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베이스 기타에 매료되어 냅다 실용음악학원에 등록부터 해버린 적이 있다. 악기를 배우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었다. 하지만 다분히 충동적인 결정이었고, 내 말랑말랑한 손가락으로 두꺼운 쇠줄을 튕기고 뜯고 비비려면 꽤나 힘을 줘야만 한다는 건 미처 알지 못했다.
줄을 튕기는 부분의 손가락이 빨갛게 부어올랐다. 부어오른 부분은 속살과 분리되어 부풀었고, 닿을 때마다 쓰리고 아파왔다. 학원 선생님은 물집이 잡히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그 물집이 안정되고 굳은살이 되고 나면 아프지 않을 거라고 했다.
물집이 잡힌 채로 계속 연습을 하자니 너무 아팠지만 배움이라는 게 그렇다. 처음부터 쉬다 보면 자꾸 잊어버려서 결국 제자리걸음만 하게 된다. 수학책을 펴 놓고 1년 내내 행렬만 공부하던 뒷자리 친구처럼 말이다. 이를 꽉 깨물며 계속 연습했다. 아픔이 느껴질수록 내 실력이 더 늘고 있다는 증거로 여기며 변태처럼 즐기기도 했다. 며칠이 지나니 이를 덜 깨물어도 되었다. 그리고 며칠이 더 지나니 가끔 욱신거리긴 해도 할만하다. 며칠이 더 지나자 손가락 끝마다 단단하게 굳은살이 생겼다.
굳은살이 생기니 더 이상 힘껏 줄을 다뤄도 아프지 않았다. 박인 굳은살은 베이스의 두꺼운 줄을 튕길 때 힘을 더해주었고, 줄을 짚을 때 더 안정적으로 단단하게 누를 수 있게 해 주었다. 소리는 더 깨끗하게 잘 울렸다. 단단하게 내 몸에 장착된 방패이자 무기가 된 것이다.
처음 하는 일을 만나 힘들 때마다 손가락을 보며 그때를 생각하곤 했다. 어떤 일이든 적응하기까지의 시간이 나에겐 늘 버거웠다. 처음 하는 아르바이트에서 무례한 손님을 대하는 일이 그랬고, 처음 가는 사무실에서 일을 찾는 게 그랬고, 처음 하는 업무가, 처음 하는 퇴사가 모두 버거웠다. 그래도 이 시간은 물집이 잡힌 시간일 뿐이라고, 배겨내다 보면 굳은살이 박일 거라고 여기며 견디곤 했다. 굳은살이 한번 박이고 나면 훨씬 더 수월해질 거라고 말이다.
굳은살이 거칠고 투박해 못나져도, 미워하고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고통의 시간을 견뎌낸 나만의 무기이자 방패다. 예뻐하고 자랑스러워해도 된다.
한동안 열심이었던 베이스에 대한 열정은 지나가는 바람이었던 듯 2년 정도 머물다 사그라들고 말았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의 내 손가락 끝은 매끄럽고 말랑말랑하다. 내 무기는 녹슬고 썩어가다 소멸해버렸다. 그래도 괜찮다. 오히려 좋다. 새로운 무기를 기르기에 딱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