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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엽수집가 Nov 09. 2023

시간의 서사, <너의 이름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 I 카메라 연출과 운명론적 결말에 관하여

시간의 서사
- 카메라 연출과 운명론적 결말에 관하여


장르를 뛰어넘는 그림

<너의 이름은>은 일본 애니메이션이다. 대부분 영상의 구성단위가 샷인 영화와 달리 애니메이션은 대체로 프레임이다. 다시 말해, 애니메이션은 연속적인 영상 촬영의 결과물을 편집한 것이 아니라 그려진 한 장면, 한 장면을 이어 붙인 것이다. 따라서 애니메이션은 상상하는 장면을 있는 그대로 담아낼 수 있어 영화보다 제약이 적으며, 카메라 구도에 있어 영화보다 더 감독의 의도가 많이 개입된다. 이점을 고려할 때, <너의 이름은>의 영상 연출은 치밀하고 섬세했다. 또한 유성이 떨어지는 것과 같이 자연을 그려낸 장면이나 타키와 미츠하가 만나는 장면은 상상이지만, 실제로 아름다운 풍경을 맞이하는 기분이라 경이로울 수밖에 없었다.

**카메라 연출분석 1,2는 스포를 포함합니다



카메라 연출 분석 1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았던 연출은 유사 액자식 구성 서사와 검은 정지 화면의 활용이었다. 정지 화면은 그 자체만으로 이질감을 형성해, 관객의 이목을 끈다. 감독은 이 점을 활용해 관객이 주목하길 바라는 부분을 잘 드러냈고, 편집된 시간을 이질감 없게 받아들이도록 만들었다. 애니는 밤하늘에서 여러 갈래의 유성이 떨어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내 사라지는 유성들과 달리 한 줄기의 노란 유성은 계속해서 구름을 통과해 지구로 온다. 그리고 한 마을을 유성의 시점에서 사각 앵글*이자, ELS*로 잡는다. ELS로 큰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산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불빛들이 한눈에 들어오게 하며, 사각 앵글을 사용함으로써 무언가 일이 벌어질 듯한 불안감을 준다. 이내 화면은 검은색으로 전환(1:10)되고, 미츠하의 ‘아침에 눈을 뜨면 왠지 모르게 울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즉 성인 시점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화면은 미츠하와 타키의 성인이 된 현재를 교차 편집하여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여주다가 다시 검게(1:46) 변한다. ‘그런 기분에 휩싸이게 된 건 아마도 그날부터’라는 그녀의 목소리가 나온 뒤, 유성을 보던 타키와 미츠하의 모습이 순서대로 나온다. 미츠하의 장면에서는 그녀의 목소리로 ‘그것은 마치 꿈속 풍경처럼’이라는 내레이션이 나온다, 바로 이어 ‘그저 한없이 아름다운 광경이었다’를 둘이 함께 말하는 내레이션이 나오는데, 후반부에 비슷한 장면이 나와 인상 깊었다. 이때 두 캐릭터를 로우앵글*에서 주변을 도는 카메라로 잡아낸 것은 유성이 떨어지는 모습을 더욱 광활해 보이게 만들었다. 메인 OST가 나오고, 캐릭터를 소개하고, 다시 검은 화면(3;24),  알람 소리를 시작으로 둘의 학창 시절 이야기가 펼쳐진다.


*사각앵글
: 카메라를 기울여 화면이 기울어지게 촬영, 사각 앵글은 긴장, 변이 그리고 임박한 변동 등 암시
*ELS(Extreme Long Shot) : 일반적으로 먼 거리에서 넓은 범위를 묘사하기 위해 사용하는 숏, 피사체는 아주 작게 배경은 크게 보임
* 로우앵글(Low Angle): 낮은 위치에서 피사체를 위에 둔 구도로 촬영하는 기법


카메라 연출 분석 2

애니의 후반에 미츠하는 유성이 만든 비극을 막기 위해 아버지를 찾아간다(1:31:00). 그녀가 아버지에게 무어라 말했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아버지를 향해 무언가를 다짐한 듯한 표정을 짓는 장면에서 타키의 장면으로 넘어가 ‘그것은 마치 꿈속 풍경처럼’/그저 한없이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라는 내레이션이 이어질 뿐이다. 그리고 영화 처음 시작할 때 보았던 밤하늘에서 유성이 떨어지는(1:31:30) 장면이 되풀이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호수에 유성이 그늘져있다. 마을 사람들이 다 대피를 했는지, 미츠하가 안전한 건지 바로 설명하지 않는다. 유성이 떨어지고, 정신을 차린 타키가 자신이 산에서 무엇을 하고 있던 건지 기억하지 못한 채 손바닥을 보는 장면이 전부이다.


그리고 다시 검은 화면(1:33:03)이 나온다. 여기부터 애니는 다시 현재 시점으로 돌아온다(액자식 구성으로 느낀 이유이기도 하다). 처음 장면과 같이 타키와 미츠하는 지하철을 타고 있다. 무언가를 잊었다는 기억은 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둘은 같은 육교를 지났음에도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고 스쳐 지나간다. 그렇게 수많은 겹치지만 알아보지 못하는 우연이 반복되다 둘은 드디어 지하철에서 서로를 알아본다(1:39:45). 그 많은 서사를 거친 둘, 학창 시절 서로 다른 시간에 살고 있던 그 둘은 어른이 되어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비로소 다시 마주한다(1:40:10).



이질적이지 않은 운명론적 결말

다소 운명론적인 결말이지만, 이야기 전반에 크게 자리하는 황혼의 시간, 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포함하는 무스비 즉 무한의 영역에 관한 서사 때문에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던 것 같다. 꽤 여러 번 주변 인물들의 입에서 복선이 제시된다. 예를 들어, 미츠하는 수업 시간을 선생님을 통해 황혼의 시간―어스레한 저녁 낮도 밤도 아닌 시간 세상의 윤곽이 흐려지고 신비한 존재를 만나는 시간―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9:07). 또한, 운명을 상징하는 붉은 실의 이미지도 서사 내내 존재한다. 영화의 처음부터 미츠하는 붉은 실로 머리를 묶고, 타키의 손목에는 무엇인지 모를 끈이 있다. 할머니의 입을 통해 실에 대한 이야기(12:51)를 듣기도 하며, 유성이 떨어지는 장면은 하나의 실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러한 무한의 영역을 가장 구체적이고, 시청각적으로 몸소 느낄 수 있던 장면은 미츠하의 몸을 한 타키와 미츠하의 동생과 할머니가 함께 미야미즈 신사의 사당을 찾아가는 길이었다(34:29~37:42 즈음까지). 할머니는 사당으로 가는 길에 무스비에 대해 설명한다. 이때 울긋불긋하게 물든 단풍과, 푸른 소나무의 광경은 무한한 영역의 아름다움과 신성함을 느끼게 했으며, 거대한 자연 아래 작게 묘사된 걷는 세 사람(34:59)은 무한한 영역 안에서의 유한한 존재를 느끼게 했다.


시간의 서사

<너의 이름은>에 이름을 붙이자면, 시간의 서사라고 붙이고 싶다. 두 주인공이 3년이라는 시간을 건너 감정을 공유하기 때문도 있지만, 그것보다 시간을 무한의 영역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게 말하고 싶다. 저녁도, 낮도, 밤도 아니지만, 세상의 윤곽이 흐려지고 신비한 존재를 만나는 황혼의 시간. 그것은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 이야기다. 그것이 허구적 진실인지 실제로 존재하는 진실인지 알 수 없지만, 생각해 보면 시간은 신비한 ‘존재’를 만나는 일의 연속이다. 사람들은 유한한 시간 안에 살면서 수없이 많은 타인을 만난다. 수많은 사람 중 특정한 존재를 타인으로 만난다는 것은 신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만남은 미츠하의 할머니가 말했듯 실을 잇듯 사람을 잇고 시간을 흐르게 하는 신의 영역의 일이다. 사람들은 유한함 속에 살고 있지만, 그 흘러가는 시간은 사실 무한하다. 무한함 속에서 인연을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또 만난다. 미츠하와 타키의 사랑 서사는 이러한 환경의 무한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서사 내내 녹여내 드러내고 있다.




2020.11.30. DDWU 영상문예특강 수업 제출본을 수정하여 업로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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