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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기 Jun 09. 2022

엄마의 시간이 흐르는 - 기타

손만 푸는 악기 연주

시작하기 쉬운 모두의 악기

어깨에 둘러메고 다닐 수 있는 기타는 장소 제약 없이 어디서나 배울 수 있다. 학교에는 기타 칠 줄 아는 친구가 꼭 한 명쯤 있고, 요즘은 동네 문화센터에도 기타 강습반이 드물지 않다. 인터넷에서도 Tab악보(기타용 악보)를 구할 수 있고 강의 영상도 있다. 실용음악학원에서 제대로 배우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다. 마음만 먹는다면 배울 수 있는 기회가 가장 많은 악기이다. 종이나 스펀지를 이용해 약음기를 만들어 소리 크기를 줄이면 원룸방 안에서도 연주하며 즐길 수 있다.

독학으로도 배울 수 있지만 알려주는 사람이 있는 편이 편한 것은 당연하고, 한 번쯤은 전문가 수준의 사람에게 배워보는 것이 좋다. 나와 같 음악적 재능이 없고 귀가 무딘 사람은 자신이 치는 기타 소리가 맑고 깨끗하게 잘 나오고 있는지 아니면 잘못된 방식 때문에 이상한 소리를 내고 있는지 분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손가락이 한 번은 부르터야 익힐 수 있다.

기타를 시작하고 가장 먼저 포기하는 순간이 손가락에 물집이 생겼을 때일 것이다. 기타 줄을 왼손으로(오른손잡이 기준) 꾹 누른 채 비벼대야 하는데, 야들야들한 손끝이 점점 부어오르고 물집이 잡히며 극심한 고통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그 물집이 단단하게 굳은살이 되도록 연습해야 좋은 소리가 나고, 편하게 연주할 수 있게 된다. 첫 관문을 넘기는 것이 어렵지만 그 후부터는 재밌는 것들이 기다리니 조금만 참자.


많은 사람들이 도전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

다.

기타는 팝과 락, 대중음악 장르에서 항상 중심이 되는 악기이자 노래와 곁들여 반주하기에 가장 편한 악기이다. 한마디로 가지고 놀기 제일 재미있다는 말이다. 거기다 기타의 코드 구성 원리와 음계의 위치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나면 베이스 기타나 다른 현악기를 접하더라도 쉽게 익힐 수 있다.


카포, 줄을 교체하는 도구, 전자기타의 디스토션 같은 부수적인 장비들은 처음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신경 쓰지 않아도 좋다. 연습하다 해보고 싶은 연주 방식에 따라 필요한 장비를 하나씩 구하면 된다. 처음 시작이라면 연습용 기타 하나와 줄을 맞출 때 도움이 되는 튜닝기 정도면 충분하다. 전자기타라면  피크에 작은 엠프 하나만 더 추가해도 Smells like teen spirit을 따라 치며 방구석 커트코베인이 되어 놀 수 있다. 모든 악기가 그렇듯 전문가 수준으로 멋들어지게 치려면 오랜 시간과 많은 노력이 필요하긴 하지만 말이다. 


혼자 연주하기에도 좋은 악기이지만 같이 연주하기에도 좋은 악기다. 기타 솔로가 달빛의 교교한 소리라면 기타 합주는 바람에 넘실대는 숲의 소리를 낼 수 있다.





어릴 때 내 방 벽장 안에는 클래식 기타가 하나 있었다. 연극과 음악을 사랑하던 젊은 시절의 어머니가 시내의 유명한 선생에게 배우던 시절에 모아둔 월급을 털어 샀다는 기타였다. 흔한 기타 같아 보여도 같이 배우던 동료들과 방송국까지 가서 합주를 하기도 했다는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기타는 아주 가끔만 밖으로 꺼내지곤 했다. 어머니가 로망스나 알함브라의 궁전을 연주하는 것을 구경하던 나는 꾸벅꾸벅 잠이 들어버리고, 연주가 끝나고 기타를 다시 넣어둔 어머니가 또각또각 손톱 깎는 소리를 들으며 깨곤 했다. "살림하는 사람이 기타 치겠다고 손톱을 기를 수가 있나. 이제 기타도 버리든가 해야지." 하시면서도 기타는 오래도록 벽장 안에 자리를 지켰다.


대학생이 되고 유행처럼 나도 선배들에게 기타를 배웠다. 거의 매일 동아리실에서 기타를 놀듯이 연습했다. 기타를 배우면서 가르치는 선배들과 배우는 동기들과 더 친해지기도 하고, 술자리에서 흥얼거리는 노래에 기타로 반주를 치며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기도 했다. 그러다 새로 들어온 후배에게 이번에는 내가 선배가 되어 가르쳐주며 서로 이어지고 연결되었다.


집에도 통기타를 하나 마련해 두고 치고 있으면 어머니가 와서 지켜보곤 했다. 그 부분은 이렇게 짚어야 한다고 가르쳐주기도 하고, 통기타는 또 그렇게도 치는구나 하며 신기해하기도 했다. 어머니가 아는 연습하기 좋은 곡을 알려주기도 하고, 새로 나온 음악들도 좋은 곡이 참 많다며 소녀처럼 손뼉 치며 좋아하기도 했다.


독립하고 집을 떠나 산지도 오래되어 지금은 통기타도 없고 어머니의 클래식 기타도 낡고 휘어져 버려졌다. 그래도 여전히 기타 소리를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유튜브로라도 즐기시라고 기타리스트 장하은을 추천해드렸더니 벌써 다 보시고 또 보시는 중이란다. 그리고 다른 연주자도 소개해주셨다. 여전히 뒤따라가는 나는 매일 어머니를 닮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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