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싸우는 방법을 익혀간다
폭발하는 싸움꾼과 동굴에 숨는 수비꾼
요즘이야 잘 싸우지 않지만 예전에는 우리 부부도 남들 못지않게 많이 싸웠다. 폭력이 없는데도 폭력이 오간듯한 파괴력을 느끼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내면에 겁쟁이 한 마리씩을 키우고 있는 반려인간과 나는 다시는 싸울 일을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하곤 했다. 하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고 우리는 동물적 인간인지라 까맣게 잊고 또다시 싸워버리곤 했다.
무엇 때문에 싸웠는고 하니, 어찌나 사소한 일들인지 정확히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대개의 싸움은 아주 사소한 마찰에서 한 사람이 기분이 상하고 상한 기분을 드러나니 다른 한 사람도 기분이 상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서로 마음이 상한 상태에서 싸우는 방식에는 큰 차이가 있는데, 이 방식의 차이 때문에 사소한 다툼으로 끝날 일도 큰 싸움으로 격화되곤 했다.
나는 싸움이 시작되면 설명이 많아진다. 내가 왜 화가 났는지부터 예전의 동일한 경험들을 끌어와 이것이 일회성 흥분이 아닌 그간의 생활에서 누적되어온 분노라는 점도 설명한다. 다 쏟아내고 한 번에 털어버리고 빨리 끝내고 싶어 한다.
신랑은 싸움이 시작되면 동굴에 들어간다. 전혀 말하지 않고 들리지도 않는 것처럼 가만히 있는다. 목과 팔다리를 단단한 등껍질 속에 집어넣은 채 잠든 커다란 육지거북처럼 외부의 어떤 말과 감정으로부터도 차단되어 버리겠다는 의지가 드러난다. 나중에 평정심을 찾은 상태에서 물어보았을 때 신랑은 감정이 동요하면 가만히 마음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하다고, 그전에 무엇이든 말을 시작하면 반드시 후회할 일을 하게 될까 봐 더 아무 말도 할 수 없으니 기다려줘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 꼴을 보고 있자니 감정적인 상태의 나는 더 부아가 치밀어 설명의 폭격을 퍼붓는다. 물론 감정이 밀도 높게 실려있다. 설명의 주제는 상대의 행동 또는 태도가 얼마나 나빴는지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옮겨간다. 참다못한 거북이는 목을 내미는 게 아니라 등껍질을 터뜨리며 폭발한다. "그래! 내가 죽일 놈이다!"
십 수 번 울고불고 몇 번인가는 사네 못 사네의 지경까지 갔다 오면서 우리가 싸울 때마다 이 패턴이 반복된다는 걸 깨달았다. 사소한 문제는 사소한 다툼에 그치게 두고 싶었던 나는 패턴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다행히도 안 하던 짓 하기와 하던 짓 안 하기는 내 특기다. 나는 설명을 멈추기로 했다. 따라하기는 내 필살기다. 나도 동굴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쉽지는 않았다. 말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자니 속이 터질 것 같아서 말들이 삐져나오기도 했다. 어떻게든 말을 해야겠을 때는 최대한 간단하게 한 번만 말하는 정도로 해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점차 동굴에 숨는 게 익숙해지면서 말을 주고받지 않고도 마음이 풀리기도 한다는 걸 알게 되었고, 편안함을 느끼기까지 했다.
의외로 신랑은 내가 말이 없으니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고 이러다가 또 갑자기 폭발하지는 않을까 불안하기도 하고 화가 다 풀렸는지 아닌지를 모르니 화해를 할 수도 없어서 어쩔 줄 몰랐다. 그렇게 내가 답답했겠다는 걸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는 한 지점에 대해서 동의했다 - 너도 참 나랑 사느라 고생이 많다.
그 후로 우리는 싸울 때마다 훈련을 거듭했다. 나는 최대한 간결하게 말하고 불편한 시간을 감당하며 기다리는 훈련을, 신랑은 빨리 동굴 안의 감정을 정리하고 대화할 준비가 되면 먼저 신호를 주는 훈련을 계속했다. 지금까지도 훈련은 계속되고 있다. 서로 전혀 다른 방향으로 노력하지만 목적은 같다. 싸우면서 친해지는 게 친구라던데, 부부도 그럴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