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 영화 리뷰 I 디즈니, 픽사
간단한 소개
죽음을 맞이하였으나, 이를 거부하는 한 영혼(조)과 아직 태어나지 않은 한 영혼(22번)이 '태어나기 전 세상'에서 만나 펼쳐지는 이야기. '어른을 위한 애니메이션'이라고 불리던데, '어른을 위한'이라기보다는 '사람을 위한' 혹은 '당신을 위한' 애니메이션이 더 맞는 표현일 것 같다.
굳이 어른이라는 표현을 쓰자면, 어른도 볼만한 애니메이션 정도? <소울>은 어른으로 한정하기에는 너무 아쉬운, 사람 사는 이야기니까 말이다. 예상하건대, 이 영화를 본 후 각자에게 가닿는 부분은 다를 것 같다.
음악도 좋아하고, 잔잔한 울림을 주는 스토리도 좋아해서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다. 그렇지만 너무 기대하고 가서 보면 실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오랜만에 영화 한 편 볼까, 하는 생각으로 보는 걸 추천한다.
**여기서부터는 스포를 포함합니다
소울 줄거리
뉴욕에서 음악 선생님으로 일하던 ‘조’는 꿈에 그리던 최고의 밴드와 재즈 클럽에서 연주하게 된 그날,
예기치 못한 사고로 영혼이 되어 ‘태어나기 전 세상’에 떨어진다. 그곳은 탄생 전의 상태인 '영혼'을 위한 공간이다. 영혼은 멘토와 함께 자신의 관심사를 탐구하고, 그것을 알게 되었을 때 세상으로 향할 수 있는 지구 통행증을 발급받게 된다. ‘조’는 그곳에서 유일하게 지구에 가고 싶어 하지 않는 시니컬한 영혼 ‘22’의 멘토가 된다. 링컨, 간디, 테레사 수녀도 멘토 되길 포기한 영혼 ‘22’. 꿈의 무대에 서려면 ‘22’의 지구 통행증이 필요한 ‘조’. 그는 다시 지구로 돌아가 꿈의 무대에 설 수 있을까? (네이버 영화 소개글 참조)
소울 명대사
어린 물고기가 어른 물고기에게 말했어.
바다는 어디에 있나요?
어른 물고기는 말했지.
네가 있는 곳이 바다야.
여긴 그냥 물이잖아요. 제가 원하는 건 바다라구요.
인간들은 참 단순해 인생의 의미니 목적이니만 따라다니니 말이야
나는 매 순간순간을 살 거야
I'm going to live every minute of it.
22: 하늘 보기가 나의 불꽃이 될지도 몰라요. 아니면 걷는 거요. 저는 아주 잘 걸어요.
조: 그건 목적이 아니야 22. 그건 그저 평범하고 진부한 생활이야.
당신의 안녕을 바라는 영화
<소울> 영화 리뷰
1) 불꽃 소재를 중심으로
'태어나기 전 세상'에 사는 영혼들이 지구에 가기 위해서는 지구통행증을 받아야 한다. 지구통행증은 영혼의 몸에 붙어있는 스티커의 빈칸을 모두 채우면 가능한데, 그중 가장 주목할 칸은 '불꽃'이다. 22는 마지막 한 칸 '불꽃'을 채우지 못해 계속해 '태어나기 전 세상'에 머물기 때문이다. 영화 초반부에 불꽃은 한 영혼의 적성/특기/흥미 있는 것쯤으로 여겨진다. 축구공을 차거나, 화살을 쏘다가 불꽃을 얻는 다른 영혼들을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22와 조가 뉴욕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 후 '태어나기 전 세계'에 와서 알게 된 사실은 다르다. 불꽃은 자신이 가장 잘하는, 혹은 좋아하는 그래서 "되고자 하는" 삶의 목적이 아니라 세상에서 무엇이든 "하고자 하는" 의지이다. 다시 말해, 살아가려는 의지 같은 것이다. 영화 <소울>에서는 자신의 목표를 향해 열심히 뛰는 현대인에게 그런 말을 건네는 것 같다. 인생의 의미니 목적이니 따라다닐 게 아니라, 현재 삶을 즐겼으면 한다는 말. 평범하고 진부한 생활들이 당신이 쫓고 있는 불꽃보다 더 뜨겁게 타오르는 순간이라는 사실.
2) 어둠의 구역과 사적 공간을 중심으로
어둠의 구역은 무언가에 긍정적으로 심취한 사람들이 가는 사적 공간과 지나치게 열정에 집착해 괴물이 된 영혼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검은 모래사장에는 괴물들이 있고, 그 위로는 오로라를 연상시키는 사적 공간 안에 영혼이 들어가 무언가에 몰두해 있다. (예를 들어, 피아노를 치거나 노래를 부르는 일에 몰두해 있다)
영화에는 사적 공간에 있던 사람이 괴물로 변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숨겨진 메시지는 이러하다. 어느 한 가지에 심취하다 보면, 그 열정에 사로잡혀 불꽃의 본질을 잃는다. 다시 말해, 무언가를 쫓는 과정 동안 자신의 삶이 사라진다. 현재를 즐기지 못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비유적으로 잘 표현한 세계관이라고 느껴졌다.
3) 산다는 건 무언가를 이루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사는 것이다
이 영화를 본 한 친구가 그랬다. 삶과 죽음을 다룬 영화라 자기는 어려웠다고. 삶의 의미에만 집중해 <소울>을 보았던 입장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놓인 영화라는 친구의 말은 신선했다. 되돌아보니 이 영화는 삶과 관련된 동시에 죽음과도 묶여있었다. 앞서 '불꽃'과 '어둠의 구역'을 통해 지극히 평범한 현재, 오늘을 즐기는 것의 중요성을 말했다.
생각해 보자. 공연 바로 전날 불의의 사고로 죽은 '조'는 자신이 이렇게 죽을 수는 없다며, 지구로 돌아가는 방법을 찾는다. 하지만, 22와 함께 지구에 돌아가 자초지종을 겪은 뒤 '태어나기 전 세상'에 왔을 때 '조'는 22에게 지구통행증을 넘긴다. 왜 그럴까? 조는 삶은 무언가를 이루는 과정이 아니라, 말 그대로 자거나 먹으며 혹은 다른 어떤 것을 하며 '살아 있음'을 느끼는 과정임을 깨달은 것이다. 지구로 돌아가 자신이 평생을 원하던 공연을 마친 뒤 온 공허함 속에서 말이다.
위와 같은 메시지를 통해 <소울>은
현대인에게 안부 인사를 건네는 것 같다. 당신이 있는 곳이 바다라고. 매 순간순간을 살아가라고. 그것이 내가 바라는 당신의 안녕이라고. 그렇게 살아간다면, 안녕이라 화답해 달라고 손 인사를 건네는 것 같다.
기타 추천 POINT
1. 엔딩 크레딧에 쿠키 영상 있어요.
2. 시작하기 전에 오프닝 단편 '토끼굴' 있어요.
** 쿠키 영상 스포
간단 요약: 혼자 살려고 땅굴 파던 토끼는 계속해서 다른 마을 사람을 만난다. 혼자 살기 위해 더 깊은 곳으로 길을 내던 토끼는 실수로 배수관 터뜨려 다른 땅굴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다른 이들 덕분에 문제를 해결하고, 그 후 마을 사람들과 함께 연결된 집을 짓게 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