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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기 Jun 07. 2022

재능 없는 자의 끈질긴 수련 - 피아노

손만 푸는 악기 연주

비쌀 것 같지만 그리 비싸지 않을 수도 있다. 

피아노만큼의 비용이 든다고 하면 비싼 것이 분명하지만, 전자식 키보드로 대체한다면 저렴하게 구할 수 있다. 아파트나 빌라와 같은 공동주택에서 연습해야 한다면, 소음 걱정을 덜기 위해서라도 전자피아노나 키보드로 연습하는 편이 좋다. 처음으로 접하는 사람이라면 적당한 학원을 찾아 레슨비를 내고 학원에서 연습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학원비는 주당 강의시간과 연습실 사용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


난이도는 높은 편, 익히기 위한 시간이 오래 걸린다.

피아노 학원도 흔하고 독학할 만한 자료도 풍부한 편이라 접근성은 좋은 편이지만 막상 익히는 시간은 오래 걸린다. 손가락이 마음먹은 대로 움직이는 데에도 짧으면 일주일에서 길면 한 달 이상 걸린다. 악보가 눈에 익는 시간은 더 오래 걸리기도 한다. 타고난 재능의 차이가 배우는 속도에 큰 영향을 주는 편이라, 자유롭게 연주하는 사람을 따라 흉내 내는 데에 3개월이면 충분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3년도 부족한 사람이 있다.


피아노 하나 만으로 다양한 표현을 할 수 있어 매력적이다.

피아노는 악기 하나로 넓은 음역대에서 멜로디와 화음, 리듬감 모두 표현할 수 있고 여러 장르의 음악을 연주할 수 있다. 다른 악기의 도움 없이 모두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혼자 즐겨도 풍부한 느낌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 좋다.


해보았던 취미 중에 가장 어렵고 아무데서나 시작할 수도 없고 익히는 데 시간도 오래 걸리는 것이 피아노다. 그럼에도 피아노가 첫 번째 글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처음으로 학원이라는 곳을 갔던 게 피아노 학원이었고, 가장 긴 시간 동안 연습했기 때문이다.




일곱 살 때 우리 동네에는 피아노 학원에 다니며 학원에서 나눠준 가방을 팔목에 끼고 다니는 게 대유행이었다. 그놈의 학원 가방을 한 번 들어보고 싶어서 어머니를 졸랐다. 어머니는 변덕스럽게 스쳐갈 호기심일 게 분명하다 여겼는지 못 들은 체를 하고 떼쓰지 말라고 야단을 치고 그럴 돈 없다고 손사래를 치다 결국 묘한 약속을 하나 내걸었다 -일단 시작하면 체르니 40번을 칠 때까지 그만두지 않을 것. 어린 나는 욕심내던 것을 눈앞에 두고 손가락부터 덥석 걸어버렸다.


반질반질한 감색 피아노 학원 가방에 들뜬 시간은 일주일 만에 사그라들었지만, 그놈의 약속을 지키는 데 7년이나 걸려버렸다. 3년쯤 되었을 때 학원 선생님은 학원비를 결제하는 어머니에게 '이 아이의 재능이 피아노 쪽은 아닙니다'라며 진지하게 괜찮을지 물었다. 그때 대답하는 어머니는 웃고 있었다. "재능이 없으니 더 오래 가르쳐주세요.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도 치는 법을 잊지 않고 문득 피아노 한 곡 연주하면서 즐길 수 있게 말이지요."


나도 알고 너도 알고 어머니도 아는 나의 무재능 덕에, 선생님은 가벼운 마음으로 완벽하지 않아도 재미나게 칠 만한 곡들을 연습하게 이끌어주었다. 알록달록 유리구슬 같은 모차르트와 강물이 흐르는 듯한 슈베르트, 촉촉한 빗속을 걷는 듯한 쇼팽, 휘몰아치는  베토벤을 잘 치지 못해도 잘 느끼며 연습했다.


입시로 힘들었던 고등학생 때, 미래가 불안해 어쩔 줄 모르던 20대에, 가끔 그 곡들을 꺼내 낡은 피아노를 치곤 했다. 여전히 악보가 없으면 한마디도 칠 수 없는 미천한 실력이지만, 서울에서 번 돈을 모아 처음 산 것도 전자피아노였다. 피아노를 치는 동안은 피아노와 악보와 내 손밖에 보이지 않는다. 재능이 없는 덕에 다른 생각하면서 치는 여유는 부리질 못하니 잡생각도 사라진다. 한두 시간 치고 일어나면 등이며 엉덩이며 땀이 흥건한데, 사우나 다녀온 듯 개운해지곤 했다.


취미는 취미라서 재능이 없어도 발전이 느려도 괜찮다. 그래서 즐길 수 있다. 즐기며 쌓아나갈 수 있다. 어설프고 못난 1시간이 쌓이고 쌓이면 즐길 줄 아는 악기 하나 있는 근사한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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