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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엽수집가 Sep 16. 2021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다

시/에세이 I Hola Summer

2021년 여름의 생각을 정리하려 적은 다글 모음집

"Hola, Summer / 안녕, 여름"이라는 큰 제목 아래 글을 썼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다”



한 학기를 끝내고 다른 학기로 넘어가기 전 뜨거운 여름이다.


정말 뜨겁다. 날씨만 그런 게 아니라, 내 마음도. 소란스러움을 넘어 들끓는다는 표현이 맞지 않을까 싶다. 이다지도 따갑게 다가오는 상황들을 뒤로하고 나를 먼저 떠올림에 감사하다. 이제서야 나는 누군가가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짧은 손가락을, 도라에몽 손을, 작은 어깨를, 희미한 쇄골을, 왠지 모르게 어스름이 잠긴 눈동자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보려 한다.


단 한 번도 자세히 들여다본 적 없으므로 그럴 수 없었던 것들을 말이다. 상처를 스스로 극복하지 않으면 다시 넘어졌을 때 큰 아픔을 겪을 것이므로. 작년엔 나에게 돌아오는 생각을 포기했었다. 정말 말 그대로 내 주변에 있는 당신 덕분에 있는 그대로도 행복했으니까 말이다.


이별은 소리 없이 찾아오지 않는다. 분명, 어느 순간에 상대는 손을 내밀었거나 내쳤다. 다만 눈치채지 못한 것뿐이다. 손 내미는 한 사람을 내쳤다. 처음으로 상대의 기분이나 상황보다 내 감정이 먼저였다. 어떤 처음은 마지막이 되기도 한다. 배려 없던 작고 사소한 말은 서서히 금 가던 마음의 돌에 던진 최후의 한 방이 되었다. 언제나 옆에 있었으니 계속 있을 거라는 생각에. 그리고 그 한 사람은 사라졌다.




“과수”



살구, 살구 복숭아. 물렁하고 딱딱한 선 분홍빛 과일이 먼저 떠올랐어. 여름 시작 즈음이던가 아침 일곱 시에 일어나 횡단보도를 건너고, 수산시장 둘러싼 벽들을 지나 나비와 고양이가 사는 터의 바깥으로 걷던 때. 위를 보면 푸른 잎들이 하늘을 가리고 있었고 나는 그런 여름 향기가 나쁘지 않았어. 나무는 여전히 나무구나, 푸르르게 자라났구나 올해도 역시. 따가운 햇볕을 나 대신 먹으면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구나. 반가워, 올해도 만나서.


여전한 나무와 계절의 열기에 올해는 과일에 관해 생각했어. 뜨거운 여름에 나는 과일들. 복숭아, 자두 뭐 그런 종류의 것들. 얇은 껍질로 과즙을 감싸는. 너네도 더운 열기에 지쳐 얇은 막을 만들었구나,라고 생각하려던 찰나 수박과 멜론이 떠올랐어. 딱딱하고 두꺼운 껍질의. 너네는 변종이니? 여름의 뜨거운 열기가 덥지도 않니? 질문을 던져도 돌아오지 않는 대답. 이 질문은 마치 헤어지기 직전의 연인에게 던지는 상처의 목소리 같네. 그만둘래. 너네도 너희 나름의 형태로 자라나는 거겠지, 사람처럼.


과일에도 각자마다 고유한 형태가 있다는 것을, 하물며 자연이 그러한데 사람은 얼마나 더하겠냐는 것을. 아스팔트 도로의 열기와 연초록 마당 사이의 길을 걷다 이해하게 되더라. 스물둘 감정이 깃든 길에 서 있던 나비와 고양이가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면서 그렇게 또 여름을 떠올려.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 지금까지도 어디로 향할지도 모르면서 너를 생각해. 안녕,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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