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려주마. - 67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1858
“아이고! 우리 애기 밥 먹어야지.”
“엄마가 쉬는 화장실에 가서 싸라고 했지!”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이를 가진 엄마가 하는 말이라고 느껴지는 이 말들은 개와 고양이를 키우는 젊은 아가씨의 입에서 매일 같이 나오는, 아주 자연스러운(?) 대사들입니다.
KB경영연구소가 발표한 ‘2023 한국 반려동물 보고서’를 살펴보면, 2022년 말 기준으로 대한민국에서 개·고양이 등 반려동물을 기르는 ‘반려가구’는 무려 552만 가구입니다. 2020년 말의 536만 가구와 비교해 2년 새에 2.8%나 증가했죠. 구체적으로 정리해 보면, 대한민국 인구 5175만여 명 중 1262만여 명이 반려동물과 함께 살고 있다는 수치적 통계가 나오는 겁니다. 그 반려가구 중에서도 무려 81.6%가 ‘반려동물은 가족의 일원’이라고 생각한다는 조사내용도 있었답니다.
한국인들의 애완동물에 대한 애정관계는 다른 나라의 외국인들이 보기에는 조금 많이 이상해서 거리를 두고 싶게 만들 정도의 묘한 호칭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한국인은, 자신이 키우는 애완동물을 이제 인생의 동반자를 뜻하는 ‘반려(伴侶)’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자신들의 가족에 편입(?)시켜 실제로 호칭마저도 자신의 가족과 똑같이 대합니다.
분명히 그 아이들에게 엄마와 아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인인 자신들이 엄마와 아빠라고 입양한 부모처럼 법적 권리를 들이대고, 자기 인간 자식들과는 졸지에 입양된 형제자매 관계인 양 언니, 오빠라고 호칭합니다.
한국인들에게 그것은 그렇게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유별난 애완동물 애호가만이 그러는 것이 아니라 이제 막 반려동물을 입양해서 키우는 집에서는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이지요.
여기에는 이제까지 앞에서 살펴보았던 한국인들의 특성이 아주 자연스럽게 투영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요.
먼저, 내 집이 아니라 우리 집이라고 부르는 한국인들의 ‘우리’라는 개념은, 앞에서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다른 민족들에게서는 결코 볼 수 없는, 경계선 안에 들어온 사람은 ‘우리’라는 동지의식(?)으로 가족으로 편입시킵니다. 이것은 이탈리아의 마피아가 진짜(?) 가족만으로 패밀리는 만들어 가족사업(?)을 운영하는 것과는 판연히 다릅니다. 한국인들은 밥을 같이 먹는 사이를 ‘식구(食口)’라고 부르며 목적을 함께하는 이들과 바로 가족이라고 부르고 함께 하는 것에 끈끈하기 그지없는 동화능력을 보여줍니다.
사람에게만 그러한가? 아니죠. 한국인들에게 애완동물은 관상용이거나 장난감이 아닌 함께 사는 생명체이고, 그렇다면 그것을 사람과 똑같이 여기는 것은 전혀 이상할 것이 아닙니다. 일단 식사시간에 밥을 같이 먹고, (물론 함께 식탁에 앉아서 먹는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같이 자고, 같이 산책하며 모든 것을 함께 합니다.
단독주택보다 아파트가 통계상으로도 한국인의 대표적인 주거구조인 것에 반해, 그 많은 반려동물들은 아파트에서 그들의 가족(?)과 함께 집‘안’에서 삽니다. 단독주택의 경우, 밖에 집을 두고 내외하는 방식의 형태와는 분명히 다른 겁니다. 이것은 대한민국의 전체 구조가 거의 한옥의 구조로 갖춰져 있던 그 옛날에는 분명히 없었을 공간의 공유가 이루어진 것을 의미합니다.
네. 맞습니다. 원래 한옥에 살던 한국인들의 의식에서 개나 고양이, 가축들은 엄연한 가축에 해당할 뿐, 가족에 편입되지 않았습니다. 어떤 자료에서는, 한국의 저출산화의 영향으로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서 사는 나홀로족이 늘었고(현재 통계상 대한민국의 1인 가정은 전체 가정의 40%를 넘겼습니다.), 그들이 사람대신 반려동물을 곁에 두면서 반려동물을 사람처럼, 가족처럼 여기는 경향이 짙어졌다고 언급하는 경우도 있는데요. 전혀 틀린 이야기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것이 주원인이라고 말할 수는 결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족 모두가 함께 지내는 3인 이상의 가정에서도 반려동물을 키우고 그들은 오히려 반려동물을 가족의 막내로 편입하여 받아들이고 지내는 것이 더 자연스럽기 때문입니다. 반려동물의 특성상 독신자의 가정에 사는 동물들은 먹이라던가 관리가 상대적으로 소홀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오히려 수치상으로 보자면, 정규적인 직장생활을 하는 독신자가 키우는 반려동물의 수치비율보다 2인 이상이거나 집에서 반려동물을 챙겨줄 수 있는 가정에서 키우는 반려동물의 수치비율이 아직까지는 더 높은 편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핵가족화를 넘어선 독신의 증가, 고령화, 비인간화 등의 최근 벌어지고 있는 사회적 현상이 반려동물을 사람인 가족들보다 더욱 느끼게 만드는 경향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검은 머리 짐승은 키우지 말라.’고 했던 말처럼, 자식이라고 키워놨더니 어느 사이엔가 부모를 ATM기 정도로 여기고 자기가 아쉬울 때만 찾거나 정작 부모님이 필요한 시기에는 나타나지도 연락도 하지 않는 개인화가 심해지는 시점에서, 말은 못 하지만, 집에 들어가면 언제든 반기며 꼬리를 흔들고, 심리적으로 힘들고 외로워할 때 슬그머니 곁에 다가와 몸을 부비며 자신에게 온기를 나눠주는 반려동물은 그야말로 돈만 축내고 속만 썩이는 자식보다 훨씬 더 낫다고 느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러한 사회적 현상은 영미권이나 유럽에도 전 세계 어디에서나 똑같이 진행됩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반려동물을 자기 새끼처럼 이름 부르고 자기 가족처럼 의인화해서 똑같이 대하지는 않습니다.
한국인들에게 있어 반려동물이 그저 짐승이 아닌 가족인 이유는 같은 공간에서 같이 살고, 자고, 함께 밥을 먹는 식구의 개념에, 밖에 살던 피하나 섞이지 않은 존재를 한국인이 어떤 존재로 대하는가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아주 좋은 예 중에 하나입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주거공간의 측면에서도 한국인은 서양과 같이 손님용 공간을 따로 마련해두지 않습니다. 물론 먹고살기 어려운 상황 때문이었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한국인들은 손님이 자신의 집에서 묵게 되었을 때, 특히, 그것이 이례적으로 하루나 이틀 방문이 아닌 조금 장기간 늘어나거나 식객으로 받아들여야 할 때, 서양에서처럼 자신의 집에서 가장 좋은 공간을 주인이 쓰고, 그렇지 못한 적당한 곳을 내어주는 방식을 취하지 않습니다.
물론, 손님이 갖는 심리적 무게(?)에 따라 달라지기는 하겠지만, 한국인들에게 손님에게는 따로 마련된 것이 아닌, 집에서 식구들이 사용하던 가장 좋은 것을 내주는 것이 전통이고 관례입니다. 한국인들에게 있어 잠재적 무의식상 ‘손님용’은 가장 좋은 것이지, 서양에서처럼 우리가 사용하는 것과 유리된, 거리가 있는, 잘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구분하지 않습니다. 잠자리나 이불 등이 그러하고, 식사가 그러합니다.
한편, 짐승, 그것도 대개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들을 입양한다는 점에서 반려동물은, 한국인의 심리에서는 보살펴줘야 하는 워딩 그대로, ‘아기’를 의미합니다. 사실 어미와 떨어진 지 얼마 안 되었을 그 생명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서 먹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밤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이상한 소리를 냅니다. 사람이라면 그 어미와 가족을 찾아줘야 하는데, 짐승이라는 이유로, 그리고 그들이 새로운 가족으로 편입되었다는 무언의 공감대속에서 그 아이(?)를 입양한 가족들은 모두가 그 아이의 안정을 되찾는데 집중하게 됩니다.
한국인들이 기본적으로 약자를 대하는 의식이 여기서도 아주 잘 드러나는데요. 한국인들은 서양과 달리 제대로 입지 못하고 먹지 못하고 구걸하는 사람에 대해 인색하지 말라는 사회적인 암묵적 동의와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잠자리를 구하지 못해 하루 잘 수 있게 해 달라는 사람을 내치지 않는 것이 미덕이고, 목이 말라 물을 마시지 못했다고 당당하게 물을 달라고 하는 처음 보는 외지 사람에게도 물은 당연히 예의를 갖춰 제공합니다. 먹지 못하고 비실거리며 쓰러지는 사람에게는 묻고 따질 것도 없이 그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지요.
이 불경기에 식당이 연일 폐업하는 상황에서도 돈이 없는 젊은이나 어린 학생이 제대로 밥을 먹지 못했다며 식당을 찾으면 그들을 내칠 모진 식당 주인을 대한민국에서는 찾기 어려운 것만으로도 그 전통은 현재까지도 충분히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그런 측면을 감안한다면, 말도 못 하는 짐승이 내 집에 들어와 같은 지붕 아래에서 같이 먹고, 자고, 지내는 것만으로도 그 짐승은 한국인에게는 당연히 가족 구성원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기였을 때는 당연히 아기니 먹고 지내는 것을 보살펴줘야 하고, 조금 커서 늙어가면 늙어가는 대로 몸집도 더 크고, 그 아이를 부양해야 할 책임자로서의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당연하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죠.
실제로 대한민국의 저출산화로 인해 산부인과가 급속도로 줄어든 만큼이나 동물병원과 펫샵은 연일 늘어나고 있는 실정입니다. 국내 반려동물 시장 규모는 2022년 8조 원으로 세계시장 대비 1.6% 정도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23년, 농림축산식품부는 <반려동물 연관산업 육성대책>까지 발표하며 국가전략산업으로 육성할 것을 발표하기까지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연관사업이란, 사료, 진료, 미용, 장묘, 용품, 보험 등 반려동물 양육과 관련된 산업 전반을 말합니다. 보고서에 의하면, 2027년까지 국내 반려동물 시장은 15조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합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펫헬스케어와 장묘 부분인데요. 만약 한국인들에게 애완동물이 애완동물 그 이상이 아니라면 애완동물의 진료비에 사람에게 쓰는 정도의 비용을 부담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과, 동물장례식장이 활성화되어 무지개다리를 건너간 이후에도 사람처럼 찾을 필요성이 없을 것이라는 부분입니다. 이것이야말로 한국인들이 반려동물을 가족이라고 여기는 부분의 대표적인 증거라고 할 수 있겠네요.
동물미용이라던가 의상들을 보며, 일부에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것에 신경 쓰는 그야말로 애완용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는데요. 실제로 반려동물과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나 시간을 감안할 때, 바깥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비율보다 개인적인 집안에서 은밀하게(?) 공유되는 시간이 많다는 점에서 그 지적은 일반성을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오히려 한국인들에게는 아무도 없는 단둘이 혹은 가족끼리 있는 시간과 공간이 더 많다는 점에서 반려동물이 가족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래서 자연스럽게 가족구성원과의 관계 설명을 하고 호칭하고 대하는 것도 당연히 사람과 똑같이 대하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만약 전문 동물 조련사였다면 사람과 동물의 공간이나 관계가 명확하게 구분될 수 있었겠지만, 일반적인 한국 가정에서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사람처럼 대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훈련을 시키고 훈육을 하는 과정 또한 사료나 간식으로 조련하면서 칭찬의 멘트나 호령이 집안의 아이를 다루는 것과 똑같아질 수밖에 없는 것도, 자신의 자녀에게 대하던 방식과 반려동물을 대하는 방식으로 따로 구분하게 되지 않은 경계가 무너져버리고 뒤섞여 버린 것이죠.
덩치가 크고 집 밖에서 키우는 개를 대하는 경우가 집안에서 작은 개를 키우는 경우에 비해, 가족보다는 동물을 대하는 것과 같은 경향이 상대적으로 강하다는 점은 위의 설명을 반증합니다. 이 묘한 한국인의 심리에 대해서는 인간관계에서도 드러나는데요. 그 부분은 또 따로 이야기 나누기로 하죠.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