 상륙했던 역대 허리케인 가운데 5번째로 강력했던 '이언'이라는 녀석이 휩쓸고 간 폐허의 모습이다.
플로리다는 미국에서 은퇴한 이들이 살기에 가장 선호하는 남쪽의 해변을 끼고 있는 풍광이 아름답기 그지없는 주이다.
결코 싸지 않은 요트들이 정박해 있던 부두의 배들은 어디로 날아가버렸는지 말 그대로 아작이 나버렸고, 심지어 남부 특유의 스타일대로 지은 목조 건축형태의 집들은 흔적도 없이 날아가버리고 말았다.
이렇게 흔적도 없어져 버린 집에 살던 사람들은 말 그대로 살던 터전을 모두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들은 일찍 대피하여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2년 전 이 어마어마한 허리케인에 목숨을 잃은 이들은 100명이 훌쩍 넘었으니 말이다.
만약 당신이 이곳에 살다가 이런 끔찍한 꼴을 당했다면 심정이 어땠을까?
그리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이 상황에 어떻게 다음 스텝을 밟아나갈 수 있었을까?
뜬금없는 소리를 왜 10월의 첫날부터 하는 것인지 의문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아래 사진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지 그걸 묻고자 이 뜬금없는 2년 전 이야기를 꺼냈다.
딱 2년이 지난 플로리다에 다시 '헐린'이라는 허리케인이 들이닥쳐 엊그제부터 오늘까지 벌어진 참상이 바로 위의 사진이다.
마을은 다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고, 요트는 물론이고 차들마저 뒤집어져 오늘까지 확인된 사망자만 60여 명을 넘었다고 한다.
어제 뉴스에서 자신의 집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한 주민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게 플로리다 해변에서 사는 대가입니다. 이게 해안 도시에서 살면서 겪는 참상이에요."
분명히 플로리다는 미국의 은퇴자들이 여유로운 해변을 누리며 지낼 수 있는 살고 싶은 도시이다.
원래는 이렇게 멋진 해변을 낀 주택가들이었다.
한국을 비롯해서 강이 보이는 뷰에서 해변이 보이는 뷰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의 집값의 정점은 대게 물을 끼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사진을 보면서 은퇴해서 저런 집에 살고 싶다고 꿈꾸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란 말이다.
그렇다면 2년 전 허리케인 '이언'에 의해 살 곳을 잃어버린 이들은 과연 아무렇지도 않게 그곳에 다시 집을 짓고 사는 것에 스스럼없이 동의했을까?
고작 1년 겨우겨우 아무 일 없이 넘기고 이듬해 2년 만에 다시 그렇게 살 곳을 잃고 죽을 위기를 넘겨가며 저곳에 살만한 가치가 있을까?
허리케인으로 인한 재난은, 어쩌다 우연히 난 사고가 아니다.
그리고 심지어 그것은 매년 허리케인이 올라오는 플로리다 지역에서는 예견된 피해들이다.
한 번은 실수일 수 있지만, 똑같은 실수를 두 번 이상 저지르게 되면 그것은 실수가 아니게 된다.
일본에 살면서 일본인들이 지진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얼마나 뼛속깊이 녹아들어 가 있는지 충분히 확인한 바 있다.
어쩔 수 없다는 자연의 피해를 입은 플로리다의 주민들 중에서 2년 전에 죽다 살아난 이들 중에서 과연 몇 명이나 플로리다를 떠나 아무런 자연적 피해가 없는 곳으로 삶의 거처를 옮겼을까?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것처럼 비가 조금만 오더라도 상습적으로 침수가 되는 낙후 지역에 사는 지하방 주민들은 그들이 원해서 그곳에 들어간 것이 아니겠지만 플로리다의 해변을 낀 주택에 사는 사람들 중 최소한 절반가량은 돈이 없어 어쩔 수 없이 그곳에 사는 것은 아니었을 테니 분명히 그 경우는 다르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사고나 재난을 통해 자신이 가진 모든 기반이 무너져내리는 경우가 적지 않게 보게 된다. 물론 돈이 넉넉하게 있는 부자들의 경우 별장이나 보유하던 요트가 한 두 개 없어진다고 해서 삶의 질이 확연히 저하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기반이 날아가버린 사람들의 경우는 부자들과는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살아간다.
2년 전 허리케인 '이언'에게 당했음에도 플로리다에 남아 살았던 이들 중에서 이번에 허리케인 '헐린'에게 다시 당한 이들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모르겠지만, 그들 역시 살아갈 것이다.
사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삶의 위대함에 대해서는 모두가 그 가치를 안다.
아니, 어쩌면 그저 살아가는 것이, 살아내는 것이 얼마나 큰 가치인지 모르는 이들도 적지 않은 듯하다.
요즘 여기저기서 다들 너무 살기 힘들다고들 한다.
대학을 버젓이 졸업하고도 취업이 안되고, 멀쩡히 다니던 직장에서 잘리고 재취업이 안되고, 돈이 없어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들 한다.
삶이 퍽퍽한 것이 어디 하루이틀이던가.
모든 사람들이 여유롭고 돈걱정 없고, 스트레스 없이, 아무 걱정 없이 살 수 있다면 그것은 현실이 아닌 천국일 것이다. 모두가 부족함 없이 여유로운 삶을 영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손가락 빨면서 정신승리하면서 소확행 어쩌고 하는 것이 정말로 만족스러운 삶인가를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은 누구보다 그들 스스로가 알고 있다.
삶에 정답은 없을 것이다.
나보다 더 어려워도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힘을 내는 것도 어찌 보면 역설적이겠다만, 반대로 나보다 더 어려워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보며 부끄러워 반성하고 다시 힘을 내는 것 또한 삶을 재건하는 방식일 것이다.
마을에 우물이 없어 깨끗한 물도 없어 아이들이 죽어가는 아프리카를 보며, 멋들어진 해변을 끼고 살던 플로리다 주민들이 자괴감을 느끼지는 않았을 것이다.
저마다 각성하는 포인트가 다를 수는 있겠으나,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삶이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되는 고귀한 가치를 가지고 있음을 깨닫는 계기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의 가치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부슬부슬 추적거리는 이 빗속에서 광화문에 끌려 나와 시가행진을 하는 군인들의 마음이 행복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찬찬히 다시 생각해 본다.
나는 과연 내 삶의 가치가 고귀함을 깨닫고 소중히 하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