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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애 Feb 09. 2023

파괴적 정상성 가정

<나의 믿음은 정말 사실일까?>

여러분은 '평범함'이란 말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이 표현을 참 좋아합니다. 


늘 평균 이하로 살아왔기에 제가 도달해야만 하는 목표였고, 평범할 수 있다면 충분히 만족스러울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평범함에 가까워지니 욕심이 나더라고요. 평범함을 넘어 특별해지고 싶다는 깊은 충동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평범하고 싶다는 바람은 어디까지나 평균 이하에 머무를 때의 목표일뿐이었습니다. 


역시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평범함이란 '평균점'에 가깝다는 의미로 쓰입니다. 평범한 사람이란 성격적으로 모난 점이 없고, 뚜렷한 개성도 딱히 없고, 삶의 굴곡도 많지 않은, 그런 사람을 가리킬 겁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 평범함이란 게 참 모호합니다. 특히 사람을 대상으로 적용될 때 더 그렇습니다. 한 인간은 굉장히 다양한 요소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흔히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누군가도 자세히 살펴보면 그만의 개성을 갖고 있습니다. 특이한 식습관이나 생활습관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혹은 겉으로는 평범해 보여도 마음속으로 어떤 기상천외한 상상을 하고 있을지 아무도 알 수 없을 거예요. 과연 그 사람을 평범하다고 말해도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렇다 보니 우리가 갖고 있는 '정상'에 대한 관념도 언제나 딱 들어맞지 않습니다. 심리학에서는 '파괴적 정상성'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우리가 가진 정상에 대한 관념이 파괴적인, 즉 내게 해가 되는 걸 뜻합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볼까요.





A라는 한 남성이 있습니다. 이제 막 서른이 된 이 사람은 드디어 염원하던 취업을 해냈습니다. 자신보다 먼저 취업해서 열심히 일해온 주변 사람들을 봐왔기에 A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합니다. 일하다 보면 직장 동료 혹은 상사와 마찰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렵사리 취업했기에 쉽게 그만둘 수는 없었습니다. 스트레스가 쌓여서인지 점점 업무에서 실수가 늘어납니다. A는 더욱 위축되고, 자신감을 잃어가며, 연쇄적으로 동료와의 마찰도 함께 심해집니다. 친구에게 하소연을 하자 "요즘 누가 그렇게 참고 사냐. 실업 급여 조건만 딱 채우고 퇴사 준비해라"라고 말합니다.

친구의 말을 듣고 난 후부터는 왠지 자신이 참고 사는 게 억울해집니다. '왜 나는 이렇게 힘들어야 하지?' 의문이 듭니다. 아무도 하지 않는 고생을 나만 하고 있는 듯한 기분입니다. A는 '요즘은 중요한 가치가 바뀌었어'라고 생각하며, 퇴사 준비를 합니다.





물론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까지 계속 회사에 남아있어야 할 이유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퇴사를 결정하기까지의 과정입니다. A는 '정상성'을 가정했습니다. 회사가 자신과 맞지 않고 힘들면 퇴사하는 게 정상이라고 쉽사리 가정해버린 겁니다. 하지만 만약 더 나은 직장이 마땅치 않고, 취업했던 이 회사가 A의 꿈을 이루는 데 꼭 필요한 과정이라면 어떨까요? 


A는 이 회사에서 좀 더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동료와의 사소한 오해만 해결하면 관계가 개선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업무에서 일어나는 실수는 초보라면 당연히 생기는 겁니다. 익숙해지고 능력을 인정받고 나면 어떻게 환경이 달라질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A는 퇴사를 결심한 순간 앞서 얘기한 그 무엇도 얻지 못합니다. 짧은 시간 안정을 취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자신에게 해가 되는 결정이 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무턱대고 그냥 참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자신을 해치는 파괴적인 정상성 가정에 기준을 둬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생각보다 우리는 이렇게 옳지 못한 기준을 많이 믿고 사는 중입니다. 나약해진 자신을 바라보며 '왜 나는 남들보다 나약할까?' 고민한 적 있으신가요? '이런 건 남들은 당연히 하는 거야'라며 자신에게 중요하지도 않은 일에 에너지를 쏟은 적 있지 않나요?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는 것, 정상이라고 믿고 있는 것은 정말 당연하고 정상인 걸까요? 의심해 보고 질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의외로 파괴적 정상성은 충분히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기만 해도 쉽게 간파할 수 있습니다. 혼자서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싶으면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이야기를 시작해 보세요. 아무 모임에 나가 "저는 이렇게 생각하는 데 혹시 다른 분들은 어떤가요?"라고 질문을 던져보세요. 여러 의견을 듣다 보면 내가 생각하는 게 전부가 아니며, 당연히 정상도 아닐 수 있다는 증거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우리는 언제나 주관적 세상에 머물기에 자주 타인을 만나 내가 나만의 주관에 매몰되고 있지 않은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을 보기 위해선, 세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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